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선 결과 - 죽은 당수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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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총선 결과 - 죽은 당수가 부활했다?
디아나 위텐도르프/장광열(네덜란드 교민·민주노동당원)
지난 5월 15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네덜란드인들은 현 집권 연정을 심판했다. 노동당, 자유당, 민주주의66의 좌우 연정은 97석에서 54석으로 의석을 절반 가까이 잃었다. 새 정치를 부르짖다 비명횡사한 핌 포르타운의 당은 26석을 얻으며 단숨에 제2당이 됨으로써 네덜란드 정치사를 새로 썼다. 이로써 핌 포르타운 돌풍을 타고 우파인 기독민주당과 핌 포르타운당이 집권 연정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져 유럽의 우파 돌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네덜란드 총선이 막판으로 치닫던 지난 5월 6일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던 우파 신당 ‘핌 포르타운 당’의 당수 핌 포르타운(54세)이 한 동물애호 환경 운동가에게 총격을 당해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화와 타협의 지루한 네덜란드 정치판에 갈등과 대결 정치의 막을 열며 돌풍을 몰고 온 그의 죽음은 강력 범죄의 안전 지대에서 살아온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사회학 교수이자 칼럼니스트였던 핌 포르타운은 젊은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 후 사회 민주주의자가 되었다가 점점 우경화해, 90년대에는 “네덜란드는 꽉 찼다. 더 이상 외국인을 받지 말자”는 주장을 하면서 우파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되었다. 네덜란드는 좌우 정당이 함께 연정을 이끌며, 노사 협력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 같이 살자는 합의 정치가 계속돼 왔는데, 최근 들어 대중은 그런 합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총선 당시부터 네덜란드 중부 대도시 유트레흐트에서 “살기 좋은 유트레흐트당”이라는 지역 정당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후 ‘살기 좋은’이란 이름을 붙인 정당들이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살기 좋은 네덜란드당’이라는 전국 정당으로 성장했다. 당시만 해도 그 당은 기존 정당이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자치 운동의 성격을 띤 신선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논란 많던 핌 포르타운을 당 대표로 영입함으로써, 네덜란드 정계에 태풍의 핵으로 등장했다. 당시 핌 포르타운은 당의 선거 정책으로 매년 외국인 난민을 1만 명 이상 받지 말자고 주장했으나, 당의 다수는 인종주의로 몰릴까 봐 이를 부결시키기도 했다. 그 때부터 핌 포르타운은 방송에 가장 많이 나오는 정치인이 됐다.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종교·성별 등에 관계 없이 모든 시민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제1조를 개정하자는 폭탄 발언을 해서 네덜란드 정계를 발칵 뒤집었다. 그는 외국인들 때문에 네덜란드가 점점 살기 안 좋은 곳이 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이슬람 문화는 남녀 차별이 심하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후진 문화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존 정당들은 그를 극단적인 우익이라고 몰아붙였고, 살기 좋은 네덜란드당은 그를 당대표에서 사퇴시켜 사실상 당에서 축출했다. 핌 포르타운은 당 대표에서 순순히 물러나 자기 지역인 로테르담 대표로 지방자치 선거에 나가고 총선에는 자기 주도로 신당을 창당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3월 지방 선거 개표함을 열었을 때, 네덜란드인은 모두 놀랐다. 노동당의 아성이었던 로테르담 시의회 선거에서 그의 당은 36퍼센트를 얻어 노동당을 꺾고 단숨에 시 정부의 집권당이 되었으며, 여론조사에서도 총선에서 15퍼센트 이상의 의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당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성공 배경에 대해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점점 커가고, 강력 범죄의 증가에 정당들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그가 외국인들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시원스럽게 기존 정치인들을 비난하자 대중은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정부 예산 삭감 때문에 위기에 빠진 사회보장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그 분야에 예산은 더 배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연금생활 대상자를 축소하고, 외국인 난민을 받지 않기 위해 국경을 빈틈 없이 막겠다고 주장하고, 에너지 산업을 사유화하고 가동 중단중인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겠다는 정책들을 제시해, 사실은 현 정부보다 더 사회보장 제도를 후퇴시키고 시장 경제를 강화할 것임을 내비쳤다. 유럽에 극우파 바람이 불면서 그도 인종주의자냐 아니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실 그를 다른 인종주의자들과 똑같이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는 완전 정당명부제로 치르는 총선에 당 후보 2위로 흑인을 올리고, 자신이 오스트리아의 하이더나 프랑스의 르펜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그를 극우파로 보았지만, 네덜란드 언론은 그를 정상적인 정치인으로 보았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능수 능란한 말솜씨로 기존 정당에 혐오감을 느끼는 중년, 노년층과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보장 제도를 축소하고 좌파 정당들을 경멸하며, 노동조합에게 적대적이며, 과거 극우 정당에 소속된 전력이 있는 자들을 당에 꽤 많이 끌어들인 점을 들어,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를 가면을 쓴 인종주의자로 규정했다. 실제로 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다른 정당들도 외국인에 대한 공격에 나서고 있으며 난민 규제가 선거의 주된 이슈가 되었다는 점은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핌 포르타운 효과가 외국인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직전인 5월 11일에 좌파 단체들 주도로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대중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그 단체 중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유일하게 핌 포르타운을 가장 위험한 인종주의자로 규정하고 그를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었다. 핌 포르타운이 죽자 그의 당은 좌파 정당들이 그를 증오해서 죽게 했다며 비난했다. 우파들의 기세에 좌파들은 눈치를 보며 핌 포르타운 당에 대한 비판도 못하고 있었고,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모든 당들은 공개적인 선거 운동을 중단했다. 핌 포르타운이 죽은 날 그의 지지자들은 ‘하마스[이슬람주의 단체]와 모든 검둥이들을 독가스실로 보내자’는 증오의 구호를 외치며, 국회의사당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불태우며 노동당을 살인의 책임자라고 욕했다. 결과적으로 핌 포르타운의 죽음은 현 집권당에 대한 염증에 불을 지폈고, 포르타운은 당의 후보 1위에 남아 우파 신당의 시대를 연 순교자가 되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노동당의 우경화를 비판하며 점점 후퇴하는 복지 제도의 회복을 주장해온 사회주의당이 5석에서 9석으로 성장해 우파의 공격에 맞대응할 선수로 등장한 것이다. 조용했던 네덜란드 정치판에 요란한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