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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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난과 기아 문제는 올해도 심각하다. 세계식량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발표를 종합해 보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년 2백만 톤 가량의 식량이 필요하다.
북한은 한편에서는 원자로와 미사일을 갖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기아로 허덕이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상반된 북한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북한 지배자들의 공식 이데올로기 때문에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체주의’에서 ‘지상 낙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와다 하루키 교수가 쓴 《북조선》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북한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등의 저자로 이 나라에서 잘 알려진 북한과 소련 전문가다.
《북조선》의 장점은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보여 주는 객관성이다. 저자는 한반도 문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미국, 소련, 중국, 일본의 자료들은 물론이고 생존자들의 증언에 기초해 이 책을 썼다.
그의 이런 노력 덕분에 이 책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관한 많은 신화들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백두산 산기슭에서 김정일(광명성)이 태어났다는 신화는 그 한 예다. 특히 만주 항일 전쟁기 김일성의 행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김일성 지배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북한 사회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또 해방 뒤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한쪽 주역들이었던 스탈린과 마오쩌뚱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과 그 구실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와다 하루키 교수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주장은 북한 사회가 유격대 국가라는 것이다.
“변함 없는 체제, 흔들림 없는 자세, 해이해지지 않는 정신이 이 나라가 지향하는 이상으로, 그 원형은 김일성의 만주 항일 유격대에서 구해진다. 북조선은 수령을 사령관으로 받들며 전 인민은 항일 유격대원의 자세로 생활하고 학습하고 생산하는 국가이다. 1948년 건국 이래 1967년부터 1972년에 걸쳐 2차적으로 형성된 체제를 나는 유격대 국가라 부른다.”(7쪽)훌륭한 역사가라 할지라도 모두 올바른 이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와다 하루키 교수가 주장한 유격대 국가론은 북한 사회의 전시 동원 체제를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유격대 국가론으로는 북한 사회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급속한 발전을 이룬 동학과 그 뒤 침체에 빠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 책의 부제(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가 암시하듯이 와다 하루키는 김정일 체제의 등장을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의 이행으로 보고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자그마한 변화 외에는 이 둘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김정일 체제를 그 이전과 구별짓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유격대 국가론이나 정규군 국가론은 국제적 환경 속에서 북한 사회의 변화 과정과 그 변화를 추동한 동력을 드러내줄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을 남한과 같은 소위 ‘정상’ 국가로서 파악하고 그 체제의 동학을 규명하는 것이 북한 사회와 지배자들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책은 이런 의문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북한 사회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정구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4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의 1인당 소비는 저소득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14배 많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이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저널리스트 바바라 에렌라이히는 《빈곤의 경제》에서 미국 노동자들의 형편없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복지 개혁으로 노동 시장에 내몰리게 된 약 4백만 명 가량의 여성들이 시간당 6∼7달러의 수입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저임금 노동자 생활에 뛰어든다.
미국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생활고는 주택 문제다. 아파트 한 채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다. 노동자들은 어마어마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
“미국 전국노숙자연합의 1998년 자료에 따르면 방 한 개짜리 아파트를 유지하고 살려면 시간당 임금이 8.89달러는 돼야 한다.” 그러나 저자가 플로리다 키웨스트에서 수십 군데 입사 지원을 통해 겨우 찾아낸 일자리는 시간당 임금이 고작 5∼6달러인 웨이트리스 자리였다. 에렌라이히가 들려주는 노동자들의 주거 상태는 끔찍하다.
