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억압에 관심 갖고 연대해야":
임태훈 동성애자인권운동연대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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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씨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만든 계기는 무엇입니까?
임태훈 :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하게 된 얘기부터 하죠. 서세원의 '야! 한밤에' 녹화 중에 진실게임이 있었어요. 김한석 씨가 "너, 소문으로 듣기에, 여자보다 남자를 좋아한다던데 사실이냐?" 하고 물었더니 홍석천 씨가 "사실이다" 하고 얘기를 했대요. 방송 녹화가 중단되고 그 부분을 자르고 방영됐는데 소문이 퍼졌나봐요.
〈여성중앙 21〉에서 만나자고 해 얘기를 몇 시간 동안 했대요.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겠다고 하길래 홍석천 씨는 "안 된다. 부모를 설득시키고 난 다음에 축복받으며 커밍아웃을 기쁘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밝혔는데 뜻대로 안 된 거죠. 시드니 갔다 와서 기사 마감일까지 3일의 여유가 있으니까 그 때까지 참아달라고 했는데 〈여성중앙 21〉측이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고, 그 와중에 〈일간 스포츠〉 기자에게 정보가 흘러가면서 17일에 홍석천 씨가 시드니로 응원간 사이에 기사가 터져 버렸어요.
9월 17일, 〈일간 스포츠〉에 "홍석천, 난 호모다" 하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어요. 본인 동의하에 실린 것도 아니고,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막 써버린 거죠. 그래서 문제가 확대됐어요.
처음에 우리 쪽에서는 사실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 대응을 자제했어요. 사실 확인이 되기 전에는 글도 못 올리게 했죠. 사실 확인을 해 보니 홍석천 씨 자신이 밝힌 게 아니라 아웃팅[다른 사람이 "누구 누구는 동성애자다" 하고 폭로하는 것 ― 편집자]당했더라구요. 그래서 시드니에서 돌아오는 날 김포공항에 나갔는데 기자가 있어 얘기하지 못하고 전화로 연락해 밤에 만났어요.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더니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겠다" 하고 얘기하더라구요.
공식 입장을 밝히는 와중에도 억측에 억측을 낳는 보도들이 연예 신문들을 중심으로 계속 나왔어요. 여기에 대한 반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반격을 시작했고, 홍석천 씨의 입장을 밝힌 비디오 테이프가 나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홍석천 씨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임태훈 : '홍석천 씨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발족한 목적은 홍석천 씨가 방송 활동에 복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홍석천 씨는 출연중이던 MBC '뽀뽀뽀'와 KBS 라디오 시트콤에서 잘렸어요. 일종의 해고죠. 출연 섭외가 들어 왔던 곳에서도 커밍아웃 이후에 아예 전화가 안 오는 거에요. 이런 것까지 치면 홍석천 씨는 불이익을 많이 당한 거죠.
'홍석천 씨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은 많은 사람들이 홍석천 씨에게 힘을 주자라는 취지에서 이성애자들과 동성애자들이 함께 모여 활동하고 서명활동을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10월 4일에는 방어벽의 일종으로 기자회견을 했어요. 기자들이 엄청 많이 왔죠. 그 전에는 사회단체, 국회의원 등의 지지 서명을 받았어요. 지지를 보내는 사회단체들을 여럿 모았고 민주노동당도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어요. 문화연대를 중심으로 한 6개 단체도 성명서를 냈어요.
홍석천 씨를 방어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홍석천 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 운동이 실패한다면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동성애자 운동은 10년 이상 후퇴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200인을 목표로 했던 네티즌 지지 서명이 현재 2000명 가까이 됐어요. 그만큼 동성애자 문제에 대한 관심과 동성애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이죠.
동성애자들에게 커밍아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임태훈 : 벽장 안에서 나온다는 의미거든요. 어두운 곳에서 나온다는 것, 즉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민가협에서 얘기하는 '양심 선언'일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재일 교포가 '나는 한인이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커밍아웃이고, '나는 공산주의자다'라고 하는 것도 커밍아웃입니다. 내가 누구다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억압하는 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적게 하느냐 많이 하느냐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 정도, 인권 탄압 정도, 다원화된 문화의 수용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적 억압의 강도가 강할수록 커밍아웃하는 숫자는 줄어들고 억압의 강도가 약할수록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죠. 독일 나치 치하에서 동성애자들은 강제 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은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거에요.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 한 뒤 며칠 만에 '뽀뽀뽀' 로부터 출연 정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동성애자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태훈 : 동성애를 전염되는 병 또는 어린애들에게 해가 되는 나쁜 짓 취급을 하는 것이죠. 오히려 홍석천 씨를 출연 정지시키는 게 어린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차별과 '왕따'의 문제를 어떻게 얘기해 줄까요? 저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방송에 나오면 안 된다고 얘기해 줄 건가요?
