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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007년도 인권보고서’:
물고문 국가의 위선적 기록

지난 3월 11일 미국 국무부가 ‘2007년도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이 해마다 발표하는 이 보고서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짙다 — 민주주의의 수호자 미국이 독재 국가를 심판한다는 이데올로기.

필요하다면 독재자들을 응징할 수 있다. ‘민주주의 확산’은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이 자행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이 ‘제2의 히틀러’인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라크는 미국의 개입이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 사례다. 독재자 후세인은 제거됐지만, 그 자리를 미국 점령 당국이 대체했을 뿐이다. 아부그라이브 감옥의 고문과 이라크인 1백만 명 학살 …. 이라크인들은 민주화가 아니라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이란·시리아와 함께 “최악의 인권위반국”으로 꼽힌 북한이 반발하는 이유다.

미국의 “인권보고서”에는 미국편이 없지만, 미국은 최악의 인권위반국 중 하나다. 미국 국무부가 “인권보고서”를 발표하기 사흘 전, 미국 대통령 부시가 물고문 등을 금지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만 봐도 이 점이 분명하다. 부시는 이 법안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유익한 수단을 없애려는 것”이라며 진정한 독재자 면모를 과시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고문을 자행하는 비밀 구금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보고서를 보면, 그 중 하나인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기소도 되지 않은 2백75명이 갇혀 지금도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http://www.hrw.org/)

백골단

인권유린은 미국 국경 밖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지난해 미국 의회는 테러범이라는 의혹만으로 미국 시민을 도청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2007년 현재 미국의 재소자 수는 2백20만 명인데, 인구 수에 비해 세계 최고 수준인 이 수치는 30년 전보다 무려 5백 퍼센트나 증가한 것이다. 또, 흑인이 수감될 확률은 백인보다 6배 이상 많다.

위선적이기는 이명박 정부와 우파 언론들도 뒤지지 않는다. 조중동은 미국의 “인권보고서”를 인용하며 북한 비판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의 “인권보고서”가 다룬 남한의 국가보안법 문제 등 인권 침해 현실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문다. 이 보고서는 전교조 교사와 사진작가(이시우 씨) 사례를 들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유엔인권위원회의 소견을 인용했다. “국가보안법은 국제 규약에 따른 민권과 정치적 권리의 완전한 실현에 주요 장애물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9월 현재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82명을 기소했다”는 민가협 보고도 인용했다. 또, 여러 언론이 보도한 여성·장애인·소수자 문제 말고도, 노동권 제약, 광범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불인정 문제도 지적했다. 한미FTA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경찰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도 인용하고 있다.

얼마 전 경찰청이 체포전담반을 신설하겠다고 밝혀 ‘백골단’의 부활을 예고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인권 기록은 더욱 형편없어질 것이다. 제 나라 국민의 민주주의를 제약할 궁리만 하는 자들이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정말이지 역겨운 위선이다.

진보진영 일각의 우려스런 입장

미국의 비난 대상인 중국이나 북한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날카롭게 비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집정 이념을 견지하고 있으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측면에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성과를 달성했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주장은 또 다른 거짓말일 뿐이다. 지금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을 보라.

북한에 심각한 인권 유린이 존재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북한에서는 언론 자유, 노동권, 이주 자유 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 당국도 공개처형과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한 바 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마치 북한에 인권 문제가 없는 것처럼 얘기한다. “미국이 북의 인권 침해 사례라고 제시한 것들은 정체불명의 조작된 사진이나 돈 몇 푼에 거짓말을 일삼는 탈북자들의 증언뿐”(한국진보연대)이라며 말이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정부의 위선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미국 정부의 위선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을 두둔하는 두 나쁜 선택만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을 빌미로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미국과 남한 정부에 일관되게 반대하면서도, 북한 민중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

“국내 저항이 일어나기까지는 외세 개입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하고 실질적인 민주적 변화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존 리즈의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