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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한 권력자 집단은 친미적일까?

왜 남한 권력자 집단은 친미적일까?

강철구

이명박 서울시장은 6·13 지방선거 직전에 미국 대사관이 옛 덕수궁 터에 추진중인 직원 아파트 건립 사업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선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며 관련법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말을 바꿨다. 이명박뿐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도 미국을 ‘맏형’ 모시듯 깍듯하게 대하며 미국 지배자들의 말에 순종한다. 남한 검찰은 두 여중생을 죽인 살인 미군들을 옹호하고, 남한 경찰은 반미 시위를 탄압한다. 남한 권력자 집단은 왜 이토록 친미적일까? 친미주의의 기원

남한 지배자들의 친미주의는 남한 자본주의가 성장해 온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남한 권력자들은 애초에 국내외의 도전을 물리치고 자기 힘으로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었다. 36년 동안의 일본 지배가 끝나고 ‘해방 정국’이 도래하자 그 동안 극심한 착취와 억압을 받은 노동자·농민 들의 투쟁이 역사의 무대에 전면 등장했다. 좌파들의 영향력도 급속히 커졌다.

한편,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세력 확대를 위한 전장으로 변해 갔다. 남한 권력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는 친미파로 발빠르게 변신했다. 미군정은 남한 내에서 급속히 성장하던 좌파들을 제거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다. 미국은 남한이 “공산화”해 그 영향력이 일본으로 번질까 봐 두려워했다. 미국은 남한을 극동의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소련에 대항하는 전초 기지로 만들려고 했다. 미군정의 점령 정책은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친미 반공 세력이 정부를 수립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미군이 기층에서 자라나던 해방의 씨앗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권력 기반이 취약한 이승만 정부를 세운 것은 이런 전략적 고려 때문이었다. 냉전이 시작되고 남한과 북한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면서 남한 지배자들은 미국에 더욱 의존했고 미국은 부패한 정권을 계속 후원했다. 남한 지배자들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필요성을 뼈속 깊이 절감했다. 이승만은 “미군 없이는 군사적 안보를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군작전지휘권을 미군에 넘기고 한미안보조약을 서둘러 체결했다.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박정희도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야심찬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1953년 휴전 이후 1960년까지 남한은 총군사비의 80퍼센트를 미국에 의존했다. 박정희가 독자적인 자본 축적을 시작한 1961년에서 1968년 사이에 미국은 총군사비의 60퍼센트를 지원했다. 미국은 1978년까지 군사 원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남한보다 앞섰다. 미국이 남한의 안보를 담당한 덕택에 박정희는 자원을 공업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한 지배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의존했는지는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1970년에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사단을 감축한다고 통보했을 때 남한 지배자들은 펄펄 뛰었다. 박정희는 당시 주한 미대사 포터에게 “미군을 데리고 나갈 수 없다”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당시 총리 정일권은 “미군이 감축될 경우 내각이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미군 철수 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야당은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할 경우 베트남에 파견한 한국군을 불러들이고 거리에서 미군 철수 반대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남한 자본주의를 육성하기 위해 군사적 지원뿐 아니라 초기에는 자본과 기술 등 경제 원조도 제공했다. 그리고 줄곧 미국은 남한 상품을 소비하는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 박정희는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남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반미와 계급 투쟁

남한 지배자들의 친미주의는 냉전이 끝나고 남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계속됐다. 1989년 6월 미국 상원의원 6명이 1992년까지 주한미군 1만 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 남한 지배자들은 또다시 “미군 철수 불가”를 외쳤다. 노태우는 1989년 6·29 기자 회견에서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것인만큼 [주한미군의] 감축을 반대한다.” 하고 밝혔다. 김대중도 친미주의자이기는 마찬가지다. 김대중은 “친미가 국익”이라고 강조한다. 김대중이 미국 지배자들의 말에 고분고분하면서 반미 투쟁을 억압하는 것은 단지 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친미 행위는 정치인, 국가 관료, 기업주, 언론사 사주 등 기성 권력자 집단 전체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남한 권력자 집단은 미국의 지원 덕택에 지금 같은 권력과 영향력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게 아니다. 남한 자본가들도 그 과정에서 혜택을 얻는다.

또, 남한 지배자들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불안정한 한반도에서 한-미-일 공조를 튼튼히 해야 자신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들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다. 최근 중국·러시아와 북한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지배자들이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대중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미국 국가)은 남한 피억압 민중에게는 적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1980년 광주 민중 항쟁을 유혈낭자하게 짓밟은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등 역대 독재 정권들을 후원해 왔다. 그들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제3세계 정부가 복지비에 사용할 수도 있는 막대한 돈을 미국 무기 구입에 사용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2000년에 주한미군 지원비가 3조 6천억 원이나 됐다. 이렇듯 같은 남한인이라도 미국 국가에 대한 이해관계는 계급에 따라 다르다. 김대중과 민주당이 자신들의 계급 기반을 떠나 미국에 반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친미인 남한 정부와 싸우지 않고서는 미국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다. 반미 투쟁은 지배 계급의 일부를 포함하는 “민족대단결”이 아니라 미국과 남한 지배 계급 모두에 맞서는 계급 투쟁의 방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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