“웨이트리스 마리안느는 애인과 함께 1인용 트레일러에서 주 1백70달러를 내고 산다.” “조앤은 밤에는 쇼핑 센터 뒤에 세워놓은 자동차에 살고 샤워는 티나의 모텔 방에서 한다.”1997년 전국노숙자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자 중 5분의 1이 종일 또는 시간제 일자리를 갖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평범한 노동자들 중 일부는 이동 주택(트레일러)조차 구하지 못해 자신의 자동차, 벤치, 공원에서 생활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업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어느날 저녁 린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 일이 그녀에게는 하루 6시간짜리 부업일 뿐이며, 시간당 9달러를 주는 공장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미국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제3세계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시간 노동으로 지친 웨이트리스에게 손님들은 “오십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전쟁터에 흩어져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가서 그들을 먹여라! 이런 일을 내일 또 해야 한다는 건 잊어 버려라!”대부분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만성 질병에 시달린다. “단 1초도 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다리가 쑤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면 통증이 널 이기게 될 테니까.”한국과 마찬가지로, 용역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착취를 당한다. 저자는 청소 용역 회사 ‘더 메이즈’에서 시간당 6.65달러를 받고 일한다. 에렌라이히는 회사가 고객에게서 청소부 1인당 1시간에 25달러를 받아 챙긴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분노한다.
반면, 부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백만 달러짜리 콘도 주인이 안방 욕실을 보여주면서 샤워 부스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걸 듣자니 내 자제심이 심하게 흔들린다. … 나는 그녀에게 피 흘리고 있는 것은 당신 욕실의 대리석이 아니라 세계 노동자 계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저자가 월마트에서 일하고 있을 때 주변 사업장에서 대규모 연대 파업이 일어난다. 1천4백50여 명의 호텔 노동자들이 9개 호텔에서 파업을 일으켰다. 팀스터 지역에 있는 펩시 콜라 병 공장에서 노조원들이 파업했다. 세인트 폴의 정육 공장 노동자들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다.
저자는 직원 휴게실에서 TV로 파업 소식을 본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가한 한 사람이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아들을 위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모두 아들을 위한 것입니다.’ … 그 순간 방에 있던 유일한 동료가 벌떡 일어나 씩 웃더니 허공에 대고 주먹을 흔든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 우리!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두 개의 집게손가락을 땅으로 향하는 제스처를 해보인다. … 갑자기 눈물이 난다.”미국 노동 계급은 부활하고 있다. 4월 20일 워싱턴에서는 10만여 명의 노동자·학생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를 외치며 반전 집회에 참가했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결책이다. 그들은 변혁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와 함께 싸울 수 있다.
김태훈
이 책은 1970년대 말부터 1989년 대통령 선거까지 브라질 노동자당(PT)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다룬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계급 투쟁, 당의 성장, 선거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다.
1964년 쿠데타로 집권한 브라질의 군사 정권은 국가 주도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74년까지 “브라질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은 극에 달했다. “1960년과 1976년 사이에 가장 부유한 5퍼센트의 소득은 전체의 27.7퍼센트에서 39퍼센트로 늘었다. 반면 가난한 50퍼센트의 소득은 전체의 17.7퍼센트에서 11.6퍼센트로 줄었다.”그러나 노동조합은 군사 독재 치하에서 수십년 동안 국가 노동성에 종속돼 강력한 통제를 받았다. 군부는 “이전의 모든 정당을 금지했고 단 두 개의 정당만을 설립할 수 있는 법을 선포했다.” 국가보안법으로 모든 민주 세력과 좌익을 체계적으로 탄압했다. 1970년대 후반 경기 침체와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노동 대중의 생활 수준이 날로 하락하자 노동자들은 거대한 저항에 나섰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주로 공업단지인 상 베르나르두와 상 파울루에서 네 차례나 대중 파업이 일어났다. 1979년 상 베르나르두 금속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은 거의 모든 지역과 산업으로 확산했다. 파업 참가자 수가 3백3십만 명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 고용 안정, 독립 노조 보장 등을 요구하며 거인처럼 우뚝 섰다.
