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코차밤바 투쟁:
대안 권력기구의 맹아를 탄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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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발단은 코차밤바의 우익 주지사인 만프레드 레이에스 비야가 1월 첫 주에 ‘자치’(좌파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이끄는 중앙 정부로부터 사실상 분리 독립을 뜻하는) 문제를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데 있었다. 2006년 7월에 이미 전 국민을 상대로 지방 ‘자치’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고, 코차밤바 주민의 약 63퍼센트가 자치에 반대표를 던졌다.
볼리비아 동남부의 우익 주지사들은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모랄레스 정부의 천연자원 국유화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자치’를 요구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레이에스 비야의 도발은 이를 위한 대리전이었다.
대중은 즉각 레이에스 비야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코카 재배 농민들이 코차밤바 시내로 대거 몰려왔고, 노동자와 학생들이 가세했다. 대규모 시위대에 놀란 레이에스 비야는 우익의 근거지인 산타크루스 주(州)로 도망쳤다.
시위대가 코차밤바 중심가를 장악하자 우익 깡패들이 행동에 나섰다. 1월 11일에는 이들이 시위대들을 무차별 공격해서 2명이 죽고 1백50명이 다쳤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시위대를 겁먹게 만들기는커녕 이들의 투쟁이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도약하게 하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1월 16일 코차밤바 시내를 점거하고 ‘민중 주정부’를 구성한 대중은 그 자리에서 투표로 레이에스 비야를 해임하고 새로운 민중 주지사를 선출했다. 이것은 2006년 멕시코 오아하카(일부 언론에서 영어식으로 ‘오악사카’라고 표기한) 같은 ‘이중권력’ 상태가 시작됨을 뜻한다.
오아하카
유감스럽게도 모랄레스 정부의 주요 인사들 ― 모랄레스뿐 아니라 알란 가르시아 부통령 등 ― 은 이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대중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주지사를 그런 방식으로 해임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모랄레스는 대중이 “폭력을 피하고” 국민소환제라는 합법적 수단의 도입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랄레스 정부가 집권하고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2003년과 2005년 악법을 무시한 대중의 단호한 투쟁 덕분이었다. 그리고 레이야스 비야를 대중이 불신임하고 해임한 것은 국민소환의 정신을 실천한 완전히 민주적인 행위다.
무엇보다, 우익이 대중 운동을 공격하기 위해 신속하게 정치적·물리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중 권력기관의 해체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코차밤바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우익의 힘에 맞서기 위해 다른 지역의 대중 운동과 연대를 건설하고 코차밤바의 사례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미 코차밤바의 사례에 고무받아 라파스에서도 우익 주지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결국 코차밤바 투쟁의 성공 여부는 모랄레스 정부가 밟고 있는 개량주의적 노선을 극복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권력이 얼마나 신속하게 확산되고 조직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투쟁은 2003년과 2005년의 혁명에 이어 그런 대안을 추구하는 혁명적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