갈림길에 선 방글라데시 대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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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부터 9일까지 지속된 시위에서 방글라데시 대중은 도로와 철로, 항만을 점거했고 그 때문에 주요 도시의 상점과 학교는 대부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뜨거운 물을 쏟아 붓고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쏘는 등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40명 이상을 살해했다. 그러나 대중의 저항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결국 대통령 아메드는 운동의 주요 요구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처럼 방글라데시 대중의 행동이 대규모로 분출한 직접적 계기는 집권 방글라데시국민당(이하 BNP)을 비롯한 연립정부가 노골적으로 선거 부정을 획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방글라데시 헌법은 선거 90일 전에 초당적 과도정부를 구성해 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야당들이 BNP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한 이아주딘 아메드는 현직 대통령이 과도정부 수반을 겸직하는 유례 없는 무리수를 두면서 선거 부정 ‘의지’를 드러냈다. BNP 지지자가 주도하는 선거관리위원회는 9천3백만 명의 유권자 중 1천3백만 명의 유권자가 ‘가짜’이거나 ‘사망자’인 엉터리 선거인 명부를 작성했다.
이에 아와미리그(이하 AL)가 주도하는 주요 야당 연합은 선거를 보이코트하겠다고 선언하고 총파업 등 대중행동을 호소했다. 이것이 대중행동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근저에는 수년간 지속돼 온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놓여 있다. 1996년 AL 정부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2001년 집권한 BNP 정부까지 이어져 방글라데시 대중의 삶을 더없이 팍팍하게 만들었다.
현재 방글라데시 인구 1억 4천만 명 가운데 83퍼센트가 하루 2달러(약 1천9백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극빈층이다. 방글라데시의 핵심 산업인 의류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시간당 15센트(약 1백40원) 이하의 저임금과 하루 13시간 노동이라는 끔찍한 조건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아메드는 자신의 양보가 대중의 자신감을 고무해 아래로부터 운동을 확산시킬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운동의 주요 요구들을 수용하는 동시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행을 금지하는 등의 억압적 조처들도 재빠르게 시행했다.
아메드의 이런 조처들은 지난 30년간 여러 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정치 개입 여지를 열어 준 셈이다.
방글라데시 대중이 운동의 성과를 확실히 지키려면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을 경계하며 억압에 한결같이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의 지도부인 AL은 아메드의 양보에 만족해서 14일까지 예정됐던 집회를 모두 취소했다.
역사적으로 군부독재자 정당인 BNP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 AL조차도 군사독재 시절 뿌리내린 기득권과 독재적 관행을 뿌리뽑지 못했다. 지금 AL은 쿠데타 위협 앞에서 또다시 비겁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방글라데시 좌파는 AL에 끌려다니지 말고 정치적·조직적 독립을 유지한 채 기존의 민주주의 요구에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하는 요구들을 결합시켜 조직 노동자들의 참가를 고무해야 한다. 마치 남한에서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6월 항쟁의 성과를 도로 빼앗으려는 우익의 반동을 가로막았듯, 쿠데타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 요구들을 지켜냄과 동시에 운동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이미 지난해 6월과 9월 대규모 총파업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증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