PT는 1979∼1980년의 엄청난 산업 투쟁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PT를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 조직―광범하고 관대하고 수많은 정치적 조류를 포함한, 그래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가진―으로 봤다. PT의 전국 지도자로 등장한 룰라는 사회주의자였고 금속 노동자 파업의 지도자였다. 브라질은 포퓰리즘 전통이 강했다. 그래서 PT 등장 초기에 “많은 좌파와 야당인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은 PT가 야당을 분열시킨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강력한 노동자 투쟁을 기반으로 PT는 독립적으로 나아갔다. “PT의 형성 과정과 당내에서 CUT(중앙노동자연합:우리 나라의 민주노총 같은 조직―옮긴이)가 발휘하는 영향력을 볼 때, PT가 포퓰리즘과 민중전선의 썩어빠진 전통과의 결별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PT의 룰라는 거의 당선될 뻔했다. 그리고 PT는 몇몇 주요 도시의 시장, 주의회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배출했다. PT가 선거에서 거둔 성공은 더 확실한 사회 변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반영했다. 그것은 “브라질의 빈곤층 대다수가 더욱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계급 의식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PT는 “갈수록 선거 중심적이 되고 예전에 비해 선거에서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얻으려는 열의도 약한 데다가 사회민주주의 쪽으로 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89년 선거 이듬해에, 룰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투표를 통해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에서 1990년 사이에 주 선거와 연방 선거가 여섯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PT는 이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당은 선거 일정의 장단에 따라 활성화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했다. 즉 선거 일정이 그들의 추진력이 됐던 것이다.”이 책을 쓴 브라질 좌파 켄 실버스타인과 에미르 사데르는 PT를 이상적 모델로만 그렸다. 그래서 PT가 명확한 사상이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것이나 1989년 대통령 선거 때 룰라가 기업주들을 안심시키려 애쓴 것, 선거 승리를 위해 쁘띠 부르주아를 즐겁게 해 줘야 한다는 주장, 1994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패에 연루된 기업인들에게 기부금을 받은 것, 사유화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 등에 대한 비판은 부록에서나 볼 수 있다.
1989년 상 파울루 시장으로 당선된 PT의 에룬디나는 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한 파업에 반대한다. 시 예산이 너무 편중돼 쓰이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지방 자치 단체이긴 했지만 일단 권력을 잡게 되자, PT에 내재된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PT 내에는 온갖 혁명적 흐름도 있다. 그러나 PT는 여전히 그들이 몸담고 있는 체제인 세계 자본주의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조직이다.
얼마 전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포르투 알레그레의 시장은 PT 소속이다. 시의 예산 배치는 대중의 투표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런 개혁도 포르투 알레그레에 모인 사람들이 요구한 완전한 변화에는 미치지 못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참여 예산제’도 국제 금융 대리인들이 통제하는 경제 정책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이 책의 원제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1989년 대선 때 룰라의 구호였다. 책갈피 출판사는 원래 제목 대신 반자본주의 운동의 구호를 제목으로 바꿔 달았다. 그러나 PT가 과연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진정으로 “다른 세계”의 가능성은 세계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고통과 야만에 저항하기 위해 포르투 알레그레를 가득 메운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조승희
4월 27일 민주화 운동 보상 심의 위원회는 전교조 해직교사와 동의대 사건 관계자 들의 경력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보수 언론은 “학교에 남아있는 교사들은 반민주 세력이냐?”, “사람 불태워 죽여도 민주화 운동인가?” 하고 민주화 인정을 비난했다. 이들은 미국과 재벌이 후원한 베네수엘라 쿠데타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해 보도했다.
신문 시장의 70퍼센트 이상을 독점한 조·중·동은 지배자들의 기득권을 옹호한다.
