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범죄에 맞선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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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범죄에 맞선 저항
양인애
지난 6월 13일 육중한 미군 장갑차가 15세 소녀들의 몸을 무참하게 짓이겨 놓았다.
사고 직후 미군은 유족들에게 장례를 3일장으로 치루면 유족, 사회단체, 언론이 참석하는 합동면담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장례를 치루고 나자 미군측은 “통역이 잘못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들어 면담을 취소했다.
6월 28일 미2사단 공보실장 브라이언 메이커 소령은 태연하게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합동조사를 진행했고 … 미군측의 과실 책임은 없었다.” 그러나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김종일 집행위원장은 “의정부 경찰서와 25사단을 통해 확인해 보니 미군이 [조사를] 주도해서 한국 경찰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반박했다.
유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미군에 격렬하게 항의하자 7월 4일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육군이 이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실토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전날 미군은 한국이 간섭할 수 없도록 관련 미군 두 명을 미 군사법원에 과실치사죄로 기소해 미리 손을 써 놓았다.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비굴하기 짝이 없다. 법무부는 대중적 분노에 떠밀려서야 미군측에 재판권을 포기할 것을 요청했다.
미2사단은 검찰 조사에 협조할테니 재판권 포기 요청을 유보하라고 한국 법무부에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조사받기로 약속한 7월 8일, 미군은 의정부지청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군들은 이틀 후 기습적으로 출두해서는 ‘신변 위협’과 ‘초상권 침해’를 들먹이며 제대로 조사도 받지 않고 한 시간만에 유유히 빠져 나갔다.
이런데도 검찰은 되레 그 책임을 언론 탓으로 돌렸다. 또 기자들의 공식 브리핑 요구마저 거절하고 미군들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는 “조사받고 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되레 검찰은 이 사건에 항의하는 집회 도중 미군기지 철조망을 절단(군사시설보호법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원대 학생 이성철 씨를 구속했다. 또 미군에게 폭행당한 〈민중의 소리〉 기자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구속영장은 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사고 발생 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이 대책위를 중심으로 급속히 조직되었다. 지금까지 미2사단 앞에서 네 번 범국민대회가 열렸고, 의정부역 광장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7월 10일 현재 투쟁 기금이 1천 7백만 원 가까이 모금됐고, 서명 운동에 7만 명이 넘게 참가했다. 그 결과 미군이 이 나라에서 온갖 더러운 범죄를 저질러온 이래 처음으로 한국 법무부가 미군측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것이다.
2000년 일본에서도 미군이 중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전 국민적인 투쟁이 일어났다. 결국 클린턴은 공식 사과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매향리 주민들과 시민들의 끈질긴 투쟁 끝에 육상 사격장을 폐쇄하고 손해배상소송에서 승리하는 큰 성과가 있었다.
지난 7월 14일 미군 규탄집회에는 4천여 명이 참여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 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미군 범죄자를 한국 법정에 세우고 주한미군과 부시의 공개 사과를 받아내려면 더 광범한 투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