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왕과 사는 남자〉:
왜 사람들이 많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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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가 오랜만에 천만 관객을 모을 것 같다.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웃다가 울다가 하는 경험 자체가 오랜만이라는 평들이 많다.
이야기는 조선 궁중 암투의 기록과 현대적 허구의 결합이다.
기록은 이렇다.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왕좌에서 물러난 어린 왕 단종은 2년 뒤 사육신의 복위 기도가 발각되면서 폐위돼 노산군으로 강등된다. 그렇게 강원도 산골로 유배된 단종은 4개월을 더 살고 결국 처형 또는 살해된다.’
이것들을 단초로, 소년 왕이 가난한 평민들과 어울리면서 회복하고 각성하는, 가상의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 갈등과 해소, 감정과 전환은 영화에서 거의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 단위로 분절된다.
이는 숏폼 환경에 대한 영화 산업의 상업적 적응처럼 보인다. 관객들이 한 감정을 지속하는 시간과 한 상황을 곱씹는 정도에 대해 주류 영화계는 어느덧 회의적인 듯하다.
대신 이렇게 짧아진 장면 호흡만큼 배우들 연기 ‘차력쇼’의 비중이 정말 커졌고 실제로 이 영화에서 그만한 힘을 발휘한다.
물론, 1450년대 조선에서 왕이 평민들과 겸상을 하고 의리와 우애를 나누며 반상의 질서(신분 질서)를 감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뛰어넘는 것은 현실의 유럽 ‘계몽’ 군주들이 300년 뒤에나 보여줄 (얄팍한) ‘개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제작자들도 이런 얼토당토아니함을 잘 알기 때문에 “전하”나 “저하”의 호칭은 가능하지만 실권은 없는 왕적 존재들로 설정하곤 한다. 그래서 전직 왕인 소년(〈왕과 사는 남자〉), 왕을 대체한 광대(〈광해, 왕이 된 남자〉), 좀비(역병)에 맞서는 세자(드라마 〈킹덤〉)를 등장시킨다.
요컨대, 이런 판타지는 왕정에 대한 향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왕과 왕실 판타지가 계속 재생산되는 이유는 첫째, 자본 입장에서 안전하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된 과거의 권력이라 다루기 더 안전한 것이다. 동시에 한류 등 여러 이유로 이윤 창출에 좋은 상품이다. 따라서 조선 왕실 서사물은 과잉이 됐다.
둘째, 사람들이 느끼는 결핍과 열망을 비틀어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말하기 위해 과거를 끌어오는 것은 현생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 〈자산어보〉와 드라마 〈추노〉처럼 과거를 현재를 비추어 보는 반사경이나 현재를 말하기 위한 우회로로 쓸 수 있다.
‘빨갱이 사냥’이 한창인 1950년대 미국에서 아서 밀러가 희곡 《시련》(원제: 더 크루서블)을 발표한 것은 교과서적인 사례였다. 17세기 마녀사냥을 빌려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오히려 더 또렷하게 전할 수 있었다.
영화는 특히 영화가 그려 낸 시대보다 영화가 공개된 시기가 중요할 때가 많다.
그렇게 볼 때 이 영화가 이 시기에 정치적 마취제처럼 작용할 것 같진 않다.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사회적 경계심을 재확인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세조가 등장하지 않는 대신, 한명회(유지태 분)가 대표하는 탐욕스럽고 유해하기 그지없는 권력자 무리가 나온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단종(박지훈 분)이 한명회와 직접 대립하는 장면이다. 엄흥도(유해진 분)의 아들이 부당하게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을 때(곤장 맞고 죽는 일은 정말 흔했다) 단종은 한명회를 향해 가장 극적이고 격렬한 분노를 보여준다.
영화 전체에서 단종은 별로 권력자로 보이지도 않지만, 특히 이 장면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선 열여섯 살 소년/청년으로 보인다. 드라마 〈약한 영웅〉의 연시은(역시 박지훈 분)도 떠오르지만, 그는 연시은만큼 싸울 수도 없는 처지다. 곤장을 맞고 있는 소년/청년도 그 모습에 눈물을 떨군다.
단종은 자신의 명령을 이행시킬 수도 없고, 한명회는 처벌받기는커녕 난폭하게 그들 위에 군림한다. 관객에게 ‘저런 권력이 정당화돼선 안 된다’는 사회적 정의의 감각을 재현할 만하다.
‘저런 악한 권력자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감각은, 이를테면 다가올 지방선거 투표에서 표현될 경계심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겨울을 두 번 겪는 동안 우리가 정치적 파란에서 얻은 기억과 감각이 장차 그보다 더 나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