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에 투표하라! 진보후보에게 투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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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총선 공약들은 대체로 한국 사회의 시급한 개혁 과제들을 다뤘다. 민주노동당은 18개 분야 49개 민생 정책 과제를 발표했고, 진보신당도 22대 대표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이명박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와 절망에 맞설 진보적 대안들이 가득하다.
양당 모두 한미FTA, 공기업 사유화, 의료 영리법인화에 반대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이명박의 대표적 삽질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도 반대한다.
출총제 강화, 기업집단법 제정으로 거대 재벌의 횡포에도 도전하려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건희 구속 처벌과 삼성의 국민기업화도 요구했다.(다만 심상정·노회찬이라는 대표적 삼성 저격수가 당대표임에도 진보신당의 대표 공약에 삼성 비자금 문제가 누락된 것은 의외다.)
사실, 교육·의료·주택·청년 실업 등의 분야에서 양당의 공약은 거의 차이가 없다. 양당 모두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등록금 상한제, 소득 수준에 따른 등록금 차등부과제(진보신당은 ‘맞춤형 등록금’), 기업의 재정 부담 등을 요구했다.
대학을 평준화해 학벌과 입시지옥을 해소하자는 것도 동일하다. 청년 구직자들에게 적정한 수당을 제공하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당은 1가구 1주택 법제화를 주장했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의료 시장화 정책에 맞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반대하고 건강보험을 강화해 무상의료의 초석을 놓겠다는 것도 한목소리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노동자 인권 개선책과 환경 문제에서도 양당의 정책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양당은 ‘민생’을 거의 배타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아쉽게도 반전, 반제국주의, 국가보안법 문제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상대적으로 부차화했다.
양당의 공약에는 차이점도 있다. 우선, 진보신당은 특별히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관련기사 4면) 물론 진보진영은 당연히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지 말아야 하고 인권 억압을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익의 위선에 맞서기 위해서도 그렇다.
진보적 대안
그러나 진보신당의 북한 인권 제기는 주로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로 공격하며 차별성을 긋기 위한 것인 듯해서 진정성이 반감된다. 진보신당은 북한 인권 문제가 “진보신당이 출범한 이유이자 핵심 과제”라고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일심회’ 관련 인사 징계 반대 결정”을 공격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정작 남한의 대표적 반인권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들을 내치자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둘째, 진보신당 대표공약에는 민주노동당과 달리 부유세 도입 요구가 빠졌다. 이는 분당파들이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 때문에 부유세가 사라졌다고 주장해 온 것을 무색케 한다.
대신 이 자리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와 투쟁 자제를 뜻하는 ‘사회연대전략’이 메웠다.
셋째, 반제국주의 문제에서 진보신당의 문제의식은 민주노동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대표 공약에서 자이툰 부대 철수를 요구했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고 한 점은 훌륭하다. 그러나 레바논 파병은 ‘즉각 철수’가 아니라 “전면 재검토”로 유보적 태도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PKO 파병은 괜찮지 않느냐’는 식의 혼란도 엿보인다.
또, 전략적 유연성 합의 백지화와 주한미군 기지 이전 재협상 요구는 있지만,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전쟁동맹 해체 요구는 빠져 있다. 이는 단순한 실수는 아닌 듯하다. 진보신당 이론가들이 펴낸 《사회국가》에서는 “한미군사동맹을 무조건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주장” 대신 “자연사”를 주장한 바 있다.
남북 군사 적대가 해소되고 동아시아 안보협력을 이루면 한미군사동맹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전쟁동맹 해체 없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동북아 평화가 가능하리라 보는 것은 공상일 뿐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모든 해외 파병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했다.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도 분명히 언급했다. 그러나 한반도 군축 문제가 누락돼 있고, 제국주의를 협소하게 이해한 결과 중국과 같은 미국 이외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만행에 침묵하는 것은 한계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아직도 티베트 민중항쟁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교육특구?
한편, 양당 주요 후보들이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며 어떤 주장을 하는지도 봐야 하는데 경합이 치열하고 당선 가능성도 있는 지역에서 우려스런 타협이 눈에 띈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는 자신의 당이 주요 가치로 내세우는 ‘녹색’과 어울리지 않게 녹지를 축소하고 뉴타운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심상정 후보는 “8학군, 대치동이 부럽지 않은 지역으로 덕양 교육특구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자율학교” 도입을 공약했다. 비록 그 “자율학교”가 대안학교를 추구하는 것일지라도, 평준화를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사며 그런 공약을 낸 것은 개운치 않다.
게다가 심상정 후보가 통합민주당의 대운하 반대를 위한 반한나라당 후보단일화 제안을 환영한 것도 문제다. 대운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민주당은 개악·배신의 당사자다. 더구나 이것은 ‘민주노동당과 열우당의 개혁 공조가 문제였다’던 진보신당 쪽의 입장과도 모순이다.
결론적으로 양당의 총선 정책은 공통점이 훨씬 많고, 몇 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두 진보정당의 정책들은 이명박의 ‘재벌천국 서민지옥’에 맞선 대안으로서 지지받을 만하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분당 과정에서 기성 체제의 타협 압력을 좀더 수용한 듯하다. 사회연대전략 추진, 모순적 북한 인권 제기, 반제국주의 입장의 약화가 이를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조선일보〉는 “이왕 좌파에 표를 찍겠다면 민노당이 아니라 진보신당에 표를 주라”고 권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대신 진보신당을 지지할 좌파적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진보신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