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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홈에버 면목분회 승선화 대의원의 하루: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

거센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후퇴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70퍼센트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기혼 여성들은 주로 임시직으로 재취업하면서 비정규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남성 정규직 임금의 36.8퍼센트만을 받는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1백73만 명 중 무려 65퍼센트가 여성이다. OECD는 회원국 중 한국이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고 해마다 지적해 왔다.

노무현의 비정규직 ‘보호’ 사기극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절망적으로 악화시켰다. 법 시행 이전부터 계약 해지와 외주화 칼바람이 몰아쳤다.

그러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자, 감동적인 투지가 솟구쳤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군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비정규직 악법의 더러운 본질을 낱낱이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 사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주소를 보여 주고 있다.

골병

지난 11월 1일, 이랜드 회장 박성수 집 앞으로 시위를 하러 가는 홈에버 면목분회 승선화 대의원을 만났다. 승선화 씨는 사측이 홈에버 상암점 점거에 참가한 조합원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을 계속 찾아내 손배가압류를 청구하고 있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80만 원 받는 우리한테 무슨 1억 원씩 손배를 때리냐고요. 난 이게 사람같지 않다는 거예요. 그만큼 월급을 주고 손해를 묻든가. 난 2억 2백만 원이나 맞았는데 평생 벌어도 못 갚아요. 믿는 건 이 싸움 끝나고 모든 걸 철회시키고 들어가는 거예요.”

박성수 집 앞 집회를 마치고 홈에버 목동점으로 차도 행진을 하던 중에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나타나더니 의도적으로 정체불명의 뿌연 가루를 대열에 뿌리고 가버렸다. 연신 콜록거리던 승선화 씨는 네 달 동안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말도 못하죠. 지금은 벌써 이렇게 춥지만 여름에 아스팔트 바닥이 얼마나 뜨거웠어요. 아니면 소낙비가 쏟아지고. 구사대한테 욕도 많이 먹었어요. 코뼈 부러지고 눈 밑이 찢어진 경우도 있었고요. 경찰한테 성추행 당한 조합원도 있어요.”

무엇이 그녀를 이런 투쟁으로 이끌었을까. “나도 ‘투쟁’이니 ‘단결’이니 잘 몰랐어요. 2003년 6월에 입사해서 샐러드바 일을 했는데 처음엔 급여가 50만 원이었어요. 바로바로 조리해서 먹는 음식이니까 샐러드가 떨어지면 밥 먹다가도 달려가서 해 줘야 했죠. 아침 7시에 나오면 오후 4시 퇴근인데 다음날 쓸 재료를 준비하느라 저녁 7시에 퇴근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늦게 끝나도 수당은 안 줬죠.

“칼질하다 손에서 피가 질질 날 때도 혼자 치료하고 일했어요. 아프다고 집에 가면 그만두라 할까봐.

“1.8리터 짜리 식용유가 20통씩 들어오고, 밀가루 포대 들어오고, 닭은 한번에 1천 마리까지 들어와요. 한 박스에 20마리 들어가는데 14킬로예요. 그거 날라야지, 음식 만들어야지. 물건이 일주일에 두세 번 들어오는데 그거 나르느라 골병이 들었어요.

“청소할 때 쓰는 세제가 굉장히 독해요. 가정용의 몇 십 배야. 상처에 묻으면 다 헐어버려요. 누구는 세제가 한방울 눈에 튀었는데 금방 실핏줄이 다 터지더라고요.
“립스틱은 무조건 새빨간 색이어야 했어요. 방학점 같은 경우엔 아예 출근할 때 입구에서 검사하고 발라 줬대요.

“계산원들이 8∼9시간 서서 일하면서 화장실도 못 가고 방광염에 걸렸다잖아요. 나가면 바로 고객 화장실이 있는데 그걸 못쓰게 했어요. 직원 통로로 화장실 가야되는데 눈치 보이니까 두세 번 갈 걸 한 번에 간단 말이예요.

“우린 그렇게까지 일했어요. 내가 짤리면 자식이 학원 한 군데를 못 다니니까 회사의 횡포를 다 참았던 거죠.”

여성 가장

그렇게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자식들 챙기랴 집안일 하랴 쉴 틈이 없었다.

“밤에 가면 집안일이 많이 쌓여 있는데 내 새끼는 힘들게 안 하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거든요. 또 애들 오면 밥이라도 한 숟갈 먹이고 재우려다 보니까 밤 12시 전에 잔 적이 없어요. 6시면 일어나서 큰애 아침 챙겨 줘야 하고…

“오늘은 애 도시락 싸고 바쁘다 보니까 빨래도 못 널고 왔네요. 꼬맹이 교복 블라우스는 급한 건데. 집안일이 밖에서 하는 것보다 더 바빠요.”

그나마 자신은 아이들이 커서 나은 편이지만 여성 가장인데다 아이가 어린 조합원도 많다고 했다.

“IMF 터지고 여자들도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돈 벌러 많이 나왔잖아요. 나도 실질적인 가장이예요. 나한테 식구들 생계가 달렸으니까. 내가 80만 원 받던 거 2백만 원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만 하게 해달라는 건데 왜 안 되냐고요.

“우리 엄마들이 전에는 비정규직법 그런 거 몰랐어요. 5월부터 4백 명을 서서히 짤랐는데 지금은 전체 해고자가 1천 명이 됐어요.

“해고도 다 문자로 해요. 출근해서 락카실에서 옷 갈아입는데 문자 받은 사람도 있어요. 기가 막히죠. 뉴코아 국정감사한 걸 보면 아무 내용도 없는 계약서에 도장만 찍혀 있는 게 있어요. 그게 ‘0개월 계약서’인데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내 계약서도 나 쉬는 날 과장이 썼어요. 이건 실명제고 자필인데 왜 마음대로 하냐 이거예요.”
승선화 씨는 자신은 아직 해고당하지 않았지만 2년 안에는 계약 해지 당할 것이라며, 지금 대학 졸업반인 딸도 정규직이 되리란 보장이 있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비정규직 법을 꼭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몇 달째 벌이가 없어 집회 나갈 차비조차 궁하지만 승선화 씨가 투지를 잃지 않는 이유다.

요즘 많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이 약속한 생계비를 기다리며 애태우고 있다. 승선화 씨는 주말에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근근히 버티고 있다. 거칠어진 손은 접시 수천 장을 설거지하다 다친 탓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고된 투쟁이지만 승선화 씨는 연대하는 사람들 덕분에 힘을 낸다고 했다. “모여야 힘이 되는지 몰랐죠. 지금은 그 힘이 참 크구나 느껴요. 승리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정말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도 코스콤 같은 데서 와달라 하면 달려가요. 연대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굉장하니까요.”

이랜드·뉴코아 여성 노동자들이 보여 준 놀라운 투지는 여성이 수동적이고 나약하다는 편견을 무너뜨렸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에서 싹튼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단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뛰어넘는 연대는 비정규직 투쟁의 희망이자 이중의 굴레 속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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