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한국의 건강불평등》(이창곤, 밈):
생존조차 불평등한 사회의 끔찍한 진실을 고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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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병 수발할 시간에 돈 빌리러 다녀야 했어요. 전세도 빼고 생활비도 줄여가면서 치료비 댔는데…. 좀더 좋은 약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 가난이 죄라면 죄겠지요.”
백혈병 걸린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낸 한 여성의 사연이다. 그녀는 치료비 때문에 아파트를 잃고 단칸방에서 아들과 살고 있다.
‘매일 적당히 운동하자!’, ‘음식을 잘 먹자!’, ‘흡연과 음주를 삼가자!’ 등 스스로 노력만 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얘기들을 우리는 자주 접한다. 그러나 앞의 사연처럼 우리 사회에서 삶과 죽음은 경제적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이런 한국 사회의 건강불평등을 구체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강북구에 사는 사람은 강남구에 사는 사람보다 사고나 질병으로 숨질 확률이 30퍼센트나 높다. 서울 강남구는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가 46명인데 반해 부산 강서구는 단 2.8명에 불과하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암과 관련한 통계에는 계급 불평등의 비극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소득 수준을 6계층으로 구분할 때, 가장 낮은 소득 계층의 암 발생 위험은 가장 높은 소득 계층에 비해 남자 1.65배, 여자 1.43배 높다. 사망률도 차이가 나는데, 다섯 번째 계층이 암에 걸렸을 때 사망할 확률은 첫 번째 계층보다 갑절 이상 높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검진 비율이 부자들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의료 이용량의 격차는 지난 8년 동안 무려 4배나 더 벌어졌다.
또한, 8백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건강 불평등의 슬픈 주인공이 돼 버렸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58.7퍼센트가 만성 질환을 앓고 있고, 산재사망률은 1만 명당 3.09명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10배에 이른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끔찍한 노동강도 속에서 장시간 안전장치조차 없이 일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24퍼센트가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한다.
예컨대 여수 건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을 포함해 4대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더구나 이들은 작업할 때 변변한 분진마스크조차 지급 받지 못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2명이나 4명씩 짝을 지어 80킬로그램의 나무 침목, 2백40킬로그램의 콘크리트 침목을 옮기는 일을 주야 맞교대로 한다. 특히 작업장 소음 때문에 기차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열차에 치이는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살인적인 노동을 하고 철도 노동자들이 받는 돈은 위험수당 30만 원을 포함해 1백10만 원에 불과하다. 겨울철 일이 없을 때는 그조차도 받지 못하고 “잠시 쉬라”는 통보와 함께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처럼 생생하게 폭로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 악법 폐지를 주장한다. 또 이 책은 건강불평등을 강화하는 핵심요소가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하고, 의료 공공성 확대가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언제나 이 사회가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 사회가 인간의 생존처럼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불평등하다는 끔찍한 진실을 들춰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