이런 보수 언론의 치부를 들춰내고 싸우는 언론인이 있다. 〈한겨레〉 논설 위원 손석춘 씨다. 손 씨는 최근 《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를 펴냈다. 이 책은 풍부한 예를 들어 조·중·동의 추악한 역사를 폭로한다. 그 동안 보수 언론의 친일 역사는 보수 언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폭로돼 왔다. 1940년 1월 1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1면에 일장기와 천황 부부의 사진이 실렸던 것이나 일제의 침략만 미화하고 학생들에게 학도병 지원을 촉구한 사실은 더 이상 놀랄일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보수 언론들이 자신의 친일 행각을 숨기려고 민족지를 자처하는 현실이다. 지난 2월 28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 7백8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 이들이 보인 히스테릭한 반응이 대표적 예다. 이 명단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초대 회장 방응모와 김성수가 올랐다. 그러자 이 신문들은 윤경빈 광복회장과 한 인터뷰 내용까지 왜곡해가며 명단 발표를 폄하했다. 조·중·동 가운데 〈조선일보〉는 친일 역사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공격한 역사를 정당화한 것으로도 악명높다.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찬양했고 1980년 광주 항쟁을 이끈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로 묘사했다. 또 전두환 독재 정권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독재 정권에 항거한 시민·학생 들을 비난했다. 전두환이 추진했던 ‘평화의 댐’ 사업에는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이 부천경찰서 성 고문 사건이 터졌을 때는 ‘어떻게 다 큰 처녀가 자기가 당했다는 사실을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느냐’는 농담과 “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 보수 언론들의 과거는 과거사로 끝나지 않고 현재를 지배한다. 현재 이들 언론사의 행태가 한국 사회의 진보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부자 신문들은 대부분 부자 독자의 이익을 대변한다. 교육 평준화 논란이 있을 때 이들은 평준화를 해제하고 부자들만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립형 사립 학교를 늘려야 한다고 선동했다. 작년 민주노총 연대 파업 당시 ‘가뭄에 왠 파업’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온갖 색깔론으로 좌파에 대한 마녀사냥을 벌이는 것도 이들이다. 작년 방북 대표단과 강정구 교수에 대한 공격이 대표적 사례다. 또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반미 여론이 고조되자 ‘대책없는 반미는 안된다.’고 ‘혈맹’인 미국을 두둔했다. 이것이 바로 언론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다. 이 책에서 손석춘 씨는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언론 개혁의 당위성을 말한다. 손 씨는 김대중 정권에 의존한 언론 개혁을 거부한다. 또 김대중 정권을 노동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자민련을 위해 의원 꿔주기를 감행하는 배신자 정권으로 규정한다. 언론사주들은 구속하자마자 바로 사면하면서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감옥에 가두는 것은 언론 개혁의 취지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벌어진 부패에 대한 분석은 남다르다. 손 씨는 김대중 주위의 부패한 가신들, 이를테면 박지원·권노갑 같은 자들 때문에 김대중의 투명성이 빛을 잃는다는 분석을 거부한다. 김대중 자신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손석춘 씨는 언론 개혁의 주체를 언론 노동자들로 규정한다. 언론사 내부의 권위적 체계가 진보적 논조를 차단하기 때문에 편집권 자율성 보장과 같은 정간법 개정은 “피라미드 구조 속에 억압되어 있는 언론 노동자들에게는 해방의 과정이기도 하다.” 손 씨는 이를 위해 언론 노조가 강력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파업을 포함해서 말이다. 손 씨는 이것이 민주노총의 경영 참가 운동과 성격이 같다고 보고 지지한다. 손석춘 씨는 언론을 자본가 계급의 지배 도구라고만 규정하고 언론 개혁을 회피하는 이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노동자들과 진보 정당에게 언론 개혁에 참가할 것을 호소한다. 손 씨의 지적은 타당하다. 언론은 지배 계급이 독점했지만 독자는 대부분 노동자들이다. 이 때문에 변혁적 좌파들도 언론 개혁 운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손석춘 씨의 표현대로 우리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쟁취해낼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최대로 얻어내면서 변혁을 준비”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한상원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F-15 전투기 강매 같은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미국에 분노했다. 이제 미국을 우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강에 독극물을 배출하고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미국은 ‘오만함’ 그 자체다.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은 그야말로 ‘악의 축’이었다. 해방 뒤 미국은 남한을 완전히 자신의 우산 아래 두었다. 전시 작전권을 빼앗아 갔으며 항상 독재 정권을 후원했다.
