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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이라크 '철군안'사기극에 속지 말라

"4년 동안 미군 병사 3천1백 명과 이라크인 수천 명[원문 그대로]을 희생시킨 이라크 전쟁을 끝낼 구체적 일정을 처음으로 내놓게 됐다." 지난 8일 미국 민주당 원내 지도자들과 함께 이른바 '철군안'을 발표하며 미 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가 한 말이다.

이게 사실일까? 드디어 "민주당이 부시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을 시작"(〈BBC〉)한 걸까? 이 법안이 정말 "이라크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프레시안〉)을 뜻할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몇 가지만 살펴봐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첫째, 이 법안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7월 1일과 10월 1일에 이러저러한 "기준"들 ― 이라크의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안정, 이라크 정부의 독자적 치안 유지 능력 확보 ― 이 충족됐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각기 정해진 기한 내에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또, 이 모든 "기준"의 충족 여부와 상관 없이 내년 3월 1일부터는 무조건 철군을 시작해 8월까지 모든 병력이 떠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새 법안에 따라 부시가 입증해야 할 "기준"들이 부시 자신이 지난 1월 '증파'계획을 밝히면서 내놓은 바로 그 기준들이라는 점이다. 또, 이런 기준들의 충족 여부 평가는 완전히 부시의 자의에 맡겨져 있다.

심지어 부시는 "국익"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런 형식적인 입증 절차조차 미룰 수 있다.

둘째, 만에 하나 부시가 이런 "기준들"의 충족을 입증하지 못하면 정말 철군이 되긴 하는 건가?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법안에 따르면, 분명 일부 병력은 이라크에서 철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수만 명 가량의 병력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대(對)테러 작전 참가, 이라크 정부군 훈련, 이라크 국경 방어 등이 [남아 있는 군대의] 임무가 될 것이다. 바그다드나 종파간 폭력이 만연한 다른 도시들에서의 치안 유지 임무는 아예 시한 자체가 없다."〈LA타임스〉)

또, "민주당이 내놓은 법안에 따르면, 미군이 남아 있는 한 부시 대통령은 미군을 무장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셋째, 민주당이 내놓은 이 이라크 '철군안'의 전제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등도 포함하는 더 넓은 전장에서 '대(對)테러 전쟁'이 수행돼야 한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고참 의원인 데이빗 오베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법안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가진 자원 가운데 더 많은 부분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쟁 쪽으로 재배치하게 될 것이다."실제로, 민주당의 법안은 부시가 요청한 아프가니스탄 전비에 12억 달러를 추가했다.

다섯째, 그나마 이런 법안조차 통과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법안을 내놓은 민주당 지도부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의 일부 보수적 의원들(흔히, '블루독'이라고 불리는)은 이 법안조차 급진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설사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해도 부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 지난번 '증파 반대 결의안'추진 과정에서 공화당에게 무기력하게 굴복했을 때와 비슷하게 ― 민주당 내 분열은 더 커질 것이고, 민주당 지도부는 또 한번 꼬리를 내리려 할 것이다.

지난 11월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은 줄곧 이라크 쟁점에서 뒷걸음질쳐 왔다. 사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번에 내놓은 법안은 그 전까지 민주당 다수의 지지를 얻는 듯했던 존 머서 의원의 안 ― 역시나 진정한 철군안과는 거리가 멀다[〈맞불〉33호 관련기사 참조] ― 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 법안을 내놓은 진정한 이유는 부시의 '증파'계획에 대한 투항, 즉 '증파'관련 추가 예산안에 대한 지지와 도전 회피를 가리기 위한 꼼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할 만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면피용 핑계거리일 뿐이다.

반전 운동은 민주당에 아무런 기대도 갖지 말고 굳건히 대중적 반전 운동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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