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인터뷰: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말하는 유럽 좌파 정치, 스웨덴 모델, 카이로회의
〈노동자 연대〉 구독
시애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투쟁의 물결은 초창기에는 주로 사회 운동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사회 운동에 관한 모종의 낭만주의도 있었습니다.
즉, 사회 운동은 자율적이며, 정당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신자유주의에 도전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도전하면서도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는 등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도전하려면 매우 정치적이어야 하며 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국에서 리스펙트를 출범시킨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반전 운동이 결국 블레어의 전쟁을 막지 못한 것은 블레어가 대다수 영국인들의 의사를 무시할 태세가 돼 있었기 때문이었죠. 따라서 기존 정당 체제에 대한 정치적 도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대표체를 건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갖가지 이데올로기적 쟁점과 정치적 쟁점들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사회 운동의 정치적 대표체를 건설하기’, 그리고 동시에 ‘올바른 대표체를 건설하기’라는 양대 과제가 존재하는데, 이 둘이 결합되지 못한 경우 온갖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2005년 5월 29일에 유럽연합 헌법을 부결시킨 광범하고도 빼어난 공동전선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선에서 그 운동을 대표할 단일 후보가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 운동에 참여한 주요 정치 조직들, 특히 LCR의 다수파와 공산당의 이기주의가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 둘은 자기 조직의 이익을 운동의 이익보다 우선시했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 대선 정국은 사회당의 세골렌느 루아얄과 우파의 니꼴라 사르코지, 이 양대 신자유주의 후보들이 주도하게 됐고 극좌파 후보는 6명이 난립했습니다. 재앙이죠.
그러나 좀 더 나은 좌파 정당조차 심각한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이 중도좌파 연립정부에 참여한 것이 그 예입니다.
베를루스코니를 몰아내기 위한 연합에 참여한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렇다고 중도좌파 연정에 참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재건 공산당은 연정에 참여함으로써 이탈리아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결정에도 손 들어주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는 한 때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이탈리아 반전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탈리아 반전 운동은 사기저하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제가 알기로는 서독의 선거대안과 동독의 PDS-좌파당의 통합은 진전되고 있기는 하나 매우 ‘독일식으로’ ? 즉 느리고 꼼꼼한 방식으로 ?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당은 의미 있는 득표도 했고 매우 비중 있는 세력들을 규합했습니다.
그러므로 독일의 사례는 비교적 희망적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통합 신당의 주된 정치 성향은 좌파 사회민주주의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저의 마지막 주장과 연결됩니다.
저는 이 모든 사례들의 배경에는 어떤 가상의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선거에서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지만 원칙 있게 행동하지 못하는 광범한 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 운동에 진지하게 개입하지 못하는 ‘순수한’ 혁명 정당을 건설할 것인가?‘라는 거짓 딜레마 말입니다.
LCR의 다수파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단일 후보 운동 전반을 극도로 불신했고, 따라서 그것을 회피했습니다. 그들은 단일 후보 시도가 실패할 것이고 공산당이 운동을 배신할 것이라는 등의 예견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기실현적 예언이었습니다. LCR이 그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재건 공산당은 광범한 정당이지만 지도자인 베르티노티가 개량과 혁명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흐렸습니다.
이러한 거짓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일에 깊숙하게 개입하면서 확고한 정치적 원칙을 견지하는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국제사회주의(IS) 경향이 하려고 노력해온 일입니다.
스웨덴 모델에 대해
제가 이해하는 스웨덴 모델은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 비교적 관대한 복지 국가, 복지국가를 뒷받침하는 비교적 높은 세금으로 구성돼 있다.
유럽에서 복지 국가가 가장 후퇴한 영국에서 살다 보면 스웨덴 모델이 영국 모델보다 확실히 나아 보입니다. 영국 모델은 완전히 재앙이죠.
그러나 스웨덴 모델의 전제조건은 세계적 경쟁력입니다. 그런데 경쟁의 압력은 항시 증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값싼 공산품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죠. 이 때문에 스웨덴 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인력 감원과 해외 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기업들의 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러한 압력에 취약합니다.
제가 알기로, 작년 선거에서 패배한 전 사회민주주의 정부 하에서도 이미 공공지출의 점진적 삭감, 시장 개혁 조치의 도입 등 사회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4년 전에 스웨덴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 스웨덴 좌파 정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영국의 ‘제3의 길’에 관해 발제한 적이 있습니다. 토론회가 끝나고 조직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설명한 블레어 정부 하에서의 상황은 우리의 상황과 똑같다” 하고 말이죠.
즉 그들도 스웨덴을 예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 집권한 우파 정부가 예전 정부보다 시장개혁을 훨씬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비록 노조들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스웨덴 모델이 점점 더 큰 압력에 노출되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남한의 좌파들은 멀리 있는 곳에서 모델을 찾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남한의 노동계급 투쟁에서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카이로 회의의 중요성에 관해
이번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열리는 카이로 회의는 제5차 회의가 될 것입니다. 카이로 회의는 양대 세력이 손을 잡은 결과입니다. 한 편에는 유럽, 특히 영국의 반전 운동과 급진 좌파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이집트의 주요 반제국주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세르주의 전통의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뿐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도 포함합니다.
이 점은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이집트가 아랍 세계에서 실로 가장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노동계급의 수는 중동 지역 최대이며 최근에는 파업 투쟁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집트의 지배자인 무바라크는 미국의 중요 동맹이기도 합니다.
2년 전에 미국은 무바라크에게 민주화를 권고했지만 민주화 요구가 사태를 불안정하게 만들자 입을 싹 다물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저항 세력들을 한 곳에 모으고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둘째, 오늘날의 커다란 성과 중 하나는 급진 좌파와 이슬람주의 간의 대화와 협력 증대입니다. 카이로 회의에 참가하는 주요 세력 중에는 무슬림 형제단도 있습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주의 조류들의 원조 격으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카이로 회의에 모이는 세력들의 역사와 정치가 서로 극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내에서 무슬림 형제단과 좌파는 종종 치열한 ? 때론 물리적인 ? 갈등을 벌여 왔습니다. 그들을 이집트와 미국에 있는 공동의 적에 맞서 단결했습니다.
[2006년 초]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지난 여름 이스라엘군을 헤즈볼라가 패퇴시킨 상황에서 우리가 이러한 동맹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면 이는 더 광범한 반전·반제국주의 세력들의 결집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번 카이로 회의는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
저 또한 카이로에 가려고 하며, 훌륭한 반전·반자본주의 활동 역사가 있는 남한 참가단이 그 자리에 대거 참가한다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