냉전이라는 국제 정세에서 반공주의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미국은 박정희 유신 체제를 지원했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계획할 때도 미국은 이를 눈감아 주었다. 당시 쿠데타 조정 명수 위컴을 주한 미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노태우가 휘하 9사단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오는 것을 묵인했다.
1980년 광주 학살 또한 미국이 눈감아 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은 광주 민중들을 학살한 20사단 출동을 묵인했다. 20사단은 한미연합 사령부 직속 부대다. 광주 학살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은 1985년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20사단 이동을 승인했다고 시인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진짜 모습이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는 전 세계를 누비면서 무기를 팔아먹고 전쟁을 일으킬 자유다.
미국은 남한에 10년 동안 89억 달러치의 무기를 팔았다. 보잉 사는 매년 1조 원의 돈을 남한 정부에서 챙겨갔다. 지금은 고물 전투기 F-15를 사라고 강요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 미사일 방어(MD)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3세대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과 이지스함을 사라고 요구한다. 평화와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할 돈이 계속 전쟁을 위해 쓰인다.
부시는 작년 12월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는 부시는 전쟁 몰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반도 또한 부시의 사정 거리 안에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통해 계속 북한을 압박한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판매하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사람들은 에어쇼를 보고 즐거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화려함 이면에는 끔찍한 전쟁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다. 《오만한 나라 미국》은 미국의 오만한 정책을 여러 사례를 들어 알려 준다. 저자의 여러 가지 관점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송유관을 두고 일어난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9·11 테러는 미국의 오만한 대외 정책이 초래한 쓰디쓴 열매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테러도 나쁘고 전쟁도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을 비판하는 부분은 반전 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 책에는 몇 가지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미국의 군비 지출이 군수 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아쉽다. 저자는 위계적인 제국주의 질서에서 미 제국주의를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의 햇볕 정책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저자는 부시의 대북 정책이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을 무시할 수 없는 햇볕 정책의 모순은 지적하지 않고 있다. 미국 군수 산업의 이익이 미국 내 복지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또한 부적절하다. 미국은 오히려 전쟁을 하면서 복지비를 축소하고 있다. 이 책은 시민과 함께 하는 평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등 실천적인 과제도 함께 제시한다. 이 책은 마치 신문이나 팸플릿 같다. 두께는 얇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중동 전쟁, 엔론 게이트, 한반도 문제 등 미국에 관한 중요한 쟁점을 다루고 있다. 승영
세계 경제는 1920년대를 천천히 돌리는 듯하다. 미국 ‘신경제’가 끝났다. 닷컴 기업의 부도가 줄을 잇고, 엔론은 파산했으며, 연방은행의 이자율은 더 이상 낮출 수 없을 만큼 낮다. 이제 추락만을 바라보는 주식 시장과 거품이 걷히면서 폭락할 부동산 시장이 남아 있다. 일본의 부실 채권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 은행의 도산도 소설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충격의 출발이 미국이 될지, 일본이 될지, 러시아가 될지, 동남아가 될지, 유럽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 시기도 언제일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위기는 계속 심화하고 있으며, 일부 경제학자들의 낙관론도 장기적인 비관론을 앞지르지 못한다. 과연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 220호의 전체 지면을 채웠던 이 책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산업국가인 미국, 독일, 일본 세 나라의 관계 변화를 주되게 연구하면서, 전후 자본주의 경제 동학을 분석한다. 전후 장기 호황이 1960년대 말에 불황으로 넘어간 과정을 분석하고, 이 불황이 지속되는 이유를 밝히려고 했다.
