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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범죄의 진실

신용카드 범죄의 진실

김덕엽

최근 언론에서 “카드빚 흉기 고삐가 없다”, “카드빚 때문에 살인·강도·자살”, “범죄로 카드빚 해결” 따위 말로 시작하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자 정부는 5월 23일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종합대책’은 미봉책일 뿐이다. IMF 초부터 김대중 정부는 “거래의 투명성”과 “세원 확보”라는 말로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겼다. 김대중 정부는 카드 회사가 현금 서비스 영업을 확대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특혜를 주었다. 정부는 1998년에 13.9퍼센트였던 카드 회사의 자금 조달 금리를 2001년에 7.4퍼센트로 낮췄다. 그 동안 신용카드 회사가 순이익을 2조 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보장하는 싼 금리로 돈을 빌려 20퍼센트가 넘는 카드 이자를 사용자들에게 물렸기 때문이다. 가입자의 카드 빚 고통이 늘어날수록 카드 회사는 막대한 폭리를 얻었다. 카드 빚이 높은 수수료 때문이라는 여론의 추궁에 정부는 신용카드 수수료를 20퍼센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카드 회사가 수수료를 내리도록 강제하지 않는다. 인하를 단지 권고할 뿐이다.

정부는 신용 불량자가 많은 카드회사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종합대책’은 카드빚을 질 만한 사람들을 카드 시장에서 추방하고 이들에게 신용카드 회원 자격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이제 카드 회사는 20대 초반이나 인턴 사원, 일용직, 유흥 업소 종사자, 아르바이트 사원에게는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기로 했다. 현금 서비스를 많이 받거나 여러 곳에서 대출받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이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나 신용 구매를 많이 하는 게 문제인가? 안정된 수입이 있다면 사람들이 신용카드 빚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일가족이 자살할 일도 없을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김대중 집권 4년 동안 4백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정부도 대량 해고를 낳는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는 기업은 지원하지 않았다. 취업해서 갚을 요량으로 신용카드를 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1백10만 명이 신용 불량자가 됐다. 그리고 매월 4만 명씩 늘고 있다. 경제 활동 인구 10분의 1이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신용카드 빚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신용불량자 규제가 강화될수록 사채시장이 뜨거워지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미 사채를 쓰고 있는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신체 포기 각서’를 쓰면서까지 사채를 끌어다 쓰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은 신용카드 관련 범죄가 개인의 무절제한 소비 때문이라며 신용카드 빚을 진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한다. 고작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개인의 각성과 소비 절제다. 그러나 소비는 이미 ‘절제될’ 대로 절제됐다. 가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 교육비, 주거비 등 소비지출보다 세금, 연금, 의료 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이 더 늘었다. 소득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가구소비 실태조사’를 보면 상위 20퍼센트 가구 소득이 하위 20퍼센트 가구 소득의 6.75배다. 부유층이 이용한다는 백화점마다 월 평균 1천만 원 이상 지출하는 고객이 1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반면 평균 임금이 1백만 원 이하인 노동자가 7백만 명이 넘고 50만 원 이하인 노동자가 1백만 명을 넘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비 절제가 아니라 더 많은 복지다.

범죄는 불평등·가난·소외에서 비롯한다. 불평등과 가난을 부추기는 정부는 체제의 희생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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