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노동자 연대〉 구독
영화평 -
미래 세계의 범죄 예방
정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블록버스터
톰 크루즈는 서기 2054년 워싱턴 D.C의 형사 존 앤더튼을 연기한다. 앤더튼은 특수경찰반 프리크라임
앤더튼 자신이 ‘살인 예정범’으로 지목될 때까지 이런 문제는 무시된다. 영화는 이제 무고한 한 남자가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고전적인 헐리우드 내용으로 흐른다.
영화 내내 우리는 미래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 도심 곳곳의 광고판들은 행인들의 망막을 스캔해 개인 정보를 파악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맞춤 광고로 유혹한다. 여기저기서 끝없이 망막이 스캔된다. 그래서 수배자는 불법으로 타인의 눈을 이식해야 체포를 면할 수 있다.
경찰들은 앤더튼을 잡기 위해 빈민가를 뒤진다. 빈민가는 앤더튼이 살며 일하는 첨단의 도심과 대조된다. 그 곳에는 첨단 테크놀로지가 없다. 경찰들은 미래의 경찰 거미로봇들을 풀어놓는다. 이 로봇들은 건물 안 곳곳을 기어 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내고 망막을 스캔해 신분을 확인한다.
이 모든 것들은 미래 세계의 범죄 예방 시스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법무부와 FBI는 테러를 저지를 것 같은 사람들을 감금하고 있다. 다른 점은 지금 FBI에게는 세 명의 예지자들이 없다는 점이다. FBI는 피부색과 출신 국가를 보고 미래의 테러범들을 지목한다.
스필버그는 부시의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리고 허점 투성이의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중반부까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유지한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경찰들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가두는 장면들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떠오르게 한다. 생각이나 무의식까지 범죄가 되는 사법 제도는 두개골 넓이만큼의 자유도 용납하지 않는 셈이다. 그래서 영화 속 2054년 미국의 프리크라임과 현실의 2002년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기막히게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