브레너는 《혼돈의 기원》에서 지난 28년 간 세계 자본주의를 괴롭힌 위기의 본질은 이윤율의 저하, 무엇보다 제조업 이윤율의 저하였다고 주장한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생산성과 생산 능력 모든 면에서 다른 선진 공업국보다 유리했다. 서독과 일본은 높은 수준의 자본 축적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산성과 생산능력이 훨씬 떨어졌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자본 축적 덕분에 1960년대에 이르러 세계 시장에서 미국 자본의 지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서독과 일본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된 물건이 더 높은 비용으로 생산되는 미국의 생산품을 압박했고 결과적으로 이윤율이 떨어졌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미국은 재정 적자를 더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경상수지 적자가 만성적인 재정 적자, 낮은 이자율과 만나면서 1971년 미국 달러화 가치가 폭락했다.(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 달러화 가치 하락은 일본과 독일의 생산 비용을 상대적으로 상승시켰다. 일본과 독일의 사장들은 이러한 압력에 맞서 가격을 올렸고 결국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1974년 오일 쇼크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1970년대 후반 독일과 일본 정부는 잠시 동안 이자율을 높이고 재정 지출을 줄여 인플레이션과 불황을 막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79년 더 깊은 불황이 시작되고, 미국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된다. 1985년 미국과 일본은 달러화의 가치 하락과 엔화의 가치 상승에 합의한다. 일본은 1980년대 말까지 인플레이션과 주가 급등을 경험하지만, 제조업 이윤율 하락 때문에 1990년대에는 더 깊은 불황으로 떨어진다. 반면 미국은 가치 절하된 달러와 구조조정으로 제조업과 비제조업 모두 이윤율을 일부 회복해서 ‘신경제’를 맞게 됐다.
브레너는 미국의 일시적 이윤율 상승 역시 세계적 경쟁을 심화시키고 과잉 생산을 초래해, 결국 이윤율을 계속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브레너는 이 책을 1998년에 썼다.)브레너는 수많은 통계, 그래프,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역사적 과정을 분석하면서, 단지 사변이나 추상 수준이 아닌 실증과 검증이 가능한 주장을 펴고 있다. 따라서 브레너의 역사적 설명에 특별히 동의하지 못할 것은 없다. 무엇보다 브레너의 분석과 설명은 매우 탁월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하는 방법은 배워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임금 인상과 노동자 투쟁을 불황의 원인으로 보는 우파와 좌파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신경제 호황’도 노동계급의 실질 임금 삭감과 노동 시간 증가의 대가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브레너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위기로 전락하게 되는 출발점은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 ― 1965년 무렵부터 시작된 국제 경쟁의 격화에서 비롯하는 ― 에 의해 촉발된 수익성 하락에 대한 정상적인 조정 과정의 실패 … 퇴출에 비해 너무 많은 진입자를 만들어 냈고 …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이라는 문제를 더욱더 악화시켰다는 것”(275페이지)이라고 설명한다.
브레너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한 물건이 경쟁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서 이윤율 하락을 논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 자체가 자본주의다. 문제는 낮은 비용으로 생산된 물건과 과잉 생산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자꾸 축적돼 거대해진 생산 수단과 경쟁 격화를 낳는 자본주의의 동학이다. 죽은 노동이 산 노동에 비해 점점 더 늘어가는 사태다. 이를 마르크스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고 불렀고, 그 결과가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 경향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아쉽게도 브레너는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 경향을 맬서스주의로 보고 마르크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노동 가치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윤율 저하의 경향은 맬서스의 인구론처럼 인류 역사 전체의 결정론적 법칙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진 독특한 동학의 결과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고,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맬서스의 숙명적 비관론과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과는 관련이 없다.
브레너 자신의 논리가 마르크스의 사촌뻘 되는 주장임에도 이 책은 자본주의를 직접 공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외에도 독일과 일본이 전후 20년 동안 미국보다 높은 자본 축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고, 미국·일본·독일의 관계만을 중심으로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설명한 점, 1980년 이후 국제 금융 자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 등이 이 책의 허점이다. 이 모든 것은 지난 4년 동안 좌파 사이에서 논쟁돼 왔다.