어려서부터 교육을 시켜야죠. 너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억압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미국은 성교육에서 동성애를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자살하는 미국 청소년의 30∼40%가 동성애 때문이에요. 한국 사회는 어떻겠어요? 자라나는 동성애자 청소년들은 자살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거에요. 그리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를 벌레 보듯 하게 될 거구요.
동성애를 인정한다면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란 비난도 있는데요?
임태훈 : 동성애자 억압에서 가족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 진영에서도 가족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면 안 되죠. 억압의 기제나 법·제도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나중엔 결국 억압의 뿌리인 가족 문제에 봉착하게 되니까요.
가족 제도는 너무 견고하고 교묘하고 동시에 환상을 줍니다. 저는 '정상'으로 여겨지는 가족 말고도 수양 부모 제도, 동성애 가족, 공동체, 이성 동거 등이 모두 용인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족을 꾸릴 수도 있고 안 꾸릴 수도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죠. 가족을 안 꾸리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 제도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여성 억압의 뿌리이기도 해요.
동성애자라는 말은 18세기 말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동성애 행위'는 있었지만 '동성애자'라고 낙인찍어 억압하지는 않았어요.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불이익은 엄청나요. 미혼모, 독신남녀, 동성애자들이 모두 이런 이유로 공격당하죠.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 가운데는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죠.
제가 출연했던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이었던 목사와 교수 등도 결국 생산의 문제, 종족 번식의 문제를 얘기하더군요. 그들은 가족의 가치를 주장해요. 그래서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겁니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할 책임은 가장에게 있는 것이 아니에요. IMF가 터졌을 때 모든 책임을 가장에게 돌렸어요. TV에서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말이 계속 나왔는데 사실 이것은 역겨운 위선입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한 가족의 가장에게 떠넘기는 것이죠. 청소년의 올바른 성교육, 미혼모를 위한탁아시설 등을 국가가 책임지고 마련해 줘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은 어떤 차별과 불이익을 겪고 있습니까?
임태훈 : 사실 그러한 사례에 대해 잘 알진 못해요. 차별이나 불이익을 당하면 본인이 나서야 하는데, 잘 나서지 않아요.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예요.
예전에 노동자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된 일도 몇 번 있다고 하는데 … 일반 노동자들의 경우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하면 띠 두르고 나설 수 있잖아요. 그런데 동성애자들이 띠 두르고 나서면 왜 부당한 해고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혀야 해요.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동성애자임을 밝히기가 더 어려운 거죠. 노조는 '동성애자가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등의 문제를 놓고 싸워야 하는데도 이런 싸움을 피하고 싶어하죠.
홍석천 씨도 MBC에서 부당하게 해고됐어도 지저분한 싸움이 될까 봐 말 한마디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MBC는 마치 합의된 것처럼 얘기해요. 이중의 억압이지요.
최근에는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끼리 키스하다가 퇴학당한 경우도 있어요. 가족에게 알려지면 집에서도 쫓겨나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방송사 노조가 나서서 홍석천 씨를 방어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요 ….
임태훈 : 그러면 좋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민주노총이나 언론노련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요. 연예인 노조는 서갑숙 씨가 《때론 나도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라는 책을 써서 엄청난 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는 커녕 되레 노조에서 축출시켰어요.
일단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서명지가 나오면 민주노총과 언론노련에 가서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예요. 노동자들 사이에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불균등하기 때문에 그들 내에서도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은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가로막고 분열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합니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많기 때문에 당연히 동성애자 중에서도 노동자들이 많아요. 동성애자들이 억압받으면 노동자들도 억압받고, 노동자들이 억압받으면 동성애자들도 억압받지요.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계급 운동이지만, 다른 부문과의 연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