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 시도의 핵심 이유는 외부 연계 대상이 북한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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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비대위가 내놓은 최기영·이정훈 당원 제명 안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심 비대위는 두 당원의 출당 건이 국가보안법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아니라 당원 정보 유출이라는 해당 행위에 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처음에 ‘혁신안’의 해당 안건 제목은 “편향적 친북 행위 관련”이었다. 국가보안법에 따른 공안당국의 기소장이 당의 동료를 겨누는 우리 내부의 기소장이 된 것이다.
‘일심회’ 사건은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노무현 정부가 국내에서 희생양을 찾고, 평택미군기지 반대 운동이나 막 꿈틀대던 한미FTA 반대 운동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확대·과장 발표한 공안 사건이었다.
그래서 공안 검찰은 기소장에서 한미FTA 반대 운동,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 2002년 여중생 사망 항의 시위 등을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고 호들갑 떨었다.
그러나 ‘최대 간첩조직 사건’이라던 일심회는 보수적인 법원 판결에서조차 그 조직적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기영 당원은 공안 검찰의 조사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며 공안 당국에 저항했다.
또 이정훈 당원의 경우 기밀 유출이나 간첩 혐의가 없다고 판결이 났다. 즉, 이정훈 당원은 해당 행위라 할 만한 근거도 없다. 더구나 혁신안 안건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진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종권 비대위 집행위원장은 사후에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결론을 내놓고 진상조사를 한다니? 인신이 구속돼 소명 기회도 없는 당원들을 어찌 조사할 것이며, 제명해 놓고 진상을 조사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물론, 만에 하나 두 당원 중 누군가 당원 정보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것이 (북한이든 아니든) 외부로 유출됐다면 해당 당원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징계의 대상이 될 순 없다.
건전 진보?
비대위가 문제 삼는 당원 정보 정리 문서의 신상 정보라는 것도 통상적인 당원 수첩 정도의 정보이다.
우리는 당직·공직 선거만 되면 전국의 지역위에서 수천 명의 후보들이 자신의 신상 명세를 공개한다. 많은 당원들이 후보들의 정보를 뒤지며 선택을 고민한다. 후보들 역시 유권자인 당원들을 분석하며 표계산을 하고 선거 계획을 짠다. 이런 행위들이 인권침해인가.
당의 주요 활동가들에 대해 평가한 내용이 문서 내용에 있다는 말도 돌던데,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해당 당원은 몹시 불쾌하겠지만) 그것이 작성자 개인의 주관적 판단과 평가를 정리한 것이라면 그것은 당원 정보 유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아닌가.
따라서, 지금 심상정 비대위가 문제 삼고 있는 두 당원의 행적은 ‘당원 정보 유출’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북한 정권’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한 진보운동의 적인 〈조선일보〉 기자와 만나 당내 세력 동향 등을 인터뷰한 당원들이나 〈조선일보〉 사이트에 블로그를 만들어 당내 활동가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를 꼬박꼬박 올렸던 당원에 대한 징계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 특정 당내 의견그룹이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당의 주요 인사들 경력과 행적, 성향 등을 정리한 문서를 수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게재한 사실은 그동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기영·이정훈 두 당원의 제명 조치는 국가보안법을 용인하고 인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외부의 연계 대상이 ‘북한 정권’이라는 게 제명 시도의 핵심 이유이고, 그 북한 정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이기 때문이다.
두 당원의 제명은 ‘실정법(국가보안법)’과 ‘국민 정서(레드콤플렉스)’에 어긋나는 ‘일탈’을 교정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한국 사회의 주류 질서에 순응하는 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들과 한나라당이 쌍수를 들어 이 혁신안을 ‘건전 진보’로 가는 길이라고 환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노동당이 국가보안법이 요구하는 사상 검열, 이 나라의 주류가 요구하는 사상 검열에 스스로 적응할 것이냐 말 것이냐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최기영·이정훈 당원의 제명 안건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두 당원의 사상을 지지하냐 마냐의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미FTA범국본은 사상 최대 단체들의 연합이다. 그래서 그 운동은 힘을 받았다. 공안 당국이 이중 일부를 북한과 연계됐다고 발표하면 그 사람들을 운동에서 내쫓아야 하는가. 주체사상에 우호적인 활동가는 뉴코아·이랜드 연대 투쟁에 참여하면 안 되는가.
당원 가입 때 사상 검증해서 받아야 하는가. 지금 등록된 당원들은 사상 검증해서 당원 명부를 재정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상 전향을 요구하자는 것인가.
그가 보호받을 남한 진보운동의 동료인지는 그가 남한 진보운동에서 한 역할로 평가해야지 그가 지향하는 사회가 자기 기준에 맞느냐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주체사상파를 포함한 남한의 진보운동은 서로를 동지로 인정하고, 87년 민주항쟁을 함께 건설했고, 민주노총을 함께 만들었고, FTA 반대 운동 등에서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최기영·이정훈 당원은 그들의 사상이 설사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사상이라 할지라도 북한에서 어느날 밤에 파견된 스파이가 아니라 남한 진보운동 속에서 자신의 정치 사상을 발전시켜 온 우리 운동의 동료이다.
따라서 정치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들의 사상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 없이 이들을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
드레퓌스
서구의 많은 진보정당들이나 좌파들이 이른바 ‘소련의 간첩’이라는 우익 공세에 타협하거나 영합했다가 스스로 위축되고 말았던 사례가 있다. 그 중 많은 사건이 사후에 조작으로 발표되기도 했다.(예컨대, 미국의 로젠버그 부부 사건)
반면에 군국주의자들에게 ‘독일의 스파이’로 몰려 처형 직전까지 갔던 드레퓌스 대위를 ‘스파이를 비호한다’는 비난 속에서도 방어하며 대중적 항의를 불러 일으키고 결국 프랑스 정치를 전진시켰던 에밀 졸라의 위대한 지성도 있었다.
사실 남한에서 북한 정권처럼 인기없는 가난한 제3세계 독재정권이 대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쉽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비난만으로는 뉴라이트·〈조선일보〉와 진보운동의 차이를 밝힐 수 없다.
오히려 일차적인 구분선은 이 나라의 친제국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정부와 기업권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돼야 한다. 야만의 악법 국가보안법에 얼마나 일관되게 반대하며 그 희생자들을 옹호하느냐로 판별해야 한다.
당사자들의 해명을 믿지 않고 공안 당국의 기소장과 판결을 우선시하는 행태, 그들의 정치사상적 권리에 따른 행동에 대해 우익과 다를 바 없는 주홍글씨 낙인찍기를 하는 행태, 그도 모자라 이제 당에서 쫓아내 사실상 인격 살인을 하자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며 민주적 권리를 위한 행동에 앞장서 온 진보운동의 대표체라는 당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당이 국가보안법 사건에 이렇게 대처한다면 앞으로 공안 당국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우리 진보 진영 내에서 또 다른 간첩 사건, 공안 사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때마다 당은 당원을 징계하고 제명해야 하나?
당이 정말 취해야 할 태도는 냉전 우익들의 ‘친북 트집잡기’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사상의 자유 보장하라’ 하고 맞받아치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의 원칙 문제이고, 당의 정체성과 관련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