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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더러운 전쟁

미국의 더러운 전쟁

정형준

올해 5월 2일 콜롬비아에서 민간인 1백19명이 죽었다. 콜롬비아 내전 사상 하루만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좌익 게릴라인 콜롬비아혁명군(FARC)과 우익 민병대가 벌인 전투로 보하야 부근에서 생긴 비극이었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재빨리 개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콜롬비아 정규군에 6천2백만 달러를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콜롬비아 정규군은 우익 민병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우익 민병대는 우익 정치인, 대지주, 농장주가 마약 거래, 토지 강점, 노동자·농민 착취를 위해 운영하는 사설 군대다. 이들은 ‘플랜 콜롬비아’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콜롬비아의 전 대통령 안드레스 파스트라나는 1999년에 ‘플랜 콜롬비아’를 의회에 제출했다. 물론 미국과 사전 조율을 마친 뒤였다. 그 명분은 콜롬비아의 안정과 평화를 회복한다는 것이었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마약 근절책이 그 핵심이었다.

미국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군과 대규모 게릴라 조직들 사이의 내전이 모종의 마약 전쟁이라고 주장하며 개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플랜 콜롬비아가 불법 마약 거래에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마약 근절책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콜롬비아 정부의 공식 성명서들은 게릴라들을 쳐부수는 데만 관심이 있는 반면, 미국 정부의 대변인들은 ‘지역 안보’ 문제에만 몰두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플랜 콜롬비아에 13억 달러를 원조했다. 이 원조액은 대부분 무기 구입과 군사 훈련에 집중됐다. 유일하게 다른 조치는 고엽제 대량 살포 프로그램이었다. 그 목적은 다른 작물들은 그대로 둔 채 코카와 양귀비만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콜롬비아 코카의 40퍼센트는 북부 지역에서 재배되는데 제초 작업은 남부에 집중됐다. 그리고 제초제 살포 지역의 농민은 대부분 난민이 됐다. 물론 마약 근절은 실패했다. 코카 식물을 재배해 수확을 하는 데는 60일이면 충분해 다른 지역에서 코카와 양귀비를 매우 빨리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카 식물을 고사시키는 계획은 코카 덤불을 죽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토지에서 쫓아내고, 게릴라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 영토를 더 쉽게 점령하게 만든다. 결국 그런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는 석유·가스 회사들이 그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플랜 콜롬비아는 콜롬비아를 더 무장시켰다. 미국의 원조액 13억 달러 중 82퍼센트는 직접적인 군사 목적에 사용됐다. 그 중 47퍼센트는 정부군 마약 단속 부대를 위한 헬기 구입에, 27퍼센트는 해상 작전용으로, 7퍼센트는 경찰을 위해 쓰였다. 이것을 보면 플랜 콜롬비아의 억압적인 목적은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다. 이는 특히 콜롬비아 남부 지역을 통제하려는 군사 계획이다. 이미 인접국 에콰도르 정부는 만타 공군 기지와 콜롬비아 국경 인근 내륙 기지를 미국에게 내줬다.

결국 플랜 콜롬비아는 콜롬비아의 군사화를 증대시키고 2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으며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 피해자들은 소농들, 석유 부문과 운송 부문의 노동자들, 도시 빈민들이었다. 그들은 가두 시위를 벌이며 계속 저항하고 있다. 2001년 7월 공공·운수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은 플랜 콜롬비아의 사회적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 증거였다.

살인 부대

지난 6월 콜롬비아의 새 대통령으로 알바로 우리베가 당선했다. 미국과 지역 언론은 광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우리베는 콜롬비아 최대의 우익 민병대인 콜롬비아연합자위대(AUC)와 정규군 장교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AUC는 ‘좌익 협력자’로 의심되는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쇠톱으로 죽이는 걸로 유명한 살인 부대다. 우리베의 당선은 노동조합 활동가와 좌파 활동가, 38년 간의 내전으로 고통받는 콜롬비아 노동계급에게는 끔찍한 소식이다.

우리베는 지방 시장과 주지사를 거치면서 69개의 ‘살인 부대’ 창설을 지원했다. ‘살인 부대’는 마약 거래에 이해관계가 있다. 그는 이들에게 라디오, 무기, 오토바이를 제공했다. 이런 그가 승리한 데는 광포한 우익 민병대와 20퍼센트가 넘는 실업률 때문에 대중이 자포자기한 것이 크게 한몫 했다. 이번 선거에서 집밖으로 나와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가 54퍼센트나 됐다.

그가 성공을 거둔 데는 전임자의 공도 컸다. 전 대통령 파스트라나는 콜롬비아혁명군(FARC)에 비무장지대를 제안했다. 우리베는 미국이 지원한 13억 달러로 군사 조직을 더 무장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에 참여했다. 올 2월이 되자 파스트라나는 FARC에 군사 공격을 재개했다. 우리베가 거느린 무장 조직의 입지는 더욱 커졌다.

미국은 우리베의 잔혹한 경력과 우익 살인 부대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FARC에 대항한 전쟁을 확대하려는 우리베의 공약이 콜롬비아에서 부시의 목표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 앤 패터슨은 일간지 인터뷰에서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콜롬비아가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유국입니다. … 9·11 사건 이후 미국의 전통적 석유 수입원은 덜 안전해졌고, … 콜롬비아는 미국에 훨씬 더 많은 석유를 수출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의 석유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하고 말하며 우리베의 당선을 축하했다. 우리베의 전쟁 계획은 전보다 더 진전해 있다. 그는 콜롬비아 정규군과 경찰의 규모를 두 배로 늘리려 한다. 그리고 40억 달러를 들여 ‘민간인 밀고자’ 1백만 명을 조직할 계획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그 대부분을 지원할 것이다.

미국 의회는 콜롬비아 주둔 미군의 수를 제한하는 조항을 폐지할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마약과의 전쟁’(플랜 콜롬비아)에다 ‘테러와의 전쟁’을 덧붙여, 미국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의 군사 기지는 ‘마약과의 전쟁’을 빌미로 마약 거래의 통로가 되는 페루, 볼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다. 콜롬비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미국에게는 더없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베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의 개입은 더 많은 피와 비극을 부를 것이다. 부시도 이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이 자신의 이익에 적합한 이상, 독재자와 도살꾼 지원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FARC 같은 좌파 게릴라들의 저항은 정당하다. 그렇지만 그들의 전략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해방 투쟁을 대신하려 한다. 콜롬비아에서도 노동자·민중의 운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대중이 해방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 정치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어떤 해방구도 고립해서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국이 콜롬비아의 더러운 전쟁을 후원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 ‘마약과의 전쟁’도 ‘테러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이익과 패권을 유지하려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