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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맑시즘 2007 ③:
현대 제국주의의 정치와 경제

[편집자] 맑시즘 2007에서 존 리즈와 린지 저먼이 했던 연설들을 기획 연재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세 번째 순서로 존 리즈가 연설한 ‘현대 제국주의의 정치와 경제’를 녹취한 것이다.

① 사회 변혁의 전략과 전술 (존 리즈)
② 사랑, 결혼, 그리고 가족 (린지 저먼)
③ 현대 제국주의의 정치와 경제 (존 리즈)
④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린지 저먼)

현대 제국주의는 경제적·정치적인 요소가 결합된 체제입니다. 먼저 경제적 요소를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는 천성적으로 경쟁적 체제입니다. 슈퍼마켓 간 경쟁이든, 석유회사 간 경쟁이든, 혹은 자동차 제조업자 간 경쟁이든 자본주의 경쟁은 국제적 성격을 띱니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국경을 초월해 세계시장을 지향했고, 오늘날 세계시장의 영향력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강력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국민국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국민국가는 정의상 국경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고전 사회학은 국가를 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무력을 독점하는 기구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전자본주의 유럽 봉건 왕정은 합법적으로 무력을 독점하지 못했습니다. 왕정은 군사를 보유했지만 봉건 영주들도 그랬습니다. 오늘날의 중앙 집중화된 자본주의 국가는 세계시장과 자본주의 경쟁의 등장과 함께 17세기 유럽에서 나타났습니다.

현대 제국주의 체제는 경제적으로 국제적 경쟁 체제이자 국민국가 영토에 근거한 국가 기구로 구성된다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 경제 경쟁은 단순히 경제적 영역에 한정될 수 없습니다. 경제적 경쟁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국가는 자기 국경을 뛰어넘어 군사력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는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경제 메커니즘 이상이 필요하고, 때때로 무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그래서 전쟁, 혹은 전쟁 위협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경제적 경쟁과 국가 체제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7세기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공화국, 이들의 경제적 대표 주자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영국 동인도회사는 서로 다퉜습니다.

식민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제1·2차세계대전 시기나, 냉전, 그리고 오늘날의 신제국주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서로 다른 제국주의 시대들은 각자 고유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냉전 시기 갈등과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과 영국 간의 갈등은 성격이 서로 달랐습니다.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제국주의 체제를 살펴보고, 경제적 경쟁과 국가 체제라는 제국주의의 두 요소가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두 개의 매우 중요한 사건을 봐야 합니다. 하나는 1979년의 경제적 변환이고, 다른 하나는 1989년의 지정학적 변환입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자본축적 중심지에서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경제 사조가 됐지만 1979년은 그런 변화를 분명히 보여 준 해였습니다. 그 해 마가렛 대처가 영국 총리가 됐고, 1년 뒤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죠.

바로 그 때부터 ‘통화주의’, 혹은 ‘대처주의’, 혹은 ‘레이거노믹스’가 경제적 정설이 됐습니다. 새로운 정설은 1945년부터 1970년대 중반 전후 경제호황기의 경제적 정설이었던 케인스주의 복지국가와 국유화 모델을 대체했습니다.

복지국가 합의는 완전고용이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더라도 중요하다는 사고에 기초했고, 국가의 복지서비스 제공과 노동조합 활동에 상대적으로 관용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것을 대체한 신자유주의의 핵심 원리는 탈규제, 사유화, 반노조 입법, 실업자에 대한 무시였습니다.

복지국가 합의로부터 신자유주의 경제학으로 경제 정설이 변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 중심부의 성장률 둔화 때문이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자본주의 체제는 최고의 성장률을 최장 기간 동안 유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이의 전체 크기가 늘자 자본가들은 그 중 일부를 노동자에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이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자 복지국가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정설이 지배계급에게 필요해졌던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유럽 경제 성장률을 보면, 전후 호황기 평균인 4퍼센트를 넘은 적이 거의 없었고, 지난 5년 동안은 0∼2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쟁이 더 치열해진 자본주의 체제의 압력에 대한 자본가들의 대응이었습니다.

이것이 현대 제국주의의 경제적 구조입니다. 이제 그것의 지정학적·국가적 구조를 말할까 합니다. 여기서 결정적 변환은 1989년에 일어났습니다. 1989년에 동유럽 국가기구 전체가 혁명에 의해 붕괴됐고 얼마 뒤 소련도 무너졌습니다. 냉전기의 양자 간 경쟁 구도는 순식간에 소멸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결과로 발생한 국가 간 체제의 거대한 변환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1989년 혁명

중국 공산당 지도자 저우언라이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직 답하기 이르다” 하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1989년 혁명의 완전한 결과를 말하는 것도 아직 이르지만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지적할 수는 있습니다.

