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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파업의 교훈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단은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올봄 한국 정치의 주역은 바로 발전 노동자들이었다. 공공 3사 동맹 파업은 김대중 정부를 전보다 더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발전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저항 때문에 지배 계급 일부는 분열했다. 3월 18일 한나라당 이부영·안영근 등 국회의원 26명은 “발전소 매각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 정부는 더 이상 강경책으로 노조를 자극하지 말”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산업자원부 차관 임내규 는 “의원들의 거중조정이 자칫 노조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번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정부의 신경질적인 강경 탄압은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4월 2일 연대 파업을 유보하자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동자들은 “합의안 내용이 항복문서나 다름없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노총 이홍우 사무총장은 “어쩔 수 없었다. 총파업 이틀째인 4월 3일부터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지도부는 교섭 타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2차 파업 때는 2월 26일 1차 연대 파업 때보다 4만 명이 더 많은 16만 명이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배신당한 것을 안 4월 2일 밤에도, 명동성당에 2천5백여 명이 모일 정도로 발전 노동자들 자신도 굳건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부와의 정면 대결을 회피하려 했다는 게 진정한 문제였다. 김대중은 발전 파업에 시종일관 단호했다. 발전소 매각 철회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의 파산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3월 초부터 사복 경찰과 전투 경찰을 번갈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에워싸고, “연대 파업에 들어가면 허영구, 양경규 등 민주노총 지도부를 체포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협박했다.

노조 상층 기구가 정부에 의해 위협받자 노조 지도자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 이홍우 사무총장은 “파업에 들어가면 공안정국이 됐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노조 지도자들은 소심하기 짝이 없었다. 현장 조합원 대중의 힘에 의존해 정부와 정면 충돌하기를 꺼렸다. 정부·자본가와 노동자 양쪽에서 오는 압력이 둘 다 막강할 때 노조 지도자들은 샌드위치 꼴이 되곤 한다. 발전 파업이 바로 그랬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김대중 정부와 발전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조 지도자들은 옴짝달싹 못하다 결국 항복하고 만 것이다.

소모전?

그러나 파업 동력을 핑계대는 것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대 주장을 “국민파”(포퓰리스트들)한테서 듣게 되는 것은 아니러니다. “국민파”에 속하는 보건의료노조 차수련 위원장은 4월 8일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동력이 부족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우리 능력이 그 정도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4월 2일 오전 10시 산별대표자회의에서 “보건의료노조는 파업 못한다”고 못박았던 것이 바로 차수련 위원장 자신이었다.(“중앙파” 지도자들은 이러한 “국민파”의 연대 파업 회피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핑계 삼아 파업을 철회했다.) 그랬던 “국민파”가 이제 와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왜일까? “중앙파” 지도부가 물러난 뒤 “국민파” 지도부가 추구하려는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최근 노동사회연구소의 발전 파업 평가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파”의 이데올로기적 지도자격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원보 소장은 “민주노총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힘이 약할 때는 힘을 비축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그 동안 지나친 ‘소모전’ 양상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연구소 이사장인 김금수 씨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패배주의도 안 되지만, 투쟁주의와 맹동주의도 안 된다.” 끝까지 투쟁할 것을 주장했던 현장 조합원들에 대한 은근한 공격이자, 민주노총이 더욱 우경화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현실주의를 표방함에도 현실적이지 않다.

정부가 “민영화 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교섭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교섭력” 운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부가 교섭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라도 단호한 파업이 필요했다. 정부와 사장들이 한사코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지금 같은 경제 위기 때 교섭력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 투쟁에 의존하는 “투쟁주의”다.

발전노조 지도부한테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발전노조 지도부는 파업 철회의 책임을 민주노총에 떠넘기는 식으로 책임을 면피하려 했다. 이호동 위원장은 “총연맹으로 교섭권이 넘어간 상황이었다. 총회를 열려고 했지만, 성원이 어려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교섭단이 아무리 교섭권을 위임받은 상급단체라 하더라도 발전노조 지도부와 내용적 소통이 있지 않고서는 안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그것이 발전노조 지도부가 동의하지 않았던 안이라면 총회를 급하게 폐기시키고, 다른 쟁대위원들의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로 복귀명령을 비공식적으로 내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4월 6일자 〈노동자의 힘〉 성명서)

대안 건설하기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위기를 1998년 상황과 비교하고 있다. 1998년 2월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정리해고 법제화라는 노사정 합의안에 동의했다가 현장 조합원들에 의해 불신임당했다.

그러나 역사가 단순히 반복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1998년 당시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국민파”였다. 이번에는 “중앙파” 차례였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노동자 투쟁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노동자 투쟁의 성장은 좌파 지도부의 관료주의(소심한 무사안일주의)를 입증시켰다.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투쟁의 전망이 암울한 것은 아니다. 발전 노동자들의 단호함은 그야말로 영웅적이었다. 또한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은 새로운 부문이 노동자 운동의 열쇠를 쥐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분명 이것은 노동자 운동의 발전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 투쟁에 브레이크를 걸곤 한다. 그러나 힘이 센 차를 보통의 브레이크로는 멈출 수 없듯이, 노동자들의 힘이 셀 때는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일시적으로 노조 지도자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투쟁이 발전할 수도 있다. 정권 말 위기에 처한 김대중이 섣불리 구조조정을 서두르다 언제든지 다시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더욱이 계급 투쟁은 산업(경제) 쟁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정부 투쟁이라는 명칭의 정치적 계급 투쟁이 있는가 하면, 노무현 논쟁은 국가 권력의 문제, 대안의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계급 투쟁이다. 노동자 운동의 고양기는 사회 변혁을 바라는 활동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노동조합 쟁점뿐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쟁점들을 회피하지 않고 주장을 펴고 때때로 그것들을 둘러싼 운동을 건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지한 투사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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