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칼럼 - 메스를 들이대며:
이명박 시대,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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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대의 서막은 고소영 청와대와 강부자 내각이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희비극이었다.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되는 정부의 서막이 이럴진대 저들이 만들 세상은 도대체 어떨까?
인수위는 서민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었던 공공부문의 필수서비스들을 재벌과 다국적 기업에게 모두 팔아 넘기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명박 시대의 미래를 제시했다.
매각 리스트의 첫 줄에 올라있는 것은 가스공사, 한전, 항만공사, 공항공사(시장형 공기업), 그리고 철도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준시장형 공기업)이다. 물, 전기, 가스, 철도, 지하철을 이제 기업 이윤추구의 시장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뿐인가? 우체국도 매각 대상이고 KBS2와 MBC도 예외가 아니다. 채널 7번은 (주)조선-CNN 방송이, 11번은 (주)중앙-MSNBC 방송이 나온다는 얘기다.
기업에 내다팔려는 것이 공기업만은 아니다. 교육과 의료도 그렇다. 대학자율화와 입시자율화라고? 자율화되는 것은 등록금이고, 이미 빈사 상태에 있는 공교육의 관뚜껑에 대못을 박자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아예 건강보험까지 들어먹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 첫 시도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다.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증을 가진 환자를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는 제도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부유층 환자만 받아 비싼 의료비를 챙기려는 병원들이 건강보험환자를 거부할 수 있다. 아무 병원이나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우리 병원은 건강보험증을 안 받는데요’ 라는 면박을 들을 수 있다.
건강보험증이 안 통하는 병원의 진료비는 얼마나 될까? 연세대 외국인클리닉을 보면, 건강보험증이 없는 외국인들은 건강보험진료비의 4배를 낸다. 건강보험증이 통하는 병원과 약국에서는 병원 진료비의 30퍼센트와 약값의 30퍼센트를 본인부담금으로 내면 된다. 감기의 경우 대략 5천 원 안팎이다. 건강보험증이 안 통하는 병원은 여기에 13을 곱해야 한다(본인부담금×3.3×4). 감기 진료 한 번에 최소 7만 원 이상이 든다는 얘기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갈 병원이 없어지거나 진료비가 비싸지는 것이다. 건강보험 환자를 안 받는 병원은 자기 마음대로 병원비를 책정하게 된다. 자기 동네에 그런 고급 병원만 있다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진료비를 내야한다.
지금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의료비는 정부가 결정하는 가격으로 통일돼 있다. 그런데 병원자본이 마음대로 독점가격을 정할 수 있게 되면 의료비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료비가 올라가면 건강보험진료비도 덩달아 올라가게 된다.
의료비 폭등
더 큰 문제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민영 보험회사들이 공적 건강보험의 사회적 기반을 흔들게 돼 건강보험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민영 보험회사들에게 큰 이익이다. 고급 병원이 생기면 ‘고소영’과 ‘강부자’들은 귀족대우를 받는 이런 병원으로 몰릴 테고, 삼성생명이나 AIG 같은 민영 의료보험사들은 고급 병원에 다니는 부유층 고객이라는 안정적인 새로운 시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게 당연지정제 폐지는 시작일 뿐이다. 이명박의 보건의료 공약은 민영 보험 활성화다. 그는 “민영 보험을 미국 수준으로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려면 라틴아메리카나 미국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이나 의료보장체계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대폭 축소해야만 한다. 즉, ‘건강보험 의무 가입제’의 폐지다.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래서 최고 부유층들은 소득 비례에 따른 높은 보험료를 감수하고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또, 기업과 정부가 보험료의 50퍼센트를 부담하는 덕분에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이 내는 건강보험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건강보험 의무 가입제가 폐지되면 어떻게 될까? 고급 병원에 다니기 위해 값비싼 민영 보험에 가입한 최고 부유층은 그 즉시 공적 건강보험에서 탈퇴할 것이다. 최상층 5퍼센트가 탈퇴하면 소득 비례 보험료 제도 때문에 보험료 부담을 대신 떠안게 될 그 다음 계층이 건강보험에서 도미노 식으로 탈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구의 약 12퍼센트가 건강보험에서 탈퇴하면 건강보험 재정은 현재의 반으로 줄게 된다. 지금 재정으로도 치료비의 약 60퍼센트만을 부담하고 있는데, 건강보험 재정이 반쪽이 돼 치료비의 30퍼센트만 부담할 수 있게 된다면 건강보험은 사실상 붕괴다. 이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칠레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지금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너무 낮아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민영 의료보험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해 있다. 한국의 민영 의료보험료 규모는 유럽의 4배로, GDP의 1.2퍼센트(10조 원) 규모다. 이미 민영 보험은 공룡이다. 그런데 민영 보험을 더 활성화시킨다고? 그 길은 건강보험을 무너뜨리는 것밖에 없다.
한국판 〈식코〉
건강보험이 붕괴되면 민영 보험은 떼돈을 벌고, 결국 민영 보험회사가 통째로 병원을 사서 의료제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를 떠올려 보라. 민영 보험에게는 천국이겠지만 국민들에게는 재앙이다. 민영 보험회사에 내야 할 보험료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병원비는 본인이 전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수준에서 단순 비교해도 국민건강보험은 1백 원을 내면 2백18원을 돌려받는 반면 민영 보험은 1백 원을 내면 60원 정도를 돌려받을 뿐이다.
공립병원 비율이 73퍼센트, 공적 의료보장률이 75퍼센트 수준인 대다수 OECD 국가들에 비해 우리 나라는 공립병원 비율이 8퍼센트, 의료보장률이 50퍼센트로 의료체계가 이미 매우 시장화돼 있다. 그나마 의료의 공공성을 세 제도 ― 병원이 주식회사병원을 못 만들게 금지하는 비영리법인제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의무가입제 ― 가 떠받들어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세 제도를 모두 없애 건강보험마저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삼성병원과 현대병원 그리고 삼성생명과 AIG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주고, 대다수 서민에게는 감기 걸릴 여유조차 뺏자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 연인 중 누구도 사고를 당하거나 아프지 않을 확신이 있다면 이명박의 길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이명박의 의료 시장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
보건의료를 시장판으로 만들려는, 모든 공공영역을 기업의 무한 이윤 추구의 장으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물·전기·가스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수퍼맨이 아니라서 병들고 늙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