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에 드리운 불황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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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증시 폭락은 2001년 이후 최악의 폭락을 기록한 미국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고, 뒤이어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번졌다.
이번 동반 폭락은 세계경제의 투기적 성격뿐 아니라 현재 세계경제가 얼마나 중국과 미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 줬다.
올해 초만 해도 불황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던 언론들도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여 ‘위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주 금요일 중국 증시가 다소 회복되자 언론은 성급하게 ‘위기가 지나갔다’고 떠들었다. 3월 2일치 〈파이낸셜 타임스〉사설은 미국과 중국 기업들의 이윤이 기록적이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기본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했다.
낙관적 논평을 하는 사람들은 비록 앞으로 중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해마다 10퍼센트씩 성장해 온 중국 경제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계속 성장할 것이고 그래서 이번 같은 ‘일시적 위기’가 만성 불황으로 심화하지는 않을 거라고 기대한다.
주요 경제들의 증권시장 시세가 앞으로 몇 달 동안 불균등하나마 일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증시가 과거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 증시의 하락세도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번 소동으로 중국 경제와 밀접한 신흥시장들에 대한 믿음이 상당히 흔들렸다. 이 국가들 중 하나에서 갑작스런 외국 자본 탈출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 경제와 중국 경제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 경제가 이런 충격을 흡수할 만큼 성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인가이다.
이윤율 하락 경향
지난 몇 년 간 중국의 자본 축적은 역동적이었다. 중국 GNP(국민총생산)의 거의 50퍼센트가 자본 축적에 투입됐다. 이것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기록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적인 축적 과정 자체가 위기의 씨앗들을 품고 있다. 과잉생산과 이윤율 하락 경향이 그것이다.
첫째, ‘대박 터진’ 중국 국영·민간 기업들 얘기가 연일 전 세계 일간지를 장식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은 국제·국내 시장에서 서로 ‘박 터지게’ 싸운다. 중국 내수시장의 성장 속도는 생산 증가 속도에 한참 뒤진다. 그래서 중국 생산품의 90퍼센트가 과잉생산 상태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지난 몇 년 간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해 많은 중국 기업들이 적자를 보고 있다.
실제로,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2006년 11월호에 수록된 웨이지안 샨의 계산을 보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면 진작 무너졌을 중국 국영기업들이 수두룩하다.
둘째, 엄청난 자본 축적 때문에 이윤율 하락 경향이 심화했다. 중국 경제는 개방 이후 25년 동안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엄청나게 고도화했다. 특히,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후안강은 2006년 5월 발표한 논문에서 2000년 이후 중국 고정자본 대 노동종사자의 증가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설사 〈파이낸셜 타임스〉의 지적처럼 일부 중국 기업들의 이윤양은 늘고 있을지 몰라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계산을 보면 경제 전체의 이윤 증가 속도는 오히려 빠르게 하락중이다. 4대 은행의 엄청난 부실대출도 단지 판매 부진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와 연관돼 있다.
중국 경제의 이런 근원적 불안정성은 1998년 이후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과 부동산 거품, 대미 수출 성장 덕분에 억제돼 왔다. 문제는 중국 총수출의 30퍼센트를 소화하는 미국 시장의 전망이 영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1970년대 위기 이후 미국 자본주의는 전후 호황 때의 이윤율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1980∼90년대에 착취율을 늘려 이윤율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이조차 2000년 ‘닷컴 호황’ 붕괴 이후 까먹었다. 그럼에도 부동산 거품과 해외차입 덕분에 지금까지 중간계급과 부유층 중심의 소비 호황을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2월 14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미국의 중앙은행) 의장 버냉키도 비슷한 경고를 했다.
물론 앞서 말한 요인들이 자동으로 전 세계 불황을 낳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불안정성이 양대 자본주의 열강 ― 미국과 중국 ― 의 근본적 문제에서 비롯한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
먼저, 이것은 개별 자본에게 구조조정을 통한 착취율 강화와 다른 자본들에게서 이윤을 빼앗아오는 ‘거친’ 수법[자본 내 이윤 재분배]을 써야 한다는 압력을 가중시킨다.
