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에세이:
토빈세 또는 헤지펀드 규제가 경제위기에 대한 진보적 대안일까?
〈노동자 연대〉 구독
[편집자 주] 토빈세 도입이나 투기적 금융 자본에 대한 규제는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개혁이다. 물론 그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반자본주의 선언》)
정성진 교수는 이 글에서 후자에 전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파생금융상품의 존재 때문에 투기적 금융자본 규제가 불가능하며, 가능하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 격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9월 7일 미국 노동부는 2003년 이후 계속 증가했던 미국의 일자리가 지난 7~8월 처음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8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비롯한 세계 금융위기가 이제 세계 실물경제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 이번 세계 금융위기와 관련해, CDO(부채담보부 증권), MBS(모기지 담보부 증권),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같은 신종 파생금융상품과 이들에 투자한 헤지펀드·투자은행 등이 이른바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부 진보진영도 이번 금융위기를 지난 세기말 이후 가속화된 금융 규제완화의 산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토빈세(Tobin Tax) 도입을 통한 투기적 금융 거래 규제, 헤지펀드 등 투기적 금융 자본에 대한 규제 등을 주장한다(예컨대,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과 임수강 씨가 〈레디앙〉에 기고한 글을 보라).
이처럼 위기의 원인을 금융이나 투기에 있다고 보고,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투기근절과 금융자본 규제에서 찾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이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위기는 투기적이든 생산적이든, 자본주의의 특정한 형태나 행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자체의 내재적 모순에서 비롯한다.(〈참세상〉(8.14)과 〈맞불〉(8.21)에 실린 기사를 참조하시오.)
오늘날 금융위기는 0.1퍼센트 거래세율 정도의 토빈세로는 극복할 수도 없고 예방할 수도 없다. 그동안 많은 연구들에서 밝혀졌듯이, 토빈세는 소폭의 가격 변동에 대한 투기만을 억제할 수 있을 뿐이며 투기 자체는 억제할 수 없다.
금융시장이 큰 폭으로 요동쳐서 투기 규제가 절실히 요구되는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토빈세는 정작 무용지물이 된다. 환율 변동폭이 토빈세율을 초과할 경우, 토빈세를 물려도 투기적 거래가 극성을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빈세는 모든 단기 외환거래에 대한 과세인데, 그 단기 외환거래가 투기적 거래인지 아니면 “헤지”(hedge, 위험회피) 거래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만약 토빈세 도입으로 진정한 의미의 “헤지”까지 규제될 경우, 금융위기의 위험은 감소되기는커녕 도리어 증대될 것이다.
생산적 투자
토빈세를 포함한 케인스주의적 자본 통제 정책은 투기적 금융자본의 국제 이동을 규제하면 그 금융자본이 국내의 생산적 투자로 전환돼 고용이 증대되고 경제성장이 촉진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 가정 역시 비현실적이다. 예컨대 개량주의 정당이 집권해 자본 통제를 실시한다 할지라도, 국내에 묶인 화폐자본이 생산적 투자로 연결되려면 이 자본에 최소한 세계 평균 수준의 이윤율이 보장돼야 한다. 그동안 집권한 개량주의 정당이 거의 예외 없이 노동자 계급에게 “고통분담”과 임금 억제, 즉 초과착취 감수를 강요하는 “배신”을 때린 것은 이 때문이다.
토빈세 등 각종의 케인스주의적 자본 통제 정책은 개량주의자들이 기대하듯이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희망하듯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보듯이 헤지펀드가 애호하는 파생금융상품의 존재 자체가 토빈세의 목적, 즉 투기적 금융자본 규제를 기술적 차원에서도 실행 불가능하게 한다. 파생금융상품 투자가 활발해질 경우, “핫머니” 투기와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투자의 구별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투기와 투자를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 자체가 자의적이다. 그런데도 파생금융상품과 헤지펀드를 단지 투기의 수단이나 금융 불안정의 주범으로만 간주하고 21세기 자본주의에서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필수적 기능을 보지 못할 경우, 위기에 대한 올바른 진보적 대안은 강구될 수 없다.
브라이언(D. Bryan)에 따르면, 19세기 말 20세기 초 국제금본위제에서는 금이 세계금융시장의 조정자 구실을 수행했다. 그런데,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즉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한 후에는, 이 기능을 다름 아닌 파생금융상품이 수행하게 됐다.
파생금융상품은 마치 GPS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위성들처럼 수많은 상이한 금융자산들의 상대가치를 계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선물, 옵션, 스왑 등에서 보듯이 파생금융상품은 각종 금융자산의 현재 가격과 미래 가격을 연동시키고 상이한 종류의 금융자산들의 가격을 연결시킴으로써 위험과 변동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조정한다. 파생금융상품은 금융자산 자체를 거래하지 않고도 금융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전가시켜 투기 위험에 완충 수단을 제공한다.
파생금융상품
따라서, 파생금융상품이 투기를 조장해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제거하는 것은, 곧 글로벌 금융시장의 조정자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 결과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은 도리어 격화될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필수적 구성요소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생금융상품은 글로벌 수준에서 금융자산 가격의 시간적·공간적 비교 평가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을 심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 결과 가격차와 가격 변동을 이용한 투기적 금융 이득이 발생할 소지는 도리어 줄어든다.
파생금융상품이 보편화되면서, 금융 이득을 포함한 자본가계급의 모든 이윤의 원천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해 얻은 잉여가치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나아가 모든 자본가들과 금융자산이 경쟁의 규범에 충실하게 복무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시장 성과가 부진한 자본가들과 금융자산에게는 구조조정이 강요된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것도 그 본질은, 금융자산 가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을 이윤율에 신축적으로 연동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파생금융상품의 문제를 진정으로 제기할 경우, 오늘날 자본주의의 가치 계산방식의 문제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글로벌 착취체제의 문제, 즉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 그 자체와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소유관계, 계급구조는 전혀 손대지 않고, 카지노판 파생금융상품 시장과 헤지펀드를 토빈세 등으로 규제해 건전하고 생산적인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구현하자는 케인스주의적 자본 통제 정책은, “황금시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재현해 주기는커녕 더욱 불안정화되고 더욱 착취적인 자본주의를 낳는 몽상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본주의에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의 필연적 표현이기 때문에, 경제위기의 근본적 극복은 자본주의 그 자체의 폐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진보진영의 경제 위기 극복 전략의 핵심은, 자본의 이동성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와 대결하는 것이 돼야 한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저자이고, 《반자본주의 선언》,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등의 역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