결국 탁월한 역사적 설명과 자료이긴 하나 논리의 한계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많은 자료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
정형준
이회창은 한때 ‘대쪽‘, ‘소신’, ‘개혁’ 이미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주당을 ‘급진 좌파’로 몰아세우며 전혀 급진적이지도 않은 개혁들을 공격한다. 이 때문에 이회창은 ‘보수·우익’의 대명사로 불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정치권에 들어와서 ‘변절’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회창의 퇴행을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이회창은 1997년 선거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다. “지역 감정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정치인은 이 나라를 맡을 자격이 없다.”(〈동아일보〉, 1997년 7월 13일치) 하지만 자신이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장본인이다. 여당과 마찰이 있을 때마다 부산과 대구에서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밖에도 이회창은 여러 지역에서 자신의 연고를 주장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다음 선거에서는 “황해도 서흥은 태어난 고향, 충남 예산은 선조 대대로의 고향, 전남 담양은 어머니 고향, 경남 산청은 아내의 고향, 대구는 정치적 고향, 부산은 마음의 고향, 서울은 한때의 고향, 전주는 나의 본관이 서려있는 고향, 고로 ‘KBS 6시 내고향’에 등장하는 고향은 다 내 고향”이라는 프로필을 쓰라고 비꼰다.
이회창은 1960년에 판사가 됐다. 그 후 군사 독재 아래서 승승장구해 전두환 군사 정부 초기인 1981년 4월에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는 지방 법원 판사로 있을 때 5·16 군사 쿠데타 지지 성명에 서명했다. 이회창은 25세의 나이로 박정희의 “혁명 재판부” 심판관으로서 군사 재판에 적극 협조했다. 혁명 재판부의 일원으로서 이회창은 4·19 혁명 직후 창간된 진보적 일간지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사형을 내렸다. 또,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한 문부식, 김현장 씨에게도 사형을 선고했다.
많은 법관들과 변호사들이 군사 정권의 폭압에 반대해 항의할 때 ‘대쪽‘ 이회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가로 전두환 시절 최연소(46세) 대법관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조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대통령(박정희), 헌정 사상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한 대통령(전두환), 민주화의 토대를 닦은 대통령(노태우)”이라는 말로 노동자의 피로 물든 군사 정권들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했던 것은 이회창의 이러한 보수적 본질 때문이다.
이회창은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동의하는 국가보안법 개정도 반대한다. “공기가 희박해지기까지는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것처럼 전쟁이 나기 전에는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국가 안보’ 논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안보’를 생명으로 여기는 이회창의 두 아들은 모두 병역 면제다.
보수계의 보스인 만큼 북한을 적대시한다. 대북 지원 사업에 대해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북한”에 “퍼주기” 한다고 격분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 북한에 지원한 돈은 1억 1천9백25만 달러로 김영삼 정부의 2억 6천1백72만 달러보다 훨씬 적다.
2001년 3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상호주의”를 이야기해 그나마 찾아온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회창은 “부시 대북한 인식 우리 당과 똑같아”(〈한겨레〉, 2001년 3월 13일치)하고 맞장구쳤다. 도대체 이회창은 어느 나라 정치인일까?“법치주의”, “민주주의”를 핏대세워 주장하지만 이회창은 ‘민주주의 알레르기’가 있는 인물이다. 뇌물을 받은 김인규 마산 시장을 비호하고 선거법을 위반한 최돈웅을 2001년 10월 강릉 보궐 선거에 공천했다.
