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독자편지 영화평 〈주토피아 2〉:
디즈니도 눈치보게 만든 미국의 대중 운동

지난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미국을 뒤흔들었다. 이스라엘의 학살에 분노한 사람들이 캠퍼스와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벌였다. 경찰의 잔혹한 탄압에도 “멈추지도 쉬지도 않을 것이다(We will not stop, We will not rest)” 하고 외치며 저항을 이어갔다.

이 열기 속에서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옥죄려 했다. 트럼프 정부는 컬럼비아대학교의 대학원생이자 미국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앞장선 팔레스타인인 마흐무드 칼릴을 구금했다.

동시에 트럼프는 대대적인 이민자 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평범하게 장을 보거나 퇴근하던 이민자들을 폭력적으로 납치·구금했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로스엔젤레스 등지에서 거대한 저항을 벌였다.

이 물결 속에서 반트럼프 운동이 시작됐다. 반트럼프 운동에 참가한 미국인들이 “왕은 없다(No kings)”를 외치며 팔레스타인 국기를 등에 메고 멕시코 전통음식 타코를 그린 팻말을 들었다. 영어 단어 타코(Taco)는 ‘트럼프는 언제나 먼저 꼬리를 내린다(Trump Always Chickens Out)’의 앞글자와 철자가 같아, 트럼프를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

〈주토피아 2〉는 바로 이런 운동들의 커다란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뱀이 없는 곳

영화는 경찰이 된 닉과 주디가 주토피아에 침범한 뱀을 조사하면서 시작된다. 100년 전에 뱀이 끔찍하고 잔인한 동물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이후 모든 뱀들은 주토피아에서 쫓겨났다.

그 조사의 과정에서 스라소니인 링슬리 가문이 주도하는 영토 확장 계획의 이면이 드러난다. 스라소니들은 습한 기후에 사는 동물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도시를 밀어내고 그곳을 눈 덮인 추운 땅으로 만들려 한다.

그 작은 도시는 주토피아 외곽에 있는 낡고 폐쇄적인 곳으로 묘사된다. 미국의 이민자들, 특히 가난한 노동계급이 거주하는 허름한 동네를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서 특히 위험하고 구석진 곳에 사는 이구아나들은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자신들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동물임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지금 미국의 이민자들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가 전개되며 주인공은 스라소니들이 특히 뱀을 지독히 혐오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뱀 게리는 자신이 주토피아에 들어온 이유가 바로 스라소니에 맞서 가족의 명예와 고향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목표

게리의 목표는 스라소니에 의해 지워진 자신들의 고향 마을을 되찾고 거기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지도 위에서 지워지는 뱀의 마을은 이스라엘에 의해 지워지는 팔레스타인을, 뱀의 마을에 세워진 거대한 장벽은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연상시킨다. 이 외에도 뱀 게리가 고향을 찾아가려 애쓰는 팔레스타인인을 은유한 것임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의 결말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과 이민자 방어 운동의 참가자들에게 큰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 게리가 좌절한 주디에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자신을 위해 싸워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된다고 말하며 손을 내민다. 그리고 혼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함께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연대 운동의 참가자들은 이 장면에서 우리가 왜 연대와 저항에 나섰는지를 되새기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

그런데 이 영화가 BDS 운동의 보이콧 대상으로 알려진 디즈니에서 만들어졌다는 점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정확히는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가 보이콧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국제 BDS 운동은 디즈니의 자회사인 마블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미화하고, 영화에 이스라엘 출신 배우들을 출연시켰기 때문에 디즈니플러스 보이콧을 호소했다.)

심지어 지난 9월 디즈니는 인기 방송인 지미 키멀이 마가(MAGA) 지지자들을 비난하자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그가 진행하는 쇼를 무기한 방영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이주민 방어 운동의 힘이 보이콧 대상으로 콕 찍힌 디즈니도 눈치 보게 만들 만큼 크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는 영화 초반부터 잘 드러난다. 이제 막 경찰이 된 주인공 닉과 주디는 영화 초반부터 경찰 지위를 박탈당하고, 오히려 경찰들에게 쫓겨다닌다. 순전히 영화 내 설정대로라면, 주인공 주디는 1편 내내 경찰이 되고 싶어했기에 2편인 이번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경찰로서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경찰로서 활약하지 못하게 설정한 이유는 실제 미국 경찰의 끔찍한 폭력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라도 경찰 제복을 입혀 놔서는 결코 공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디즈니도 짐작했을 것이다.

이는 분명 캠퍼스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탄압하는 경찰 폭력에 저항했던 학생들, ICE의 폭력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힘이 얼마나 폭넓고 깊은지를 보여 준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간이 매우 긴 것을 고려하면 이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며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디즈니조차도 눈치 보게 만든 거대한 운동들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카카오톡 채널, 이메일 구독,
매일 아침 〈노동자 연대〉
기사를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 설치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