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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학살

잔혹한 학살

이정구

지난 6월 26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 두 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살해당한 다리오 산티얀과 막시밀리아노 코스테키는 실업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를 휩쓸고 있는 거대한 경제 위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던 무장 경찰 중 한 명이 막시밀리아노를 쐈다. 동료 시위대들이 그를 철도역 근처까지 옮겼다. 쓰러져 죽어가던 막시밀리아노는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경찰이 나를 쐈어요.” 하고 외쳤다. 곁에 있던 다리오가 그를 도와 진정시키고 있을 때, 경찰 책임자 알프레도 프란치오티가 이끄는 한 무리의 무장 경찰이 갑자기 철도역으로 몰려들었다. 다리오는 도망치면서 “쏘지 마세요.” 하고 외쳤다. 그런데 프란치오티가 자기 총을 꺼내더니 다리오를 총으로 쏴 죽였다. 미쳐 날뛰는 무장 경찰은 수십 명에게 총상을 입혔다.

이번 사건은 지난 12월 봉기에서 경찰과 군대가 시위대 27명을 죽인 이래 가장 끔찍한 만행이었다.

살인범들은 물론 경찰 개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는 두알데 정부의 가혹한 긴축 정책에 맞선 저항 운동을 분쇄하려는 체계적이고 일치된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정부와 언론은 경찰이 시위대에게 “강경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떠들어댔다. 정부의 핵심 각료 중 한 명인 럭하우프는 27년 전에 경찰과 군대에게 좌파 조직을 박살내라고 승인한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그 공격은 아르헨티나에서 ‘더러운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1976년 군사 쿠데타로 가는 길을 닦은 사건이었다. ‘더러운 전쟁’ 동안 경찰과 군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 두알데 정부의 일부 분파는 이번 사건을 더 광범한 탄압의 빌미로 삼으려 한다. 경찰의 살인 만행이 발생하자 정부와 언론은 시위대끼리 서로 충돌해 빚어진 일이라고 둘러댔다. 아르헨티나의 주요 우익 신문 〈라 나시온〉은 시위대가 상점을 약탈하고 방화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와 언론의 이런 태도는 모든 반정부 세력들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시위를 지켜본 신문 기자와 카메라맨들의 용감한 증언 덕분에 우익 언론과 정부의 거짓말이 탄로났다. 이들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다음날 1만 5천 명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교사와 일부 공무원들은 파업을 했다. 두알데 대통령은 이런 시위가 더 광범한 저항 운동으로 발전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경찰이 실업자 시위대를 상대로 “광포한 사냥 파티”를 벌였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찰서장과 부서장이 사임했다. 살인을 저지른 경찰관 두 명도 체포됐다. 하지만 손에 피를 묻힌 인물은 이 둘만이 아니다. 다리오와 막시밀리아노가 속해 있던 실업자 조직은 “정부가 이번 탄압을 사전에 준비했다. 정부는 이번 살인 만행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위와 살인 만행은 신규 구제금융 때문에 두알데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상을 벌이던 와중에 발생했다. 지난 해 12월 위기가 폭발한 이래 IMF와 IMF를 지배하는 미국 백악관은 아르헨티나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이들은 이미 빈곤해질 대로 빈곤해진 아르헨티나 민중에게 더 강력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아르헨티나의 생산은 올 1분기에만도 16퍼센트 수축했다. 이는 주요 선진국을 강타한 불황 중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부 노동 계급 거주 지역은 실업률이 80퍼센트를 웃돈다. 한때 “세계의 곡물 창고”로 불렸고 일인당 육류 소비량이 가장 높았던 나라에서 지금은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필라 지구의 한 실업자 가족을 보도했다. 방 두 칸에서 여섯 아이와 함께 사는 아돌포 알라콘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가족이 굶주리고 있어요. 아이들은 줄곧 빵을 찾아요.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그래서 미치겠어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가끔은 밖에 나가 강도짓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내에 나가 식량을 찾아 헤매는 것뿐이죠. 살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야 해요.”보건장관 기네스 가르시아 곤잘레스조차 두알데 정부와 IMF 같은 국제 기구가 요구하는 긴축 정책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점을 시인할 정도다.

제노바

아르헨티나 경찰의 이번 살인 만행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제노바 시위 당시 이탈리아 경찰이 카를로 줄리아니를 살해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줄리아니는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젊은 실업 노동자였다. 이탈리아 경찰은 언론과 시위대들이 숙소로 사용한 학교를 급습해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제노바에 이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살인 만행은 반자본주의 시위에 대한 지배자들의 대응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12월 말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에 맞서 대통령을 며칠 만에 물러나게 만들 정도로 반자본주의 운동이 고양되고 있다. 하지만 지배자들도 이에 맞서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전부터 군대가 나설 조짐을 보였을 정도로 지배자들의 위기감이 극에 달해 있다. 아르헨티나 지배자들은 ‘더러운 전쟁’을 다시 벌일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런 지배자들의 시도를 좌절시키려면 광범한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또 ‘사회주의를 위한 운동’(MAS)을 포함한 여러 좌파 조직들이 우익의 광포한 탄압에 맞서 공동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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