첫째, 냉전 동안 서방 기업과 서방 군대의 진출이 가로막혀 있던 곳이 활짝 열렸습니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유라시아대륙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지금 미국 지배자들이 매우 큰 관심을 기울이는 지역이 됐습니다.

1989년 이후 서방 기업과 군대가 이 지역에 대거 진출했습니다. 나토가 동유럽으로 전진했고, 미군 기지가 옛 소련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에 건설됐고, 중동 중심지가 세계적 갈등이 충돌하는 지역이 됐습니다.

냉전 종식 후 미국 국가만이 새로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군비지출을 보면, 미국 군사비 지출이 그 다음 열 개 국가의 지출을 합한 것보다 더 큽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이런 군사력을 사용해야 할 이유는 명백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등은 세계 최대 산유국들입니다. 단지 미국 국내 필요 때문에 중동의 석유 자원을 군사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중동 석유는 이윤이 가장 많이 남습니다. 미국이 국내 소비용 석유의 3분의 1을 수입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1배럴 당 8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달러만 지불하면 됩니다. 따라서 엑손모빌의 회장이 아니더라도 중동 석유의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중동 석유를 소비하지 않더라도, 설사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동 석유는 중요한 전략 자산입니다. 중국, 러시아, 혹은 유럽연합이 중동 석유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미국은] 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엄청난 군사력에 기초한 작전 능력, 중동과 다른 지역의 시장과 자원을 얻으려는 야심을 가진 국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경제적 약점이 있습니다. 냉전 초기 미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50퍼센트를 차지했고, 달러는 세계무역의 기축통화 구실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경제만이 원활히 굴러가면서 민간 경제와 군사 경제가 동시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미국 제조업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22퍼센트만을 차지합니다. 달러화는 유로화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달러가 여전히 대접을 받는 이유는 중동 산유국·일본·중국 등이 엄청난 양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당장 내일이라도 달러를 판다면 세계 최대 채무자라는 미국의 본모습이 당장 폭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샬플랜

경제력의 상대적 약화와 압도적 군사적 우위가 이라크 침략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결합됐습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 침략을 원했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1991년] 제1차 걸프전 때 사용한 군사력의 절반을 가지고 이라크를 침략했습니다.

또, 그들은 이라크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 경제 전체를 부흥시켰던 마샬플랜 같은 대규모 재건 사업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제 사업을 실행했습니다.

사실, 부시는 이라크 경제 재건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시와 블레어가 미국과 영국 경제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로 이라크 경제 재건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획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은 자유시장을 믿었기 때문에 핼리버튼·엑손·벡텔과 자유시장이 결합되면 이라크가 자동으로 재건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경제적 취약함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군사력이 동원됐고 침략 후 경제 재건 계획도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돼 오늘날 이라크에서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네오콘] 외교 정책은 먼 외지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습니다. 제국주의는 국외 경제·정치 프로그램뿐 아니라 국내 경제·정치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곳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영국 최상층 20퍼센트와 최하층 20퍼센트 간 불평등은 19세기보다 더 심각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노동자 두 명의 임금을 합해야 1968년에 노동자 한 명의 임금으로 가능했던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와 결합된 제국주의는 대중의 생활수준뿐 아니라 민주적 권리도 공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정부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시민권을 공격하고, 인종차별주의와 이슬람혐오증을 부추기고, 민주적 제도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 위기가 옛 사민주의 정당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후 복지국가 합의에 안주했던 사민주의 정당들이 이제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타협하면서 지지 기반을 잃고 있습니다.

예컨대 영국인 중 영국이 점점 더 비민주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 1994년에는 39퍼센트였는데 2000년에는 54퍼센트로 늘었습니다. 이라크 전쟁 후에는 60 ∼6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대중 반란

이런 변화 때문에 1960년대 말~ 70년대 이후 가장 급격한 급진화가 진행되면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맞선 대중 반란이 나타나고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 프랑스 사회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2003년 1∼3월까지 전 세계 모든 대륙, 모든 주요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지면서 약 3천6백만 명이 이런 저런 반전 행동에 참가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 세계 공동 시위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2003년 투쟁의 결과를 한 번 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략을 적극 지지했던 스페인 총리 아스나르는 거대한 반전 운동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아스나르가 이라크 침략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마드리드 테러에 관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도 부시와 이라크 침략을 지지한 대가로 쫓겨났습니다. 지금 스페인과 이탈리아 군대는 모두 이라크에서 철군한 상태입니다.

