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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핵 공포를 부추기는가?

누가 핵 공포를 부추기는가?

정진희

지난 12월 12일 북한의 핵 개발 재개 선언으로 북한 핵 논란이 다시 뜨겁게 일고 있다. 북한 핵 논란에 불붙이려 애쓰던 우파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달려들었다.

〈조선일보〉는 “한반도가 93∼94년에 이은 제2의 핵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하고 말한다. 친미 우파들은 최근 급속히 번져 온 반미 운동을 공격하고 이회창의 당선을 돕고자 북한 핵 공포를 부추겼다.

그러나 한반도의 핵 광풍은 이번 북한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몰아쳐 왔다. 올해 초 미국이 북한을 핵 선제 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사실이 드러났다(“핵 태세 검토”). 지난 1998년 미국이 북한에 핵 공격을 하는 모의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한 것도 올해 9월에 드러났다.

이 실험을 폭로한 미국의 안보 연구 기관인 노틸러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한스 크리스텐센의 말을 들어 보면, 이러한 훈련은 계속되고 있다(2002년 9월 12일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와 한 인터뷰). “트라이던트 잠수함 발사 핵 미사일의 버튼을 누르면 30분 만에 한반도에 도달할 수 있다.”

우파들은 북한이 이번 발표로 제네바 합의를 폐기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12월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를 먼저 어긴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합의 뒤 3개월 내에 경제 제재를 풀겠다는 약속을 어겼고 핵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어겼다. 2003년까지 짓기로 한 경수로 건설도 계속 지연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발표 직전에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선박을 나포·억류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의 이번 조처는 국제법조차 무시한 것이었다. 북한과 예멘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 북한이 1990년대 들어 외화 벌이를 위해 미사일을 수출했다는 것은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선박 나포 3주 전부터 감시·추적하다 대규모 반미 시위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터뜨렸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서 고조되는 반미 운동을 꺾고 대선에서 우파를 돕기 위해 멋대로 북한 선박을 가로막았다가 동맹국 예멘의 항의가 있자 슬그머니 놓아 줬다.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을 볼 때, 북한의 핵 개발 재개 선언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은 아직 이 선언을 실행에 옮기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 압박해 점점 북한을 핵 개발로 내몰고 있다.

핵 위협의 근원

미국은 거듭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를 비난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의 “대량 살상 무기” 제조·판매·보유국은 다름아닌 미국이다. 최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발표를 보면, 미국은 지난 5년 간(1997∼2001) 1990년 달러 가격으로 4백48억 달러 상당을 수출해 무기 수출 1위 자리를 지켰다. 미국은 군비 지출액과 증가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반도를 진짜 위협하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도 불확실하고 설사 있다 해도 미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북한 핵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지구를 몇 번이고 날려 버릴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자원보호협회(Natural Resources Defence Council)의 발표를 보면, 현재 미국이 비축하고 있는 핵탄두는 1만 6백 개다. 여기에는 1천7백 개의 탄두가 장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 5백50기가 포함된다. 또, 총 3천1백20개의 탄두, 토마호크 해상 발사 크루즈 미사일 3백20기를 싣는 트라이던트 핵 잠수함 18척도 포함된다. B-52 폭격기 94대, B-2 폭격기 21대도 있다. B-2 폭격기는 미국이 새로 개발한 “지표 침투형” 핵폭탄을 싣고 있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 영국은 핵 미사일 64기를 실을 수 있는 핵 잠수함 4척을 비롯해 약 2백 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러시아는 핵무기 비축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2위의 핵 강국이다. 러시아는 8천4백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7백6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작전용 핵잠수함 14척, 78대의 폭격기가 포함돼 있다.

프랑스는 핵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폭격기 60대와 핵 잠수함 3척을 포함해 2백88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

중국의 핵 보유 실태는 상세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핵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항공기 1백30대, 1백25기의 지상 발사 미사일, 12척의 핵 잠수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은 아무런 증거 없이 이라크에 이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의 중동 경비견 이스라엘은 이미 약 2백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은 어떤 무기 사찰도 거부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미국은 이스라엘에 매년 30억 달러의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1980년∼1995년에 이스라엘은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F-16 전투기 2백60대를 미국한테서 샀거나 무상원조 “받았다.” 올해 6월에 전직 미 국방부·국무부 관리들은 〈워싱턴 포스트〉에 이스라엘이 핵탄두 미사일을 운반할 수 있는 잠수함 3척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언제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태세가 돼 있다. 1년 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한 보도를 보면, 현재 미국의 방위 정책은 핵무기가 없는 나라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은 재래식 전쟁에서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핵무기를 쓸 수 있는 정책을 갖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전쟁에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나라다. 미국은 1945년 8월에 일본의 히로시마에 미실험 우라늄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 결과 35만 명의 인구 가운데 14만 명이 죽었다. 그 뒤 미국은 또 다른 일본 도시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어뜨려 27만 명의 주민 가운데 7만 명을 죽였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 계획을 비난하는 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미국이야말로 한반도를 비롯한 전세계를 핵 공포에 빠뜨리고 있는 진짜 핵 불량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