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 아슬아슬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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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이회창은 “급진 세력이 좌파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며 김대중과 노무현을 공격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홍세화 씨는 김대중이 “만델라인 줄 알았더니 대처더라.…철도·가스·발전 등 공기업의 사유화(민영화) 정책은 대처 이상으로 단호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하고 말했다.
그런데 우파들이 현 정부를 “좌파적”이라고 억지부리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 개혁을 열망하고 공공연히 “시장 경제 원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파들의 색깔 공세는 2월 말부터 공기업 사유화 정책에 도전했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무현을 통해 드러나는 거대한 민주 개혁 열망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회창은 주도면밀하게 현 정권의 정책이 “안정을 희구하는 국민 뜻”에 배치되는 “좌파적 정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민주 개혁에 대한 자신의 본능적 거부감을 “안정”이라는 말로 치장한다. 마치 국민의 다수가 “보수”를 지향하는 양 말이다.
그러나 〈문화일보〉와 YTN의 4월 정기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1.7퍼센트가 “진보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한다.”
좌에서 우로
이렇듯 우파들의 낡은 주장은 점점 대중적 환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동시에, 실업·가난·빈부격차 등을 낳는 시장주의 정책도 거대한 불만을 낳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회창도 김대중도 아닌 대안적 정치인의 등장을 바라고 있다.
바로 이런 열망이 노무현 ‘돌풍’을 낳았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김대중을 뛰어넘는 개혁 정치인의 면모를 노무현한테서 발견하는 듯하다.
노무현은 1980년대에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노무현은 1981년 무림사건을 계기로 재야 운동에 투신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군사 독재에 저항하고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지배자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체제 전복적 운동”이라고 매도할 때, 1988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오히려 재벌과 군부야말로 “[노동자들의] 가슴에 분노와 증오가 응어리지게 하는” “민주체제의 파괴를 재촉하는 집단”이라고 말했다. 또,“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를 금지한 “악법은 따르지 않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노무현은 1987년 노동자 대항쟁을 경험하면서 노동자 투쟁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노동자 투쟁이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독점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깨뜨리고, 노동자에게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세워지는 그 날”을 만들 수 있는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89년 7월 6일 현대중공업 신임노조 출범식 연설에서 사회주의에 가까운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다.”노무현은 후진국이 가난한 이유가 “선진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수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주한 미군 철수를 지지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면서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세계의 흐름이 바뀌어 혁신 또는 진보 노선은 인기가 없어져 버린 것 같다.”(《말》 1993년 5월호) 하고 말했다. 그리고 “1991년 통합민주당 대변인이 된 후 김대중 총재와 토론하는 과정에서 주한 미군 철수는 재야에서는 주장할 수 있으나 외교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공당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 조율을 하게 됐다.”노무현의 우경화는 노동자 투쟁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노무현은 1999년 삼성자동차와 2001년 대우자동차 해외 매각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을 지고 매각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면서 공장이 가동되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을 거부하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노동자들에게 달걀 세례를 받기도 했다.
또,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때 그의 중재로 해고된 식당 아주머니들이 노무현의 선거 사무소에 찾아와 시위한 것을 두고 “어디까지나 작은 소란”이라고 무시했다.
딜레마
노무현은 민주 개혁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를 획득해야 하지만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김대중과 민주당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이게 바로 노무현의 딜레마다. 이 때문에 최근 그의 말과 행동은 좌충우돌과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발전소 사유화 문제에 대해 그는 처음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이인제가 “김대중 대통령은 철도, 가스공사 등의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중인데 노 후보는 반대했다”고 공격하자, 노무현은 “민영화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발전소 사유화에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발전·가스·철도 등 네트워크 산업 분야는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노무현의 딜레마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사례는 김대중의 세 아들에 대한 특검제 도입 문제를 둘러싼 태도다. 그는 정권의 총체적 부패에 대한 대중적 증오를 염두에 두고 “부정부패를 완전히 뿌리뽑겠다”며 한시적 특검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김대중의 세 아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한 발 물러섰다.
노무현은 색깔 시비에 대해 자신이 “민주당의 색깔이고 김 대통령의 색깔”이며 김대중의 노선과 이념을 “확실히 계승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무현은 우파들의 색깔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우파들에 타협한다. 그는 종종 대중의 열망을 거슬러 기업에 친화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부자가 존경받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하는 사람들도 덩달아서 존경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도록 약속드립니다.”사장들의 이윤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를 파괴하는 “민영화는 계속 추진”하고, 대표적 반환경사업인 새만금 간척사업은 “대통령이 되면 착실히 추진해 나갈 것이다.”이제는 자신을 “시장경제 신봉자”라고 자처하는 노무현에 대해 대기업주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기업주들의 대변인 경총 부회장 조남홍은 노무현을 “Charming Politician(매력적인 정치인)”이라고 추켜세웠다. 또 기업인들은 노무현이 “제도권에 들어가면 바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그는 점점 더 기업주들의 입맛에 맞는 태도를 자주 보여 줄 것이다. 그럴수록 노무현은 시장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무시해야만 한다.
노무현은 기업주들의 돈과 로비로 운영되는 정당의 정치인으로서, 시장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정치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을 믿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은 십여 년 전에 오늘날 노동자들이 새겨 들을 만한 ‘명언’을 남겼다.
“[저는] 판사도 해보고 변호사도 해 보았습니다. 일단 높은 사람이 되고 보니, 끗발 좋은 자리에 가 놓고 보니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 사정은 알 수 없게 되어 있어요.…사람이 찾아 와도 주로 사장이나 이사나, 아니면 적어도 목에 힘깨나 주고 잘 나가는 사람을 만나서 술도 먹고 밥도 먹고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밤낮 듣는다는 소리가 ‘요즈음 노동자들 많이 달라졌다.…임금이 높아서 수출이 안 된다. 정말 걱정된다.’ 이런 것들입니다. 결국 없는 사람들이 믿을 것은 자기들뿐입니다.”(1988년 12월 26일 현대중공업 연설.)“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여러분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세우고 그 정당이 정권을 잡도록 해야 합니다.”(1989년 7월 6일 현대중공업 연설.)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