2005년 총선 직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끝까지 총리직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2009년, 혹은 2010년까지 총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총리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2006년 레바논 전쟁 때 전쟁저지연합이 일주일 만에 10만 명을 반전 시위에 동원하자 그는 사임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부시도 미국의 반전 정서 때문에 2006년 중간 선거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는 이제 자기 지능지수보다 지지율이 낮은 레임덕 대통령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적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현대 제국주의라는 적에 계속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아스나르, 베를루스코니, 블레어가 쫓겨났고, 부시도 곧 자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저들의 정치적 대변자 중 제1세대는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단지 그들뿐 아니라 체제 자체를 무찌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 정리 발언

플로어에서 나온 몇 가지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신보수주의와 블레어 정부 정책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국의 해체 이후 영국 외교 정책은 미국을 긴밀히 추종해 왔습니다. 이것은 영국 경제가 다른 유럽 경제들보다 훨씬 더 국제화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경제는 주로 유럽연합과 무역 거래를 하지만 영국은 훨씬 더 넓은 지역과 거래합니다.

그러나 영국은 제국을 잃은 후 그런 국제적 경제 관계를 지탱할 군사적 수단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미국의 군사력이 제공하는 보호 우산 아래 편입됐던 것입니다.

이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사례 하나를 들겠습니다. 한 전 주미영국대사가 처음 주미대사로 임명됐을 때 총리 관저를 방문해 총리에게 미국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총리는 “미국 꽁무니에 붙어 떨어질 생각하지 마!” 하고 말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교육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석유

석유 통제권을 추구하면 다른 경제적 이득을 얻을 기회를 잃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석유는 특별한 상품입니다. 석유가 없으면 플라스틱을 만들 수 없고, 플라스틱이 없으면 비행기 창문에서 비닐 랩까지 많은 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석유는 플라스틱뿐 아니라 많은 의약품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재료입니다. 따라서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 상품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상품인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어 정부가 다른 에너지 개발을 희생시키더라도 석유를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런던 시와 베네수엘라 간 석유 공급 계약은 정치적 선전의 성격이 농후합니다. 이 계약에 따르면 런던이 값싸게 석유를 얻는 대가로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베네수엘라에게 교통 체제에 관한 조언을 제공할 것입니다. 런던 지하철을 타봤다면 리빙스턴이 별로 신통한 조언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켄 리빙스턴과 차베스에게 유용한 정치적 선전 도구임은 사실입니다.

어떤 분이 켄 리빙스턴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리빙스턴은 전쟁, 인종차별주의, 이슬람혐오증 등에서 괜찮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제 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는 런던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만드는 정책을 지지했고 대기업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라크를 망쳐 놓은 민간 기업과 런던 지하철 보수 계약을 맺었습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이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자 그는 노동자들에게 파업 파괴 행위를 하라고 선동했습니다.

저항

어떤 분이 고든 브라운의 한반도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조지 부시의 한반도 정책과 똑같습니다. 브라운의 외교 정책은 언제나 부시의 정책과 똑같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저항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종류의 저항을 선택하는가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공격을 받는지와 밀접히 연관돼 있습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경우, 군사 점령이 군사 저항을 낳았습니다. 물론, 이 곳들에 군사적 저항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사 저항이 핵심인 것은 사실입니다.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신자유주의와 IMF의 공세는 대중의 혁명적 반응을 낳았습니다.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우 지배자들이 부시 전쟁을 지지하고 신자유주의 공세를 펴면서 정치·사회 운동이 성장하고 노동조합이 반격을 했고, 파업과 대중 시위 속에서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반대를 결합시켰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저항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 뿐만이 아닙니다. 그 저항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저항은 신자유주의 경쟁과 전쟁을 종식시켰을 때 목적을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적 저항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항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저항만 할 수는 없다. 우리 지배자들이 내놓은 것보다 더 나은 대안을 원한다면 우리는 사회주의를 말해야 한다’ 하고 주장해야 합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저항이 필요한 이유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언급한 현 단계 제국주의 전쟁들은 주로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제국주의는 강대국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는 한국뿐 아니라 체코, 폴란드 등에도 건설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냉전 이후 처음으로 서방 도시들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몇 달 전에 러시아가 경제적 갈등 때문에 서유럽으로 향하는 석유와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헝가리와 폴란드의 전력 공급이 부분적으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저항과 자본축적 중심지의 우리의 저항이 결합되면서 숨 쉴 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취급하던 부시가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도 용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맙시다. 이것은 잠시 쉴 틈에 불과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순간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금 있는 힘을 다해 제국주의 전쟁 기계를 쳐부수지 못한다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인류 앞에 놓인 대안을 사회주의 아니면 이른바 “투쟁하는 계급의 공멸”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마르크스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그는 이라크를 보고 “투쟁하는 계급의 공멸”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 재앙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우리 운동만이 그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녹취 이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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