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와 21세기 사회주의 4:
‘민중권력’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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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이 가장 앞서 나아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중권력’이라는 아주 오래된 구호가 요즘 부활하고 있는 것은 시사적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의회 제도보다는 민중권력이 진정한 사회 변혁에 더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권력은 지난해 멕시코의 오아하카 투쟁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교사 파업에서 시작한 투쟁이 격화해, 인구 3백50만 명의 주(州)에서 4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민중운동이 오아하카 시를 통제했고, 85개 단체의 대표들이 모여 오아하카민중의회(APPO)를 결성했다. 교사, 노동조합원, 사회·정치 단체, NGO, 생활협동조합, 인권단체, 학부모, 소작농, 지방자치체 등 오아하카 주민 거의 전체가 다 모인 셈이었다.
APPO는 스스로 오아하카의 최고 권위를 가진 기구로 선포하고 기존의 정치 구조는 모두 정당성을 잃었다고 천명하며 정말로 혁명적인 강령을 채택했다. 11월 말 군대와 경찰에 무력 진압당하기 전까지 5개월 동안 APPO는 오아하카 시를 통제했다.
민중권력은 또 지난 3년 반 동안 볼리비아 대중운동의 특징이기도 했다. 예컨대 2005년 6월 민중항쟁 당시 라파스의 위성 도시인 엘알토에서 혁명적 민중의회를 건설해 도시를 통제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지역사회
베네수엘라에서는 대통령인 차베스 자신이 빈곤을 끝장내는 방법은 권력을 빈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민중권력의 분출”을 호소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변화는 차베스의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이 차베스는 좋지만 차베스 정부는 싫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일부 극빈층은 사회 개혁의 혜택, 특히 보건의료와 교육 분야의 혜택을 입는다. 그러나 이런 개혁들도 대중의 빈곤과 불안정을 대폭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수도인 카라카스 인구의 절반이 여전히 노점상이나 보잘것없는 임시직 등 비공식 부문에서 힘겹게 생계를 꾸리고 있다.
반면에 부유층과 상층 중간계급은 고유가로 인한 경제 호황 덕분에 흥청망청 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베네수엘라의 주가가 치솟고 카라카스에서 값비싼 자동차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좌파 활동가 롤란드 데니스는 이런 상황을 일컬어 “혼란”이라고 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많은 활동가들은 이런 문제의 원인을 국가 기구와 지방 정부의 ‘관료주의’와 ‘부패’ 탓으로 돌린다. 차베스는 자신이 여전히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에서 개혁에 적대적인 관료들이 지배하는 국가를 이용해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을 적어도 반쯤은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포고령 입법권, 통신회사·전력회사 국유화, 통합 사회주의 정당 건설, 지역 ‘자치평의회’를 바탕으로 한 민중권력 건설 등 여러 조처들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로는 지금의 혼란을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포고령으로 통치한다는 것은 명령이나 지시를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명령과 지시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메커니즘 ― 기존 국가 기구와 다른 ― 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통합 사회주의 정당 건설 호소는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 주요 정당의 출세주의, 기회주의, 권력 암투에 신물이 난 많은 활동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통합 정당도 현재 차베스 진영 내부의 모순된 태도들을 반영할 것이다.
지금 차베스 진영에는 세 정치 경향이 있다. 첫째, 자본과 상층 계급들의 특권을 더 위협하지 말고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쿠바 식 권위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쿠바 정권의 실세들은 중국을 본떠 권위주의 체제와 시장을 결합시키려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셋째, 철저한 사회 변혁, 자본주의 파괴, 대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혁명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사뭇 다른 세 경향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한다고 해서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는 없다.
민중권력은 진정한 혁명이 아래로부터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지지할 만하지만, 그 한계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민중권력은 주로 주민자치평의회를 강조하지만, 주민자치평의회가 아래로부터 통제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생산 현장
‘지역사회’ 자체는 하나의 사회 세력이 아니다.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모두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처럼 때때로 지역사회가 특정 계급의 지역적 분포를 나타낼 때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지역사회 주민들은 생계를 꾸리는 방식이 서로 다르거나 심지어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 점은 빈민가도 마찬가지다. 빈민가에는 집단적 습성이 몸에 밴 노동자들도 있지만, 개인주의로 끌리기 쉬운 일종의 자영업자 노점상들도 있다. 실업자들도 있는 반면, 비교적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국가 공무원이나 빈민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수 자본가들도 있다. 더욱이, 빈민가 안팎에는 흔히 긴장이 존재한다. 상하수도 문제를 둘러싸고, 또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공터에 집을 지으려는 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잘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 운동은 지역 주민 전체와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지역사회 운동은 때때로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대체로 소수의 운동으로 그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과정이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지역사회 안에서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강조점은 다른 곳, 즉 계급 운동에 둬야 한다. 생산 현장의 계급 운동은 대다수 사람들을 진정한 행동으로 이끄는 능력이 대체로 지역사회 운동보다 훨씬 더 크다.
계급 운동은 또, 단지 항의뿐 아니라 사태를 통제할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민중권력이 진정한 대항 권력으로 변모하려면 계급 조직이라는 핵심 지렛대가 있어야 한다.
거리 노점상이나 자영업자, 빈민가의 조직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조직들은 집중점이 필요하다. 그런 집중점은 생산수단과 연결되고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장악하고 변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정규직 고용 노동자들은 인구의 소수일지라도 어느 사회 집단보다 큰 규모의 사회 집단이다. 또, 스스로 조직하고 다른 피억압 부문들도 지도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집단이다.
더욱이, 민중권력이 국가의 핵심부인 “무장한 자들의 기구”(군대를 가리켜 엥겔스가 한 말)에 침투하지 못하면, 즉 작업장이나 지역사회의 기층 대중과 연결된 병사들의 민주적 조직이 존재하지 않으면 민중권력은 결정적 효과가 없다. 병사들의 민주적 조직이 포함된 혁명적 민중권력은 대통령의 포고령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대통령 포고령이 혁명적 민중권력을 선동할 수 있는 계기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회 기층민들이 상층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혁명은 위로부터의 포고령으로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2002~2003년과 2004년의 대중 동원 같은 아래로부터 투쟁이 분출할 때 가능하다. 그 때는 노동자 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민중권력에 대한 혁명적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