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력 투입 이후의 과제:
현장조합원 민주주의를 다시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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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탄압 이전까지 무려 3주 동안이나 지속된 농성으로 이 투쟁은 전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대리전’ 성격을 띠며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승리가 전체 노동운동에 자신감을 확산할 것이 분명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판돈’이 커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폭력적인 연행으로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꺾어 놓으려고 했다. 이미 경찰 침탈이 예고됐지만, 노동자들은 뒷걸음치지 않고 오히려 끝까지 싸우다가 연행되기를 택했다. “제2, 제3의 거점에서 다시 모이자”며 최후 순간까지 저항함으로써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보존할 수 있었다. 덕분에 곧장 대열을 추스린 노동자들은 연행된 동료들이 석방되자 이제 다시 거점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이 승리한 것이다.
경찰 침탈이 자신감을 앗아가진 못했어도 김경욱 위원장을 구속함으로써 파업지도부의 지도력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경찰 침탈 직후 민주노총이 적극적인 연대 투쟁 의사를 밝힌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 등 상층 노조 지도자들의 투지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용기와 투지, 단호함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지난 6월 30일,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가 시작될 당시에도 이들 상층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을 농성장 밖으로 철수시키려 했다. 그러나 만약 그 때 노동자들이 후퇴했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첨예한 충돌이 가하는 압력을 피하고 적당한 타협을 시도한 상층 지도자들의 생각과 파업 노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조합원들은 거점 농성을 풀고 매출 타격 투쟁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놓고 분임 토론을 벌인 끝에, 상층 지도자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농성 지속을 결정했다.
그런데 경찰 침탈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는 불매운동과 매장 타격 투쟁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협상이 이뤄진다면 매출 타격 투쟁을 중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날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석행 위원장은 “거점 농성은 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민주노총 지도부, 제2거점 마련을 지원해야
이와 정반대로 이날 밤 파업 노동자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쟁의대책위원회는 제2의 거점 농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경찰 침탈 이틀 후인 22일,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부천 중동 매장을 점거했다. 순전히 자생적인 투지로 이뤄진 이날 점거는 6월 30일처럼, 무기한 농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에 설치된 투쟁 상황실에서 “구속된 간부들의 형량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당장 매장 밖으로 나오라는 지시가 빗발쳤다. 결국 이랜드노조 지도부는 상층의 압력에 못 이겨 매장 안에서 총회를 열려던 계획을 뒤로 미루고, 점거를 지속할지를 토론에 부치지 않은 채 철수를 지시했다.
22일 중동점 점거와 철수 과정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지난 3주 동안 거점 농성이 그토록 강력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부가 모든 중요 사안을 민주적 토론에 붙이고 조합원들의 결정을 단호하게 집행했기 때문이다. 김경욱 위원장이 구속되기 전 “지도부가 흔들릴 때 투쟁 방향을 바로 잡은 것은 조합원들이었다”고 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경찰 탄압에 의한 지도력의 훼손을 복구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장조합원 민주주의 원칙을 다시 확고히 세워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제2의 거점 농성을 요구하는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투쟁 의지를 고무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 협상을 이유로 거점 농성이 연기돼서는 안 된다. 또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뉴코아·이랜드 투쟁을 “이랜드 간판을 내리느냐, 민주노총 깃발을 내리느냐”의 투쟁으로 규정한 만큼, 실질적이고 강력한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점거 농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가 곤경에 처한 때일수록 단호하게 밀어붙여 저들을 굴복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