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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사병들의 한숨을 언뜻 보여 주는 영화, 〈묵공〉

〈묵공〉은 모리 히데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묵가(墨家) 사상을 가진 인물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였던 묵가는 지배층의 사치성 음악, 사치성 장례식, 침략전쟁 등에 반대했으며 두루 사랑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이들은 강대국의 침략 앞에 놓인 약소국을 도왔는데, 묵가가 송나라를 도와 강대국 초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일에서 묵수(墨守, 직역하면 묵가의 수비, 완고하고 철저하게 자기 입장을 고수한다는 뜻으로 쓰임)라는 말이 나왔다. 영화 제목은 이를 빗대어 지은 것이다.

〈묵공〉은 조나라의 10만 대군이 연나라를 치러 가는 길목에 있는 양성을 함락하려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성민 4천 명의 조그만 양성의 지배자들은 투항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를 놓고 분열하다가 묵가에 도움을 청한다. 묵가는 양성 돕기를 거부하지만, 묵가의 일원인 혁리라는 인물이 홀로 양성을 도우러 온다.

양성의 주민에 호소해 스스로 성을 지키도록 만드는 혁리의 모습에서 선동가의 모습을 언뜻 볼 수 있다. 양성의 주민들은 혁리의 선동에 호응하고, 혁리는 호응에 화답해 뛰어난 전쟁술로 양성을 지켜낸다.

민중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혁리의 조처들과 그것을 불편히 여기는 양성 지배자들이 갈등하고 혁리를 적으로 돌리는 모습, 지배계급의 일부가 혁리에게 설득되기도 하는 과정이 볼 만하다.

'누가 다스리든 똑같다'고 생각하던 양성의 주민들은 양성을 지키고자 헌신하게 되고, '대왕이 혁리의 반만 돼도 양성은 천하무적일 것'이라며 혁리를 신뢰하고 따른다. 어떤 병사들은 혁리를 위해 상관의 명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영화는 병사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림으로써 지배자들의 전쟁이 결국 민중에게는 고통일 뿐이라는 점을 드러내 준다.

영화 속 혁리는 불가피한 방어 전쟁과 평화주의, 그리고 만인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보여 주기만 있는 점은 아쉽다.

병사들의 적나라한 고통은 혁리의 평화주의적 고민을 부추기지만, 또 혁리는 양성 민중을 지키고자 단호하게 전쟁을 벌인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에서 이를 명확히 연결 짓고 해명하는 고리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속의 혁리는 무엇이 옳은지 갈팡질팡하지만 딱히 명확한 맥락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한편, 자신을 사랑하는 일열과의 사랑을 거부한 혁리가 다시 묵가 사상을 배반하고 일열을 찾아 헤매고, 또다시 묵가 사상의 실천인 듯 고아들을 이끌고 떠나는 것도 별 설명이 없어 연관성을 찾기 힘든 것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