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문제 2) 진보 선거연합이 계급연합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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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가 자본가적 정치 기반을 유지하거나 통합번영미래구상이 그런 기반을 새로 확보해 놓고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에 동참할 경우 변혁적 반자본주의자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
이 경우, 자본가 정당과도 제휴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계급연합인 ‘인민[민중] 전선’ 아니냐는 옳은 지적이 있을 것이다.
변혁적 반자본주의자는 민주노동당이 자본가 정당과 선거연합을 결성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변혁적 반자본주의자의 원칙적 반대를 거슬러 자본가 정당과의 선거연합이 결성됐을 때, 우리가 그 민중전선의 바깥에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활동할 것인가 하는 전술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민중전선을 가장 예리하게 비판한 트로츠키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궁극으로 상충하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때때로 노동계급 정당이 단기적 이득을 취하려고 자본가 세력과 “엄격히 실용적인 목적에 바탕을 둔 합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했다(《레닌 사후 제3인터내셔널》 영어판, 168, 175∼176쪽). 정치적 독립성을 반드시 유지하면서 “부르주아지와 어떤 합의를 하려 할 때는 각 합의마다 별도로 그때그때 실용성과 편의상의 고려에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
트로츠키는 1920년대 중엽 중국 공산당의 국민당 입당도 일종의 민중전선임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이 초기엔 그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했다고 옹호한다. “그저 미래의 독자적 정치 활동을 준비하면서도 전진하는 민족 해방 투쟁에 참가하고자 한 선전 단체였던 시기에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에 참가한 것은 완전히 옳았다.”(〈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1936년 영국 공산당, 노동당, 성직자들은 물론 부르주아 정치인들도 포함하는 평화협의회에 참가해야 하느냐고 자신의 지지자들이 질문하자 트로츠키는 그저 바깥에서 매도나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그 안에 들어가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영향력과 싸워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트로츠키는 1917년 러시아 혁명기의 임시정부가 노동계급 정당인 멘셰비키당, 농민과 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인 사회혁명당, 자본가 계급의 정당인 입헌민주당 등이 결성한 원조 민중전선임을 지적했다. 당시에 정부에 들어가지 않기로 한 볼셰비키당은 정부로부터 좌파 정당들이 나오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열 명의 자본주의 장관들이 퇴임하라고 요구했다. 그와 동시에, 그 온건 좌파 정당들이 지도부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사병 대표들의 소비에트(평의회)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자고 요구했다.
14년 뒤에 트로츠키는 술회한다. “대중은 여전히 사회주의 화해론자들을 신뢰하고 있었으나 이들에게 가장 큰 신뢰를 갖고 있는 대중조차 본능적으로 부르주아지와 착취자, 자본가는 불신한다. 바로 이 시기 볼셰비키의 전술은 이 사실에 바탕을 뒀다. 우리는 ‘사회주의자 장관은 퇴임하라’고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임시정부 타도’를 당면 투쟁 구호로 내놓지도 않았다. 오히려 ‘열 명의 자본주의 장관 퇴임하라’는 한 가지 점을 강력히 되풀이했다. 이 구호는 크나큰 구실을 했다. 그 구호를 통해 대중은 화해론자들에게는 노동 대중보다 자본주의 장관들이 더 가깝고 더 소중하다는 점을 스스로 경험하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스페인 혁명의 문제들〉, 193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