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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 정부와 기업주들이 책임져야 한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 직후 가파르게 치솟은 석유 가격이 배럴당 1백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언론들이 ‘3차 오일쇼크’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버냉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그런 불안감을 가라앉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소비자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중국은 이달 1일부터 석유 가격을 10퍼센트나 올렸고 인도, 말레이시아 등도 유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는데, 이런 나라들은 유가 인상이 버마 민중항쟁처럼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킬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난방용 경유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85퍼센트나 올랐고 휘발유·경유·등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난방용 등유 등에 대한 유류세 부분 인하 대책을 내놓았지만 늘어난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정부가 올해 초에 추진하려다가 “별 효과 없다”며 스스로 폐기한 것이었다.

게다가 지난 1997년 정부가 유가 통제를 석유 기업들에 내맡긴 뒤 이런 소폭의 세금 인하는 실제 소비자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보다 석유 업체들의 “유통마진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듯하다.

최근 석유 가격이 급등한 원인은 무엇보다 석유 수급에 대한 불안감과 달러 하락으로 인한 자본 이동 때문이다. 주요 언론과 경제 신문들이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거나 회피하는 것과 달리 그 대부분의 책임은 부시 정부에 있다.

미국은 한편에선 석유 패권을 위한 중동 전쟁으로 석유 수급 불안을 키웠고 다른 한편에선 미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느라 달러 약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감세 혜택으로 생겨난 재정 적자분을 메우려고 통화량을 늘려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결국 달러화에 연동된 부문에서 가격이 치솟고 있는 원유로 투자 자금이 대거 이동했다. 지난 10월 16일 대형 투기자금의 원유 선물 순매수계약은 일주일만에 27퍼센트나 증가했다(〈한겨레21〉 683호). 그리고 이는 다시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석유 수입국들의 석유 비축량 증가와 중국·인도의 석유 소비 급증도 한몫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과 인도의 석유 소비 증가는 전체 소비 증가의 60퍼센트 가까이 차지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석유 소비량도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미국이 유가 인상에 끼친 영향과 그 사용량(미국은 세계 석유의 4분의 1을 사용하는 최대 석유 소비국)에 비하면 이것은 부차적이다.

기록적 수익 행진

〈워싱턴포스트〉는 재주는 미국이 부리고 떡고물은 중동 산유국들과 러시아가 챙기고 있다며 배 아파 했지만, 미국과 주요 선진국의 석유 메이저들도 “기록적 수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엑손모빌, 로얄더치 셸은 2006년 2·4분기에도 전 해에 비해 36퍼센트 이상 수익이 급증했고 코노코필립스, BP 등도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한국 정유사들도 유가 인상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게다가 국내 석유 독점기업 4사(SK,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담합으로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국제유가인상폭보다 높게 올려 폭리를 취해 왔다.

그 결과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유 가격은 79.9퍼센트나 올랐고 가스 가격도 64.3퍼센트나 올랐다. 이는 각각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의 6.3배, 5.1배나 된다. 원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이윤 증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지난 2004년에 발표된 이들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132.5퍼센트나 증가했다.

반면, 고유가로 인한 노동자·서민 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백 리터 정도 되는 보일러 기름통을 채우는 비용이 15만 원에서 20만 원 이상으로 올랐다. 석유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고치는 집이 늘고 있고 연탄 값조차 지난해에 비해 12퍼센트나 올라 심지어 농촌에선 산에서 나무를 해 와 불을 때기도 한다.

비닐하우스 난방비, 농기계 연료비, 비료 값이 올라 김장철 배추 값 등 채소 값이 크게 올랐고 세계 곡물 가격 폭등과 유가 인상이 결합돼 전체 식품 가격도 올랐다.

승용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가정이 늘어 아파트 주차장마다 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고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해도 기름 값도 감당 못할 지경이다.

이런 식이라면 언제부터인가 늘기 시작한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 들의 겨울철 동사 소식이 올해에도 이어질 게 뻔하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는 기업들의 법인세를 낮춰 주는 바람에 생겨난 재정 적자분을 노동자·서민 들이 낸 유류세 등 간접세로 메워 왔다. 지난 5년 동안 유가 폭등과 더불어 어
마어마하게 늘어난 유류세 덕분에 매년 2조 7천억 원의 초과 세입이 생겼다.

원유 값 인상에 정유사들의 폭리와 60퍼센트나 되는 유류세까지 그야말로 노동자·서민의 ‘고혈을 짜내’ 석유 기업들의 배만 불려온 것이다.

그런데도 재정경제부 장관 권오규는 “가계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유류세 일괄 인하에 반대했다. 또 정유사의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지적에 대해 “시장경제에서 원가공개를 강제적으로 할 수 없다” 하고 정유사들을 비호했다.

유류세

따라서 유류세 인하는 유가 인상으로 인한 서민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취해야 할 조처 중 하나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유류세 인하가 석유 사용을 늘리고 기후 변화 등 환경 파괴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해 유류세 인하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선 전체 석유 제품의 51퍼센트가 산업 활동에서 소비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석유 제품은 상업 부문을 더해도 전체의 10퍼센트 남짓할 뿐이다. 교통·수송 부문에서 30퍼센트 가까운 석유 제품이 소비되지만 이 중 3분의 1 정도만이 승용차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역시 산업 활동과 연관된 수송에 사용된다.

따라서 산업 부문의 사용량을 줄이지 못한 채 일반 소비자들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으로는 환경 개선 효과를 거의 볼 수 없다.

또, 산업 부문의 사용량은 유류세 같은 간접세나 유가 자체의 등락보다는 경제 여건에 좌우된다. 그래서 2000~2005년 사이 유가가 크게 올라 가정·상업 부문의 사용량은 줄었는데도 산업 부문의 소비량은 늘었고 그 결과 국내 전체 석유 소비량도 꾸준히 늘었다(에너지경제연구원). 게다가 현행 유류세는 산업용 석유 제품이 가정용에 비해 대체로 낮다.

사실 유류세같은 간접세를 올려 석유 사용을 줄이겠다는 것은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의 책임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유가 인상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지,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지를 잘 살펴보면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킴으로써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대중 스스로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도록 나서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서민에게 부과하는 유류세를 인하하는 대신 석유·자동차 기업들에 환경세 등 직접세를 부과하고 석유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감세 혜택을 폐지해야 한다.

저소득층 가정에 난방비를 지급하고 부자들에게 고율의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

또 대중교통 체계를 강화하고 도로 수송 체계를 철도로 전환해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를 과감히 도입하고 개발해야 한다. 노동자·서민 들의 주택 단열 사정을 개선하고 새로 짓는 건물들의 단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유가 폭등의 주요 원인인 미국의 중동 전쟁과 점령을 중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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