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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데어 윌 비 블러드>, 미국 자본주의, 석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중앙은행 총재]을 지낸 골수 공화당원 앨런 그린스펀은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구나 아는 사실, 즉 이라크 전쟁이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곤혹스런 일이다.”

석유는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미국의 세계 지배 노력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의 거대 재벌인 록펠러 가문도 석유로 돈을 모았다.

지금도 서방의 다국적 석유회사들과 그들의 경쟁업체들은 세계 기업 순위에서 상층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동부 연안의 은행가에서 텍사스의 석유업자로 변신한 부시 가문 ― 카우보이 흉내를 내는 예일대학교 부잣집 도련님 조지 부시가 대표적이다 ― 은 메이저 석유자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 준다.

부시 가문은 제2차세계대전 뒤에야 석유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미국 석유산업의 어두운 뿌리는 훨씬 더 오래 전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감독한 새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이 뿌리를 파헤친다. 앤더슨은 재능 있고 개성이 강한 감독이다. 아마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영화를 감독할 때 앤더슨이 염두에 둔 것은 이라크 석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열연한 주인공 대니얼 플레인뷰는 20세기 초에 캘리포니아에서 석유업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세계 석유 생산량의 2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플레인뷰가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 지역의 황폐한 마을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를 추출해서 이를 시장에 판매하려는 노력을 그린 영화다. 플레인뷰는 유전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건설하려고 고군분투한다. 록펠러의 독점기업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와 공모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철도를 이용하지 않고 송유관을 통해 석유를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인상적인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플레인뷰가 스탠더드오일과 대결하는 두 장면이 특히 강렬하다. 그러나 플레인뷰는 보통의 미국인들과 달리 개인주의적 소유욕을 신의 뜻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플레인뷰는 야심 많은 기독교 근본주의 청년 목사 엘리 선데이(폴 다노 분)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 둘은 걸핏하면 서로 싸운다.

앤더슨은 이렇게 신과 자본주의 사이의 갈등을 보여 주고 오늘날의 부시 같은 인물들과 [플레인뷰를] 대조하면서 흥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부시는 그런 갈등을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석유》(1927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다. 플레인뷰의 모델이 된 소설 주인공은 싱클레어가 에드워드 도니를 본떠 창조한 인물이다.

플레인뷰와 마찬가지로 도니도 처음에는 광산 채굴업자였는데 나중에 석유업으로 전환했다. 1911년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가 해체된 뒤 1920년대쯤 도니의 팬아메리칸페트롤리엄은 스탠더드오일의 어느 자회사보다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었다.

도니는 1922~1924년에 미국의 워런 하딩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티폿돔(Teapot Dome) 비리 사건[내무장관이 티폿돔을 비롯한 연방정부 소유의 유전들을 석유업자들에게 몰래 임대해 주고 뒷돈을 챙긴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도니는 아들을 통해 오랜 친구이자 한때 광산 채굴 동업자였던 내무장관 앨버트 폴에게 10만 달러가 든 “작은 가방”을 보냈다고 상원 청문회에서 시인했다.

돈을 받은 대가로 폴은 도니와 또 다른 석유업자 해리 싱클레어에게 유전들을 임대해 주었다.

폴 자신은 또 다른 상원 청문회에서 어떻게 유정(油井)들이 주변 땅 속에 있는 석유를 모조리 빨아들일 수 있는지 설명했다. “여러분과 제가 각각 다른 방에서 밀크셰이크를 먹고 있다고 칩시다. 제 빨대가 방을 가로지를 만큼 아주 길다면 제가 여러분의 밀크셰이크를 다 빨아먹을 수 있지요.”

이런 부정·비리는 플레인뷰와 선데이의 정면 충돌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티폿돔 사건이나 그 사건에서 도니가 한 구실은 〈데어 윌 비 블러드〉에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이 개인의 집착을 묘사하는 앤더슨의 진정한 한계다. 비록 개인적 집착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린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싱클레어의 책은 20세기 초 거대 석유회사들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라는 훨씬 더 큰 그림의 일부였다. 이라크 재앙 이후 이제 새로운 공격을 감행해도 좋을 만큼 상황은 무르익었다. 그러나 앤더슨은 개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석유에서 정치를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석유와 정치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