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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원리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가 비극의 근원이다

노무현 정부는 납치 사건의 책임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지원하는 한국군 파병 정책이 아니라 피랍자들 자신에게로 돌리는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물론 점령국(한국 군대는 미군과 공동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이자 교전 상대국의 민간인이 피점령국이자 교전 상대국에 가서 모종의 활동을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이들을 포함해 비슷한 처지의 기독교 선교사들 무려 2백여 명에게 아프가니스탄행 여권을 내준 정부가 이들의 무모한 선교 열정을 탓하며 책임을 모면해 보려는 작태는 실로 혐오스럽고 메스껍다.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 언론도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파병 책임을 회피하려 애쓰고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강조하는 종교 다원주의의 관점이 분명하긴 하지만 자유주의적 신문들의 기사와 논설도 기독교 선교사들의 좀더 분별 있는 선교 열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아프가니스탄 주재 한국인 23명의 피랍을 기독교 대 이슬람으로 설명하는 것은 겉보기와 달리 전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미국의 자유주의적 교단들의 연합체인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는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수 교단들의 연합체인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는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놓고 찬반이 엇갈려 있다. 교단 수준이 아니라 평신도 수준에서 보면 이제는 전쟁 반대론이 다수파이다.

이슬람 쪽도 결코 단일체가 아니다. 다른 여느 주요 종교처럼 이슬람도 보수, 자유, 급진으로 나뉘어 있고, 급진파라 해서 다 테러라는 수단을 채택하지는 않는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테러리스트는 급진파 중 극소수일 뿐이다.

탈레반이 원래 반(反)기독교였던 것도 아니다. 냉전기인 1980년대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탈레반을 훈련시키고, 탈레반에 무기와 자금을 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기관과 협력해 거의 10만 명에 이르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을 모집해 옛 소련 점령군과 싸우도록 훈련시켰다.

미국이 이슬람 원리주의(이하 이슬람주의)에 적대적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이슬람주의에는 상이하고 다양한 변형들이 있으므로 그것들을 다 뭉뚱그리는 것은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는다.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엄격한 적용에 따라 외출 여성이 온 몸을 가리는 장옷을 착용하게 하고, 종교 음악 외의 음악을 금지하고, 종교 경찰이 예배 불참자를 구타하는 등 혹독하게 억압적인 탈레반식 이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운동에서 비롯한 것인데, 두루 알다시피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은 미국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다.

유물론적 분석

종교의 교리보다 종교의 사회적 기반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 다른 여느 심오한 종교적 감정과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사회의 천대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공명을 얻었다. 이슬람이 천대받아 온 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해 주고 답변을 제공해 주는 듯하자 이슬람에 바탕을 둔 운동이 성장했다.

세속적인 좌파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운동은 불신을 받은 터였다. 중동 전역에서 세속 좌파 민족주의 운동은 제국주의와 결국 타협했고, 그래서 서민 대중의 불만을 샀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이집트의 경우인데, 1950년대에 세속적 대통령 나세르는 영미 제국주의와 그 감시견 이스라엘의 중동 지배에 맞선 운동의 상징이었다.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 때 중동인들에게 나세르는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지난해 레바논인들이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행진했듯이 그때 중동인들은 나세르의 사진을 들고 행진했다.

그러나 나세르의 후계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제국주의와 타협했다.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타협했고, 무바라크는 걸프전을 지지했다. 또, 그와 그 측근들의 부패와 호사는 이집트 민중의 가난과 너무도 극명히 대조된다. 민중이 배신감을 느끼자 이슬람주의가 그 동안 애타게 찾던 대안처럼 비쳐지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반미 언사,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대한 언급,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에 대한 규탄, 친미적 중동 정부들에 대한 규탄, 미국 등 서구의 중동 석유 수탈 규탄 등이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먹혀드는 것은 이런 맥락이 있어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탈레반이 내놓는 해결책은 ‘순수한’ 이슬람 국가 수립이다. 그러나 중동의 갈등은 종교 때문이 아니므로 종교로 해결될 수도 없다. 그리고 ‘순수한’ 이슬람 국가라는 것도 실인즉 토착 지배자들이 대중을 착취하는 국가일 뿐이다. 이란의 경우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이란은 이슬람주의 정권도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타협함을 입증하는 사례다. 이란은 전에 자신이 ‘대악마’라고 불렀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을 때 첩보 자료를 제공했다!