이회창은 언론사 세무 조사가 한창일 때 “〈조선일보〉와 같은 ‘비판’언론은 필요하다”고 탈세·비리 언론을 두둔했다. 이회창은 또 반노동자적이다. 1996년 전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노동법 날치기를 두고 “적법성은 갖추었다고 본다” 하고 노동법 개악을 방어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회창은 ‘3김’을 누르고 ‘대학생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 1위에 올랐다.(〈한국대학신문〉, 2001년 10월 15일치)차승일
사유화 반대 투쟁은 전 세계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운동의 핵심 축 중 하나다. 이 책은 사유화 반대 운동을 둘러싼 논쟁들과 한국과 외국의 사유화 사례를 다루고 있다. 김성구 씨는 사유화의 이론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시장 경쟁이 자원의 최적 분배와 사회 구성원의 최적 후생을 가져다준다는 신자유주의 교리는 한 번도 현실에서 올바름을 실증한 적 없다”고 말한다. “시장 경쟁과 이윤의 원리는 … 전체 사회에게는 무정부적 생산과 불비례, 주기적 공황과 구조 불황 그리고 금융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점이 “시장 경제 최적화 명제를 반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강력한 주체가 국가”라는 점도 국가 개입을 만병의 근원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의 역설이다. 남한 노동 운동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벌인 신자유주의와 사유화 반대 투쟁을 ‘파업 지상주의’, ‘모험주의’로 몰아 비난한다. 그리고 이것의 뿌리는 남한 노동 운동의 ‘전투적 경제주의’로 본다.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노동 정치와 노사 관계 전략을 특징으로 하는’ 노사정위원회를 해체하라는 주장을 개탄한다. 싸울 때는 싸워야 하지만, 편협하게 파업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박태주, ‘공공부문 노동조합 발전을 위한 토론회’(2001. 8) 자료집, 43쪽)이에 대해 김성구 씨는 오히려 김대중 정권이 협상과 타협의 길을 막아 나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지금 문제는 ‘파업 지상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좌·우 구분할 것 없이 노조 지도자들이 ‘비전투적’이다 못해 소심증에 걸려 ‘말로만 파업을 남발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또 정부와 협력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보다 정부와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다. 또 하나의 논점은 생존권 문제와 사회 개혁 투쟁(사회화) 문제다. 필자들은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을 강조하는 편향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사유화 반대 투쟁)은 “남한 노동 운동의 전투성을 계승하면서 사회화와 이행을 위한 정치적 투쟁과 결합할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유화는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국가가 수행해야 할 기본적 서비스(사회적 간접 임금) 모두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모두 노동 계급의 삶의 질과 연결돼 있다. 동시에 이들은 국가가 독점 자본의 이해만을 위해 움직이지 못하도록 국가를 중요한 투쟁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독점 자본의 국가를(개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쇄하는 과제”로 나아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필자들은 노동 운동 내 오른쪽에서 제기하는 비난에 대해 대체로 건강한 반박을 제공한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김성구 씨는 지금의 정세를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의 거침없는 공세와 대안 부재라는 명백한 퇴조기”로 규정한다. 송유나 씨도 “경제 위기는 노동자·민중의 투쟁력과 지도력이 상승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운동의 위기로 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너무 과장돼 있고 일면적이다. 지금 세계는 심화하는 위기 때문에 좌우 분열 과정이 진행되고 있고,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이 운동 속에서 대안을 건설하는 것은 좌파의 몫이다. 또 한 가지는 시민 운동에 대한 태도다. 김성구 씨는 “한국의 시민 운동은 이미 독점자본주의 질서에 포섭돼 공공연한 신자유주의 대변자로 전락했”기 때문에 노동 운동과 대립한다고 주장한다. 시민 단체들이 사유화를 지지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시민 단체들의 태도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은 발전 파업 때 발전소 매각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시민 단체들은 내부 스펙트럼이 다양할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특정 문제들에 대한 좌파들과 공동 행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반전 운동이다. 시민 단체들에 대한 종파적 태도보다는 공동 행동을 건설하려는 태도가 훨씬 바람직하다. 전문적인 용어들 때문에 다소 어렵긴 하지만 사유화의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신자유주의를 공부하고 폭로하는 데 유용하다. 이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