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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을 합법화하라

한총련을 합법화하라

장준석(광운대 공과대 학생회장·한총련 대의원)

고도근시 환자 박재범 씨(1999년 경기대 동아리연합회장)는 수배 4년 동안 치료를 못 받아 서서히 시력을 잃어 가고 있다. 유영업 씨(1997년 목포대 총학생회장)는 6년째 가족과 생이별 상태다. 아버지가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뇌출혈 수술을 받았지만 병문안 한 번 못 갔다. 지난해에는 외할머니 장례식에도 못 갔다. 1999년에는 주민등록까지 말소당했다. 한총련 대의원들이 겪는 비참한 수배 생활이다.

올해 3월 말까지 1백40여 명의 대학생들이 연행되거나 구속됐다. 대부분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2000년 국가보안법 구속자 1백28명 중 1백1명이 한총련 대의원이었다. 경찰은 지난 5월 28일에 10기 한총련 의장 김형주 씨를 연행했다.

한총련은 김영삼 정권이 ‘이적 단체’로 규정한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압받아, 지금까지 사법처리된 학생 수만 8백여 명에 이른다.

1997년 초 한총련은 대선 자금 공개와 김영삼 정권 퇴진을 내걸고 싸웠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 김영삼은 한총련 강령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이적 단체’로 규정해 마녀사냥했다.

김대중은 김영삼이 저지른 추악한 마녀사냥을 따라했다. 김대중은 정권 유지를 위해 한총련을 희생양 삼고 있다. 한총련 대의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김대중의 역겨운 말을 들으며 감옥으로 끌려갔다.

한총련은 이적 규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에 ‘이적’ 규정의 핵심 근거인 ‘연방제 통일’ 방안을 강령에서 삭제했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을 통일 강령으로 채택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한총련을 ‘이적 단체’로 규정해 대의원들과 핵심 간부들을 수배·구속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 10기 한총련은 검찰총장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 “무엇을 바꿔야 이적 규정에서 풀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검찰청 공안과는 “한총련이 이적 단체로 규정돼 있어 10기 한총련에도 실정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김영삼 정부는 한총련을 ‘주사파 조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적 단체’로 규정했다. 그러나 한총련은 주체사상에 동의하는 학생들만 있는 주사파 조직이 아니다. 한총련은 학생들이 스스로 결성한 학생회 연합체다. 한총련 회원은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한다.

지난 10기 한총련 출범식에는 1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했다. 과연 그들이 모두 ‘주사파’고 북한 추종자인가? 한총련 출범식 참가자 다수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염원하는 학생들이다.

일부 한총련 간부들이 북한을 남한의 대안으로 여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을 지지하는 게 죄인가? 어떤 사회를 지지하든 그것은 토론과 논쟁할 문제지 사법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한총련 대의원이지만 주체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 역시 남한과 마찬가지로 소수가 노동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 사회를 보는 태도는 국가가 억압할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토론할 문제다.

2년 전 김대중은 김정일을 만나 김정일을 “합리적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김대중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김대중이 한반도 평화를 외치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한총련을 이적 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위선이다.

한총련은 당장 합법화돼야 한다. 한총련을 이적 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도 당장 철폐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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