또, 자본들과 유착한 특정 국민국가는 자국 자본이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군사력 사용까지 포함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전 세계적 자본 구조조정과 계급갈등 격화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일차적 목적은 구조조정을 통해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비록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일부 나라들에서 이런 시도가 타격을 입었지만 자본들은 여전히 이 정책을 굳건히 추진한다. 지난주에도 유럽의 대표적 대기업인 에어버스가 1만 명 규모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 전 세계 주가 폭락 사태를 보며 구조조정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한 자본가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중국 자본가들도 똑같은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중국은 이미 1990년대 말 국영기업들을 대거 구조조정했다. 그러나 당시는 “큰 것을 손에 쥐고 작은 것을 버린다(拿大放小)”는 취지에서 대규모 국영기업을 배제한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언론 보도를 보면, 대규모 국영기업을 포함한 또 한 번의 구조조정이 임박한 듯하다. 민간기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약간 모순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 시장화 확대와 구조조정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농민 생활수준 향상과 환경보호, 관리 부패 척결을 말한다. 이번 3월 5일에 시작한 전국인민대표자대회(이하 전인대)의 안건을 봐도 그렇다.
중앙 정부가 그런 양보 정책을 고려하는 이유는 문제들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를 봐도, 2005년에만 노동조건, 농촌 문제, 환경오염, 관리 부패 등에 항의하며 1백 명 이상이 참가한 ‘군체성 사건’이 8만 7천 건이나 일어났다.
또, 노동자들과 농민공들의 처우 불만에서 비롯한 이직률이 앞으로도 계속 70~80퍼센트로 유지되면 산업 고도화에 필요한 숙련 노동력 형성은 요원한 일이 된다.
그러나 실제 중국공산당의 정책을 보면 시장화와 구조조정이 훨씬 중요하다. 일례로, 전인대 안건으로 논의된 것들 중 사유재산 보호를 법적으로 명시하는 물권법은 그대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반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노동법 개정안은 국내외 자본가들[과 상당수 공산당 관리들]의 압력 때문에 핵심 부분이 삭제됐다.
이런 시장화 확대와 구조조정 강화는 중국 내 계급갈등을 더 첨예하게 만들 수 있다.
1990년대 말 구조조정 때는 엄청난 경제성장 덕분에 충격을 상당히 흡수할 수 있었지만, 세계경제 전망이 어두워지면 상황이 사뭇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중국 지배자들은 그런 상황이 닥칠 때 단결해서 대응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부유한 상해·연안과 가난한 내지(內地)), 인맥(전 주석 장쩌민의 상하이파(派)와 현 주석 후진타오의 공산당청년단파), 이데올로기(다수의 개혁·개방파와 소수의 마오쩌둥주의자들)에 따라 분열해 있다. 만약 중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다면 경제 잉여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훨씬 치열해질 것이다.
경제성장률 둔화와 지배자들의 분열은 1979∼80년 민주벽 운동이나 1989년 천안문 항쟁처럼 하루에 1억 명 이상이 거리 시위를 벌인 대규모 저항과 투쟁을 고무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 노동계급의 수는 당시보다 갑절 이상 늘었고, 개방 초기에 농민들이 공산당에 품었던 환상은 많이 사라졌다.
이들의 거대한 투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세계적 세력 균형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 격화
세계경제가 호황일 때는 자본축적에 필수적인 석유 등 원료 확보, 국제 시장에서 자국 자본의 권리 확대 등의 문제가 주요 제국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평화적’ 방식[제국주의 세력관계의 현상유지]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지거나 그런 위기가 예상될 때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본 지원 활동’은 점점 더 위험한 성격을 띤다. 예컨대, 군사적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충동에 더 쉽게 이끌린다. 부시 정부는 이미 그 사례를 보여 줬다.
중국이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등에 상당한 군사적 지원과 함께 진출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1929년 대공황 같은 엄청난 파국이 일어나고 국가들 간의 관계가 엄청나게 변하지 않는 한은 그런 갈등이 당장 주요 열강 간 전면전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략처럼 열강이 이권을 차지하려고 중소 국가를 공격하거나, 대리전(에티오피아를 앞세워 소말리아를 침략한 것) 같은 방식은 가능하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열강간 전면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타이완 문제는 중-미 갈등이 장차 군사적 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다.
최근에도 미국이 대만에 첨단무기를 판매한 것을 둘러싸고 중-미 갈등이 불거졌다.
현재 미국과 중국 관계를 그런 대로 조화롭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양국 경제의 상호의존 성장이다. 만약 이 관계가 흐트러진다면 양국 지배자들 내에서 서로 상대국을 협력자보다는 경쟁자로 보는 쪽이 우세해질 수 있다.
이미 미국 지배자들 내 일부는 민주당을 내세워 중국 자본의 미국 시장 진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차 심각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한다면 그런 경향은 한층 심화할 것이다.
이번 증시 폭락으로 드러난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을 보면, 전 세계 좌파들의 정치적 과제가 더 막중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