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천국 만들기
〈노동자 연대〉 구독
기업들의 천국 만들기
이정원
지난 11월 14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경제자유구역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2003년 7월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 뒤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1백10개 시민·사회·노동 단체들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렇게 많은 단체들이 이 법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이 법이 끼치는 영향이 매우 끔찍하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노동·환경·여성·인권·교육·의료 등 안 걸리는 분야가 거의 없다.
기업들의 천국
경제자유구역법은 김대중 집권 5년 동안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시장 개혁의 결정판이다.
이 법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는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주휴와 생리휴가를 무급화할 수 있도록 해 남성 노동자들은 18퍼센트 이상, 여성 노동자들은 20퍼센트 이상 임금이 삭감된다. 게다가 파견 대상 업종을 ‘전문 업종’에까지 확대하고 파견 기간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파견근로제는 파견 대상 업종이 제한돼 있는 지금도 이미 저임금·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또, 턱없이 낮은 장애인과 고령자 고용 의무조차 면제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 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노동쟁의조정법은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를 꼬투리 삼아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파업권을 제약해 온 대표적인 악법이다.
경제자유구역법의 문제는 이뿐 아니다. 이 법에 따르면 재경부 장관의 승인을 얻는 절차만으로 사실상 주요 환경 관련 법 34개의 적용이 면제되고 환경 관련 부담금도 감면받는다.
한면희 환경정의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경제자유구역법을 비판하면서 1997년 여수에 진출한 한 독일계 기업이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사용한 독가스인 보스겐 가스를 사용한 사실을 환기시켰다. 환경 단체들은 “규제의 사각 지대인 특구로 찾아오는 자본은 각 나라에서 퇴출당한 반환경적 사양 산업과 퇴폐 산업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오는 기업들은 법인세·직접세·재산세·종합토지세 등이 감면되고 국·공유 재산의 임대료도 면제된다.
경제자유구역은 그야말로 기업들의 천국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외국인만이 아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외국인이 전체 주식의 10퍼센트 이상을 소유한 기업이다. 그리고 주식 지분이 10퍼센트 미만이더라도 1년 이상 동안 원자재나 제품 납품·구매·계약, 기술 제공·도입,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맺은 기업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사실상 이런 대상 규정은 국내외 할 것 없이 모든 기업을 포괄할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 해당 지역은 국제 공항이 있는 8개 지역과 28개 항만 도시다. 이 지역들을 모두 합하면 한국의 주요 경제권이 대부분 포함된다. 현재 유력한 지역으로 부산, 인천, 광양이 꼽히지만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이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이것은 몇몇 지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공격하고, 특정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과 기업가들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조건을 요구하며 경제자유구역의 ‘효과’를 전체로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실제 시행하는 시기와 적용 수준은 양 계급 간의 힘 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철도와 가스 산업 사유화 법안은 노동자들의 저항과 사유화에 대한 대중적 반감 때문에 국회 통과조차 미뤄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경제자유구역법 폐지를 요구하며 내년 1∼2월 연대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