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양주에서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여중생을 성추행하려다 실패하고 살해한 사건이 있은 뒤, 이주자들을 범죄자로 모는 언론 보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 등 몇몇 우익단체와 우익 인터넷 언론들의 반(反)이주자 선동은 《월간조선》, 연합뉴스, 〈세계일보〉, MBC 등 주류 언론으로까지 확산됐다.

특히, 최근 ‘공영방송’ MBC가 이주자에 대한 공포 부추기에 가세하면서 ‘불법체류자’ 추방 활동을 벌여 온 우익들의 기세를 드높이고 있다. 지난 13일 방영된 ‘시사매거진 2580’은 사건 재연 등 선정적 보도로 일관하며, 피해자 어머니와 친구들이 ‘불법체류자’ 추방을 요구하는 우익들과 함께 시위하는 장면을 보여 줬다.

이들 우익단체들은 ‘좌파’ 노무현 정부의 ‘관대한 불법체류자 정책’을 비난해 왔는데, 이번 MBC ‘시사매거진 2580’도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당국의 허술한 관리”를 질타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주류 언론들의 보도에 자신감을 얻은 우익단체들은 반이주자 선동을 더 확대하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양주시 덕정역 앞에서 ‘불법체류’ 외국인 추방 촉구 집회를 연 데 이어, 오는 2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다시 집회를 개최하려 한다. 이것은 이명박과 법무부가 ‘법질서 확립’을 내세우며 ‘불법체류자’ 강력 단속 방침을 밝힌 데 고무된 것이기도 하다.

끔찍한 여중생 살인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핍박받는 미등록 이주자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데 이용되는 것은 매우 역겨운 일이다.

미등록 이주자들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에 불과하다. ‘외국인 범죄 급증’을 보도하는 언론과 우파단체들은 보통 미등록 그 자체를 ‘범죄’로 포함시키는 법무부 범죄통계(‘외국인 범죄’의 절반 이상이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를 들이대기 십상이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 위반은 자유로운 왕래와 취업 기회를 정부가 제약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대부분으로, 범죄와 무관하다. 특히 현행 고용허가제는 직장 이동의 자유마저 주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조건을 확보하려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

한편, ‘불법체류’를 범죄의 온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인종차별주의를 확산시킨다. 미등록 이주자들의 대부분이 중국이나 타이,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에서 온 사람들인데, ‘불법체류자’ 추방 운동을 벌이는 우익단체들이 겨냥하는 집단도 바로 이들이다.

보통, 미국이나 프랑스·캐나다·일본 등 선진국 출신이 저지른 범죄는 개인의 행동으로 이해되는 반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의 이주자들이 저지른 범죄는 종종 그의 출신 집단 전체의 문제처럼 취급된다.

가난한 나라 출신 이주자들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출입국관리법 위반을 제외한 법무부 범죄 통계에서 국적별 체류자 10만 명당 범죄자 수를 계산하면, 미등록 체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방글라데시·필리핀 국적이 미국·독일·캐나다·프랑스·일본 국적보다 현저하게 낮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편견

그리고 이들 개발도상국 출신의 범죄율은 한국인 평균보다도 훨씬 낮다. 한국인은 성인 인구 10만 명당 5천1백34명인데 비해, 중국인은 1천8백40명, 방글라데시인은 9백84명, 필리핀인은 8백7명이다.

오히려 미등록 이주자들은 그들의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범죄 피해를 입어도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일부 고용주들은 이 점을 악용해 임금 체불과 폭행, 강간 등을 일삼는다.

무엇보다, 미등록 이주자들은 제도적 폭력에 희생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미등록자라는 이유만으로 야만적인 방식으로 체포돼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외국인보호소’에 감금된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야만적 단속은 지속되고 있는데, 지난달 양주 살인사건 이후 단속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양주에서는 우익단체들이 ‘불법체류자’ 단속을 촉구하는 시위까지 벌여 그 곳 이주노동자들은 숨막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4월 16일 마석 성생공단에서는 불시에 들이닥친 단속반을 피하다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두 명이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이 중 한 명은 의식불명에 빠졌다. 출입국 단속반 직원들은 바닥에 떨어져 실신한 이주노동자를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이에 분노한 이주노동자 2백여 명이 삽시간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들은 단속반의 폭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론스타 같은 ‘먹튀’ 외국자본들과 이건희는 수조 원이 넘는 돈을 탈세하고도 구속되지 않는데, 왜 죄없는 이주노동자는 미등록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추방되는가?

이것은 실업과 물가 인상 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위선적인 인종차별 정책일 뿐이다. 이주노동자 혐오 조장과 정부의 단속 강화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