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파업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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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단은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올봄 한국 정치의 주역은 바로 발전 노동자들이었다. 공공 3사 동맹 파업은 김대중 정부를 전보다 더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발전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저항 때문에 지배 계급 일부는 분열했다. 3월 18일 한나라당 이부영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4월 2일 연대 파업을 유보하자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이홍우 사무총장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부와의 정면 대결을 회피하려 했다는 게 진정한 문제였다. 김대중은 발전 파업에 시종일관 단호했다. 발전소 매각 철회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의 파산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3월 초부터 사복 경찰과 전투 경찰을 번갈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에워싸고,
노조 상층 기구가 정부에 의해 위협받자 노조 지도자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 이홍우 사무총장은
소모전?
그러나 파업 동력을 핑계대는 것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대 주장을
그러나, 4월 2일 오전 10시 산별대표자회의에서
그러나, 이런 결론은 현실주의를 표방함에도 현실적이지 않다.
정부가
발전노조 지도부한테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발전노조 지도부는 파업 철회의 책임을 민주노총에 떠넘기는 식으로 책임을 면피하려 했다. 이호동 위원장은
대안 건설하기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위기를 1998년 상황과 비교하고 있다. 1998년 2월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정리해고 법제화라는 노사정 합의안에 동의했다가 현장 조합원들에 의해 불신임당했다.
그러나 역사가 단순히 반복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1998년 당시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투쟁의 전망이 암울한 것은 아니다. 발전 노동자들의 단호함은 그야말로 영웅적이었다. 또한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은 새로운 부문이 노동자 운동의 열쇠를 쥐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분명 이것은 노동자 운동의 발전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 투쟁에 브레이크를 걸곤 한다. 그러나 힘이 센 차를 보통의 브레이크로는 멈출 수 없듯이, 노동자들의 힘이 셀 때는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일시적으로 노조 지도자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투쟁이 발전할 수도 있다. 정권 말 위기에 처한 김대중이 섣불리 구조조정을 서두르다 언제든지 다시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더욱이 계급 투쟁은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