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저항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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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역 문부식이 쓴 책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이 최근 출판됐다. 이 책은 나오기도 전에 〈조선일보〉가 격찬하며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문부식 씨의 이 책은 1980년대의 전투성을 한때 상징했던 옛 투사의 퇴락을 뚜렷이 보여 준다. 모호하고 에두르는 문체, 동어반복, 모순되는 말 투성이에도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분명하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저질러진 폭력의 책임이 국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가 “성찰”하는 “우리 안의 폭력”의 범위는 지나치게 광범하다. 그가 지칭하는 ‘폭력’에는 저항 운동이 때때로 사용한 폭력만이 아니라 군사 독재나 미 제국주의의 폭력에 적극 저항하지 않은 민중의 ‘침묵’도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 따라 그는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완전히 다시 쓴다. 1980년 광주 학살의 책임은 신군부와 그를 후원한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학살에 “침묵”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도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 독재가 저지른 온갖 야만적 만행도 그 정권을 지지한 “대다수” 민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한 마디로 묻는다. “우리는 폭력의 단순한 방관자인가 아니면 공모자인가.” 이것은 그가 편집자로 있는 《당대비평》이 몇 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온 내용이다. “우리 안의 폭력”이 국가 폭력을 지탱한다. 따라서 국가 폭력을 없애려면 먼저 “우리 안의 폭력”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종종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보수적 관념들에 의식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상당수 사람들이 《당대비평》이 주장해 온 ‘일상적 파시즘론’이 진보적인 사상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완전한 오해다. 일상적 파시즘론은 폭력의 근원을 개인(의 의식)에 돌리기 때문에 폭력의 근원을 감춘다. 이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우파 사상과 연결되기 쉽다. 문부식이 군사 독재와 제국주의라는 폭력이 대중의 지지 때문에 유지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라. 군사 독재와 제국주의의 철저한 지지자 〈조선일보〉가 사설과 칼럼을 통해 두 차례나 문부식의 “치열한 자기 성찰”을 칭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부식이 이 책에서 찾겠다는 ‘잃어버린 기억’은 저항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민중이 국가의 폭력에 “침묵”하고 “순응”해 왔는지 그 비열한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저항 운동은 언제나 지배자들과 다수 민중이 공모해 고립시켜 온 소수의 운동일 뿐이다.
이것이 엄청난 역사 왜곡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군사 독재에 맞서 1∼2백만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곤 한 그 날들에 대한 기억은 한낱 혁명가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신기루란 말인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는 남한 저항 운동의 역사, 특히 1980년 광주 항쟁 이후 등장한 급진적 저항 운동의 역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추상적 도덕주의
그는 역사를 새로 쓰면서 국가 폭력뿐 아니라 모든 폭력 ― 저항의 폭력도 ― 에 반대하는(비록 광주 항쟁의 무장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등 일관되지는 않지만) 비폭력 평화주의에 이끌리고 있다. 모든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는 그의 이상이 문제는 아니다.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한 열망은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공유하는 그런 이상이다. 그러나 그는 폭력의 근원을 개인의 의식이나 감정 따위 ― ”국가주의”, “근대화에 대한 열망” 등 ― 에서 찾기 때문에 그 근원 ― 계급 적대 ― 을 파헤치지 못한다.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계급들로 나뉜 사회에서 폭력 발생은 필연이다. 이해가 서로 충돌하는 계급들이 순전히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역사에는 늘 폭력 자제를 설교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나 어느 쪽이든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폭력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는 지배자들이 민중을 향해 엄청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폭력주의는 지배자들이 아니라 피억압자들을 옥죄는 구실을 하게 된다. 검찰·경찰·법원·군대 등 국가 기구가 제도화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 마당에, 추상적 도덕론은 지배자들의 위선에 동조하게 만든다.
아니나다를까 문부식은 책 곳곳에서 그 동안 우파들이 벌여 온 마녀사냥에 동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뿐 아니라 1989년 5·3 동의대 투쟁·1991년 5월 투쟁·1996년 연세대 투쟁의 도덕성을 비판했다. 그는 특히 동의대 투쟁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올해 초 민주화운동심의위가 동의대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결정이 경찰 유가족들을 “소외시켰다”며 비판했다. 그는 5·3 사건이 노태우가 공안 정국 조성을 위해 부풀린 대표적인 마녀사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경찰 편을 든다.(경찰의 진압은 통상적인 것이었는데 학생들이 “과잉 방어”했다며 말이다.)강도가 남의 집에 침입하려고 벽을 타다가 떨어져 죽었을 때(그의 죽음을 기뻐하든 슬퍼하든) 집 주인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이 고작 화염병 몇 개 ― 화재의 원인도 아닌 것으로 드러난 ― 던진 것으로 장기형을 살고 13년 동안 살인마로 몰려 온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문부식은 20년 전 자신의 실천에서 엉뚱한 교훈을 이끌어 낸다. 당시 미 문화원 방화로 의도치 않게 무고한 한 대학생이 죽게 됐을 때, 그가 반성해야 했을 것은 ‘생명 경시 풍조’― 우파들이 활동가들을 냉혈한으로 몰려고 쓰는 위선 ― 가 아니라 폭력을 어떻게 사용했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위대한 개인이 무지한 대중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폭력은 그 의도야 어찌 됐든 운동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없다. 혁명가들이 폭력 활동에 나섬으로써 혁명이 시작되는 게 아니다. 혁명은 계급 투쟁이 누적되고 계급 적대가 더할 나위 없이 첨예해져 결국 한계점을 넘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는 “혁명은 결코 폭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런 측면이라면 맞다. 그러나 그는 이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이 말을 쓴다. 그는 비폭력 평화주의를 말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 만약 기존 체제를 변혁하는 과정이 합법적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순전한 환상이다.
현재 그는 모든 국가에 반대하는 아나키즘경향을 띠고 있는데 아나키스트 정치가 흔히 그렇듯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치(국가 권력) 문제에 기권하고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예컨대 그는 친미도 반미도 똑같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현실의 세력 관계에 따라 좌쪽으로도 우쪽으로도 끌릴 수 있다. 역사에서 아나키스트들이 현실 정치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종종 개량주의에 타협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아나키스트 전국노동자연맹(CNT)이 민중전선 정부에 입각한 게 한 예다. 현재의 그는 좌와 우 사이에서 동요하는 가운데 오른쪽으로 좀더 기울고 있다.(다음 기사 ‘인민 전선이란 무엇인가’ 참조)문부식은 1990년대 이후 과거의 전투성을 버려 왔다. 이제 그가 투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는 더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탄압에 맞서는 반정부 활동가도 아니다. 그는 단지 개인 내면에 자리잡은 체제 정당화 이데올로기(“국가주의”, “친미주의” 등)의 흔적을 파헤치는 자유주의 지식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몰두하는 “국가주의” 극복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대중을 경멸하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대신 그는 어떤 “국가주의”에도 물들지 않은 “자율적 개인들의 연대”를 꿈꾼다. 이런 엘리트주의 때문에 그는 대중 운동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가 우익 신문 〈조선일보〉와 거리낌없이 인터뷰를 하며 우리 운동을 공격하는 것도 자신이 진보 진영에 져야 할 책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책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 모든 폭력은 정당한가? ― 에 대해 올바른 답을 내놓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폭력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추상적 도덕론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이익이라는 관점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모든 폭력이 정당한 것도 아니고, 모든 폭력이 다 부당한 것도 아니다. 폭력의 정당성은 폭력을 낳는 체제를 제거할 수 있는 노동계급 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추상적 도덕주의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피억압자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