이슬람주의가 사회의 여러 계급들한테서 지지를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 기반(자금과 헌금을 주로 제공하고 조직 실무를 주로 맡는 인자들)은 중간계급에 집중돼 있고, 설교 등 메시지의 주된 경청자는 도시 빈민이다.

이슬람주의의 원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속주의와 성적 자유를 서구의 악이라 해서 배격하는 도덕적 순수주의이고(그래서 여성에게 온 몸을 가리는 장옷을 입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제국주의다.

이 중 후자는 때와 곳에 따라 크게 희석돼 왔다.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반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오히려 친서구적인 정권이 이슬람주의의 실행자이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경우 반제국주의 반란을 지도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민중 단체가 이슬람주의의 행위주체다.

이슬람 파시즘?

이슬람주의를 조야하게 하나로 뭉뚱그려 ‘파시즘’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완전히 부정확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 전례로 알 수 있듯이, 파시즘은 대자본가와 노동계급 운동 모두에 반대함을 표방하는 중간계급 대중의 모순투성이 극우 대중 운동이다.(이번 호에 실린 존 몰리뉴의 글을 보라.)

하지만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흔히 살인폭력배 집단을 조직해, 난민과 이주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노동계급 조직과 좌파 단체를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분쇄하는 데 헌신하므로, 결국 대자본가들의 무기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

그래서 대자본가들은 처음엔 파시스트들을 매우 껄끄러워하다가 사회의 위기가 너무 심화해서 파시스트가 아니면 도저히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없을 듯하면 파시스트들에게 정권을 맡기기도 한다. 이것이 1920년대 초와 1930년대 초에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독일의 부자들은 또다시 1919년처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날까 봐 너무도 두려워, 그들이 보기엔 ‘천한 상것들’인 가게주인 등 자영업자들과 사무직 중간관리자들에게 국가 운영을 넘겼던 것이다.

나치는 봉기는커녕 결코 심각하게 국가와 맞서지 않았고, 오히려 독일 대기업의 대표들에 의해 1933년 1월 권좌에 앉혀졌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세계 3위의 산업 대국이었고 주요 제국주의 열강이었다.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의 보수 이슬람주의 정권들은 매우 억압적이긴 하지만 주요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끼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알제리와 이집트 등지의 이슬람주의 야당은 대중 운동의 뒷받침을 받아 활동하지만 파시즘과 하는 구실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노동계급 조직들을 분쇄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또 대기업들이 노동계급을 희생시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협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국가와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벌이곤 했는데, 파시스트 정당은 이런 적이 거의 없다. 또한, 제국주의의 행위주체이기는커녕 반제국주의 구호를 채택하고 종종 반제국주의 행동을 조직한다.

‘이슬람 파시즘’이라는 개념적 오류는 정치적 오류도 수반하게 된다. 만일 미국 군대가 이슬람주의 운동을 분쇄하는 데 성공한다면 다국적기업과 IMF·세계은행 따위의 약탈자들이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세계를 약탈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 되면 중동 민중의 분노와 무력감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그러면 분노와 좌절감에서 비롯한 그릇된 투쟁 방법인 테러가 더 선호될 것이다.

한국인 선교사들의 비극이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비극이든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막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미국과 서구 열강의 침략과 점령이야말로 주된 문제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물론 노무현의 파병 지원도 당연히 여기에 덧붙여야 한다.

이슬람주의의 진정한 대안은 서유럽과 한국 같은 선진 공업국에도 중동 등 제3세계의 수탈에 반대하고 자국 지배계급에 효과적으로 도전하는 강력한 좌파가 존재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최일붕 동지는 대학 시절에 언어학을 공부했으나 대학원에서는 종교사회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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