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아수라장 속에서 진보의 몫을 확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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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일 정도 남은 대선 정국은 갈수록 혼탁한 아수라장이 되고 있다. 부패와 비리로 우열을 다투는 이건희와 이명박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온 나라를 역겨운 악취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인간 쓰레기’들이 날뛰는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개혁과 진보에 대한 대중의 기대 속에 집권했지만 5년 후에 남은 것은 쓰라린 배신감뿐이다. 노무현은 전쟁광 조지 부시와 부패 재벌 이건희의 기대만 충족시켜 왔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은 우리에게 “되찾은 10년”이 아니라 ‘배신의 10년’이었다. 저들은 친미독재적 우파한테서 권력을 되찾아 준 대중의 개혁과 진보 염원을 배신하고,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우파에게는 “[권력을 부분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긴 했지만, 우파들의 기득권과 낡은 가치들은 분실되지 않았다. ‘한미FTA 대연정’, ‘파병 연장 대연정’, ‘이건희 구하기 대연정’에서 보듯 노무현은 핵심 문제에서 우파의 뜻을 대변했다. 지난 10년 동안 정말 잃어버린 것은 민주 개혁과 사회 진보의 가치였다.
배신과 실패로 중도개혁 정부의 지지 기반은 붕괴해 버렸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됐다. 양극화의 오른쪽 수혜자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이다. 2002년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30퍼센트가 지금은 이명박을 지지한다. 이 ‘산토끼’들의 지지로 이명박은 50퍼센트가 넘는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명박은 이런 ‘산토끼’들을 의식해 우파적 본색 드러내기를 꺼린다.
사람들은 범여권에 대한 사무치는 증오 때문에 ‘비리 자판기’ 이명박의 악취를 참아 왔다. 그래도 비리로 인한 이명박 ‘유고’ 가능성은 계속 제기됐다. 이 틈을 파고든 게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이명박의 우파적 선명성 부족도 비판해 우파 ‘집토끼’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 이명박과 이회창이 지지율 1·2위를 다투며 지지율 합계 60퍼센트에 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극우익 조갑제는 이것을 ‘보수의 확장’이라고 반기며 “이회창 때문에 발뻗고 잔다”고 좋아했다.
아수라장
그러나 우파의 꿈은 깨지고 있다.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조금씩 금이 가던 유리창 같은 이명박 지지 위로 BBK라는 돌덩이가 날아 왔다. ‘비호감’인 이명박보다 ‘국제사기꾼’ 김경준이 더 신뢰가 간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이명박에게서 달아나는 ‘산토끼’들이 이회창에게 갈 리는 없다. 결국 ‘산토끼’들은 빠져 나가고 전통적 우파 지지자마저 이명박과 이회창으로 분열하면 우파의 권력 탈환의 꿈은 깨질 수 있다.
그래서 “뒈지게 맞아야 한다”는 우파들의 분노가 이제 이명박을 향하기 시작했다. 조갑제는 “이명박 후보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외통수 게임을 하고 있다”고 타박했다. 전 자민련 의원 이동복은 “이번에 실패한다면 이 후보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라며 “대선 후보를 박근혜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층을 동반자살로 몰고”(전 외무 대사 이장춘) 가는 책임을 이명박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 온갖 불법 행위와 비리로 권력과 부를 쌓아 온 이명박은 한국 우파의 표준일 뿐이다. 불법과 비리는 마치 DNA처럼 박혀 있는 우파의 본령이다.
이명박과 이회창이 끝까지 아귀다툼을 할지, 누구로든 막판에 단일화할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우파의 위기가 정동영과 범여권의 기회가 되고 있진 않다. 정치적 양극화 속에 중도개혁 세력의 다계급적 지지 기반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했기 때문이다. ‘도로열우당’ 재결집은 지지자들을 불러모으지 못했다. “전환의 파장을 일으킬 출구”(‘안희정 리포트’)라던 남북정상회담 효과도 반짝이었을 뿐이다.
정동영의 ‘좌회전’도 효과가 없었다. 개혁 염원 대중을 겨냥한 개혁적 ‘말’과 자본가적 계급 기반에서 비롯하는 보수적 ‘행동’의 차이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에게서 빠져 나온 ‘산토끼’들은 범여권으로 돌아가기보다 부동층이 되고 있다.
좌회전
범여권에 실망해 왼쪽으로 이탈한 대중을 차지하려던 문국현의 시도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여권의 해체가 가져온 아웃사이더[인 문국현] … 의 정당은 ‘누구를 대표하는가?’에 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창조한국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김영춘의 궤적 ― 386운동권에서 한나라당과 열우당을 거쳐 온 ― 도 이런 의구심을 불러온다.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은 노무현 정권의 해체된 지지 기반 중 일부 개혁적 자본가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비판하며 “중소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세우는 것이다. KT 사장 출신인 이용경이 공동대표인 창조한국당이 한미FTA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 공천권 등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정동영과 문국현, 이인제 등이 단일화를 이룰지도, 그 단일화가 범여권의 지지 기반을 복원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지도 불분명하다.
지난 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발표한 ‘유권자 성향 분석 결과’를 보면 차기 정부가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답은 17.3퍼센트뿐인 반면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답은 39.8퍼센트였다. 그래서 여의도연구소는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정치 양극화와 열우당 붕괴에서 비롯한 거대한 정치적 공백이 정치적 역동성을 만들어 냈다. 붕괴한 열우당에서 왼쪽으로 이탈한 개혁 염원 대중은 지금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
범여권도 우파도 이들에게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이들이 통일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국 이번 대선 결과는 BBK의 파괴력, 삼성 비자금 사태의 파장, 우파·범여권 진영 각각의 아귀다툼의 향배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 될 것이다.
뒤끝
이번 대선의 결과가 어떻든 “뒤끝이 좋을 리 없다.”(〈조선일보〉) 노무현도 최근 “중간에 안 쫓겨 나오고 무사히 마치고 나오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든 임기를 채우기 힘들지도 모른다. 누구든 개혁과 진보 염원 대중의 기대를 배반해 반발에 직면하며 권력 기반이 흔들릴 것이다. 덧붙여 우파는 비리 의혹 때문에, 범여권은 우파의 반동 시도 때문에 시달릴 것이다.
지난 10년은 개혁사기꾼들과 부패한 우파의 공모 속에 민주 개혁과 사회 진보의 가치를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우파와 범여권 중 누가 권력을 잡든 신자유주의와 친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며 이런 진보의 가치를 더욱 짓밟을 게 뻔하다. 당장 대선 직후 한미FTA와 파병 재연장 통과에서 이들은 협력할 것이다.
민주 개혁과 사회 진보의 가치를 일관되게 대변해 온 것은 바로 조직 노동자들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다.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도 인정했듯이 “민노당은 유일하게 삼성 재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는 제도권 정치세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 개혁과 사회 진보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압력에도 휘둘리지 말고 권영길 후보 지지를 통해 자신들의 염원을 표출해야 한다.
지금 이건희의 범죄에 분노하는 여론, 한미FTA를 반대하는 여론, 비정규직 차별에 반대하는 여론, 파병 재연장에 반대하는 여론은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권영길 후보는 계속해서 더 폭넓게 이런 여론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며 대선에서 도약을 시도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은 이런 광범한 여론을 대변하는 행동을 건설하며 새 정권 하에서 더 강력한 반전·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