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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노동조합 운동

6월 10일에 1백만 촛불이 모였을 때, 모두 매우 고무됐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래도 이명박이 양보하지 않으면?’

이때 촛불 운동의 주요 요구를 현실화할 결정적인 힘이 사용되지 않은 것이 우리 편의 약점이었다. 그 힘은 바로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노동자 파업의 위력은 백 마디 말보다 화물연대 파업이 잘 보여 줬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주요 항만과 물류가 모두 마비됐고, 이명박은 서둘러 양보를 해야 했다.

만약 화물연대뿐 아니라 다른 주요 노동자 부문들의 파업이 잇달아 벌어졌다면? 민주노총이 ‘고시 강행 시 전면 파업’이라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그 힘이 촛불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평상시에는 파업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민주노총이 파업 계획을 발표하자 많은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촛불 진영의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은 생산 현장에서 발휘되는 노동계급의 힘을 촛불 운동에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소속단체인 민주노총이 이 힘을 사용하도록 적극 개입하기보다 “민주노총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도 대부분 이 과제에 소극적이었다. 파업 찬반투표는 일찌감치 마쳤지만, 파업은 투표가 끝나고 2주 반 뒤에야 실행됐고, 그것도 두 시간 동안만 벌어졌다.

촛불 운동 시기에 벌어진 노동조합 고유의 쟁점을 둘러싼 집회와 행진 들은 종종 시청의 촛불들을 코앞에 두고 청계광장에서 멈췄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

이것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노동조합주의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시기 동안 노동조합원의 다수는 정치와 경제 사이에는 확연한 분리가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정부는 바로 이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두들겼다. 정부는 ‘정치 파업은 불법’이라며 민주노총 파업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즉 정치와 경제의 영역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는 기업주와 노동자의 대립이 있고, 정치 영역에서는 정부와 시민의 대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은 화물연대 파업 당시, ‘기업주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지 않았다. 정부는 파업 파괴를 위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다. 이명박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윤을 위한 기업의 무한 권리 ─ 공공서비스와 의료를 상품화할 권리, 대운하를 파서 건설업체들과 땅부자들이 막대한 돈을 챙길 권리,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권리 ─ 다.

따라서 촛불 운동과 같은 정치 투쟁의 성패는 노동계급이 나날이 마주치는 ‘경제’ 문제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도 “공공부문을 사유화하면 공공요금이, 영어 몰입교육을 하면 학원비가 치솟는다”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정치 투쟁은 협소하게 이해된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싸우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쟁점의 성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싸운다는 투쟁 방식이다. 경제적 쟁점을 둘러싼 투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한 작업장을 뛰어넘어 여러 산업으로, 산업 집중 지역으로 확산되고, 전국적인 양상으로 벌어진다면 그 투쟁은 정치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를 주로 내건 파업이 아니더라도, 각 노동조합별 쟁점을 둘러싸고 다 함께 투쟁과 파업을 벌이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랬다면 그 자체로 정부의 정책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정치적 투쟁이 됐을 것이다.

자기제한적

파업이 정치화하지 못한 데에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혁주의적 소심함도 작용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종종 투쟁을 앞장서서 조직한다. 그러나 사용자들과 현장조합원들 사이에서 협상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특성 때문에 자기제한적 경향도 발전한다.

이번 촛불 운동에서도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대부분 파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파업 찬반투표도 조직했지만, 파업을 연기·축소하는 등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고무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민주적으로 결성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노동조합주의와 여기서 비롯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소심함은 투쟁이 정치화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약점을 드러낸다.

따라서 산업 현장 활동가들은 촛불의 활력과 역동성을 노동조합 속으로 가져와 동료들에게 투지와 정치적 자신감을 심어주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적 현장조합원 운동을 구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