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불〉 92호 독자편지 ‘사회주의가 대안이고 가능할까요?’에서 FLY 님은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지만, 자본주의 자체를 없애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경쟁하는 자본들은 흔히 경제적 경쟁 과정에서 자국의 군사적 보호와 무력 호소에 의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병폐들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케인스주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세계 경제 위기가 도래했고, 지배자들은 케인스주의적 처방을 헌신짝 버리듯이 폐기하며 30여 년간 대중이 그나마 누린 복지혜택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지요. 즉 체제의 근본 속성을 건드리지 않은 채, 민중의 삶을 영구히 향상시킬 수는 없습니다.
진짜 사회주의
FLY 님의 말대로 “지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진짜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옛 소련과 북한 사회에서는 국가 관료가 모든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노동자들은 관료 밑에서 착취당했습니다. 이런 사회는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없는 ‘국가자본주의’ 사회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과 정치권력을 직접 통제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비록 스탈린의 반혁명으로 사라졌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의 러시아는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힐끗 보여 줬습니다. 혁명 과정에 건설된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사형제도 폐지, 수 세기동안 여성을 억눌렀던 여러 법률들의 즉각 폐기, 정부 관리 봉급을 노동자 평균임금 수준으로 제한 등 획기적인 조치들도 단행했습니다.
21세기에도 자본주의의 불안정으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민중의 거대한 반란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근본적 사회변혁은 단지 목표가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함께’는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단체입니다.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신다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