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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서평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 이후

보스턴 대학의 역사학 교수 하워드 진은 교과서와 주류 언론이 감추려고 하는 역사적 진실들을 들춰내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산산조각 내는 좌파 지식인이다. 특히 1980년에 처음 출판한 에서 그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저지른 잔학 행위를 신랄하게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글쓰기에만 만족하지 않고 인종 차별, 전쟁, 빈곤 같은 불의에 맞서 싸워 온 거리의 투사이기도 하다. 여든이 넘은 고령이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시의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반전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 책의 제목은 원제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객관성(혹은 중립성)을 가장하지 말자”는 저자의 신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지에도 나오듯이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다. 미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격동의 순간들을 현장에서 체험한 그에게는 자서전이 곧 역사 에세이도 될 수 있나 보다.

1부 ‘남부와 운동’은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1950년대 남부의 흑인 민권 운동에 연루한 경험을 다룬다. 당시 남부의 흑인들은 공공 건물, 대중 교통, 식당 등에서 격리당했다. 또, 유권자 등록 절차상의 차별 때문에 투표권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러한 불평등에 어떻게든 저항하는 사람들은 성난 백인 군중과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에 죽음까지 각오해야 했다. 저자는 남부의 상황을 결정적으로 바꾼 커다란 사건들의 배후에는 이처럼 수많은 개별적인 행동들이 숨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2부 ‘전쟁과 평화’는 제2차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파시즘을 격렬히 증오한 하워드 진은 폭격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훗날 원폭 피해자들의 참상과 자신이 직접 폭격한 유럽 도시의 주민들이 경험한 생지옥을 알고 나서 제2차세계대전의 정당성에 심각한 회의를 품게 된다. 고민 끝에 그는 제2차세계대전을 포함한 모든 현대 전쟁은 아무리 명분이 그럴싸할지라도 본질상 부도덕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저자는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전쟁 반대를 주장했다. 이 장에서는 1965년 보스턴 공원에서 1백 명도 채 안 되는 초라한 규모로 처음 열린 반전 집회가 몇 년 뒤에는 10만 명 규모로 성장한 얘기들을 들려 준다.

3부 ‘풍경과 변화’의 첫 부분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다가 구속된 사람들의 법정 투쟁 사례를 통해 사법 체제의 비민주성과 부조리를 폭로한다. 뒷부분에는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저자의 성장기, 공산당원 친구들, 처음 참가한 시위 경험, 군 입대 전 브루클린 조선소에서 노동자로 일한 경험, 보스턴대학 교수 시절 권위주의적인 대학 당국과 겪은 갈등 등의 얘기가 나온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세계 정세가 우울하더라도(이 책은 반자본주의 운동이 탄생하기 전인 1994년에 썼다)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비록 “충분히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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