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과학,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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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영국에서 광우병 공포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때 영국 정부·기업이 진실을 왜곡하는 모습은 지금의 이명박 정부 못지않았다. 맬컴 포베이는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리즈 대학교 식품물리학과 교수로 한국의 촛불 운동 참가자들을 위해 특별 기고문을 보내 줬다. 그는 본문에 언급된 레이시 교수 방어 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글에 소개된 영국의 사례와 교훈은 한국의 촛불 운동에 시사점을 줄 것이다. 특히 보건의료와 식품업, 과학과 과학자 등이 이윤 체제에 의해 제약받고 심지어 부패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닮았다. 영국의 축산업 자본가들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빈국들에 수출하는 것도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과 닮았다.(한국은 빈국이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광우병(BSE)으로 죽은 사람들은 80명이 넘는다. 2000년에 발간된 영국 광우병 보고서인 〈필립스 보고서〉(이하 보고서)는 13만 6천 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가 광우병에 감염되는 사례는 줄고 있지만 2000년에만 광우병 의심 사례가 45건이나 보고됐다. 독일에서는 10건이 발생했을 뿐인데도 농무부 장관이 사퇴해야 했다.
광우병은 끔찍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그런 질병은 대부분 천천히 발달해 증상이 확연히 드러나기까지 15~20년이 걸린다. 최악의 경우 지금까지 발병한 사례들은 단지 대규모 발발의 전초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앞으로 10~15년이 지나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광우병은 [정부와 기업들이] 다른 모든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이윤만 추구한 결과다. 대기업들은 육류 산업을 지배하면서 우리 먹을거리를 오염시켜 왔다. 역대 영국 정부는 식품 안전보다 이윤 창출을 더 중시하는 대기업을 도왔다. 게다가 정부는 대기업의 범죄 행위를 덮으려 애썼다.
식품 산업은 대중매체, 식자층 모임, 과학 학술회의, 수백 개의 위원회 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기 참가한 대학 교수나 공무원 들은 나중에 식품 회사 이사로 발탁되기도 한다. 이것은 국방 산업에서 [계속 들락날락하는] ‘회전문’ 현상으로 불리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식품 산업에 대한 비판은커녕 그것이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은 ‘회전문’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그런 분석에 기초한 보고서의 대안이 과연 광우병 발병을 멈출 수 있을까?
이윤 추구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 추구 경쟁에 따라 움직이며, 이윤 경쟁을 정당화하려고 책임 전가 대상을 찾는다. 기업들은 결코 방어할 수 없는 것들을 방어하고 영구화한다. 이런 요인들은 모두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친다. 이윤 체제 방어가 인간 건강보다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보고서의 저자 필립스는 ‘회전문’ 현상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윤을 위한 식품 생산이 광우병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명백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 결론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기에 필립스는 속죄양 두 명 ─ 키스 멜드럼 수석 수의사와 도날드 애치슨 수석 보건소장 ─ 에게 죄를 떠넘겼다.
다만, 필립스가 과학자인 킴벌린을 비판한 것은 옳다. 킴벌린은 1988년 사우스우드 경을 대표로 한 특별조사위원회의 두 번째 모임에 참석해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킴벌린 박사가 특별조사위원회에 증거물을 제출했을 당시, 그는 소의 부속물을 제품에 계속 넣을지 고민하고 있던 애완동물 사료업체(페디그리)의 자문위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광우병의 위험을 검증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분석하는 그의 작업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킴벌린 박사는 이 작업을 굉장히 비밀리에 진행해 왔고 그가 광우병 위험을 사우스우드 특별조사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은 그의 고객[애완동물 사료업체]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듬해 5월, 프리온 관련 질병의 권위자인 킴벌린 박사의 조언에 따라 페디그리는 자사 제품인 애완동물 사료에서 소와 관련된 물질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페디그리는 광우병과 관련한 조언을 얻기 위해 1988년 7월까지 킴벌린 박사를 유임했다). 특히 페디그리는 영국산 소의 척수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는 일부 척추골·비장의 구입을 중단했다.” 그러나 심지어 1995년 8월까지도 이런 엄격한 조처들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
킴벌린의 사례는 이른바 ‘자문위원’ 제도가 어떻게 대학의 과학 연구를 상업적 고려에 따라 좌우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과학은 공공 자산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소유하는 상품이 됐다.
자본주의는 광우병 연구를 어떻게 왜곡했는가?
그런데 이미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광우병의 위험을 알고 있었다면 왜 그들은 그것을 경고하지 않았을까?
먼저, 영국 중앙수의원은 광우병 발병을 비밀에 부쳤다. 정부는 1993년까지 대학 과학자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둘째, [신자유주의로] 연구비가 삭감됐다. 육류연구소와 국가낙농업연구소가 폐쇄됐다. 대처는 국가가 개입해 온 영역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전에는 정부 재정 지원 덕분에 그 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정치인·산업계 인사들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소들이 폐쇄되면서 많은 저명한 과학자들이 은퇴해야 했다. 남은 과학자들은 연구비 삭감을 두려워하며 상업적 연구로 발길을 돌렸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로즐린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복제양 돌리’를 개발해 유명해졌는데, 현재 많은 상업 벤처 활동에 연루돼 있다.
셋째, 정부는 과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말만 듣는다. 정부와 식품 산업의 광우병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리즈 대학교의 레이시 교수는 자기 주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언론 인터뷰를 하는 등 부단하게 노력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자 동료 연구자들은 레이시가 비과학적이고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른 과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므로 식품 산업과 정부는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레이시는 여론과 일부 언론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정부와 식품 산업은 ‘대중적 히스테리’와 ‘과학적 보수주의’가 광우병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고 계속 주장했다. 광우병 위험에 진지하게 대처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런 일이었다. 심지어 같은 대학교의 연구자들도 레이시를 공격했는데, 레이시의 발언으로 기업들이 대학 연구비 지원을 삭감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 과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자유주의적 태도 ─ 특히 과학과 정치는 일정 정도 대립된다는 생각 ─ 는 농림부와 식품 산업계가 레이시 교수를 쉽게 고립시키는 데 일조했다.
레이시 교수가 있는 리즈 대학교의 임상 미생물학과는 문을 닫았고, 그도 퇴임했다. 레이시 교수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1990년에 리즈 대학교에서 레이시 교수가 동물 생리학 및 영양학과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했을 때만 해도 광우병을 우려하는 데는 그럴 만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는 것이 명백했다.
레이시 교수는 당시 세미나에서 광우병이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인간들 사이에서 번져갈 가능성을 걱정하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그의 주장은 상당한 공감을 받았다. 레이시 교수의 과학적 사례들을 반박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몇 달 뒤,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동료 교수들은 대학의 정간물인 〈리포터〉에 편지를 보내 레이시 교수를 맹비난했다.
사실, 그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이론으로 무장해 레이시 교수를 공격한 데는 조만간 더 큰 학과로 통합될 자신들 학과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농림어업식품부·보건부와 손잡은 식품 산업계의 로비였다.
식품 산업계의 주요 기업들은 리즈 대학 부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레이시 교수를 통제하라고 압박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레이시 교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캠페인을 건설해 레이시 교수를 지지한 다른 많은 과학자들의 행동을 이끌어 냈다면 상황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시 교수와 그의 주장에 공감했던 과학자 중 누구도 우리가 무엇에 맞서 싸우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광우병은 과학적 성과가 불가피하게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설사 전에는 과학자들이 위험스럽게 이 문제를 무시했을지라도 말이다. 사실,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형편없이 타락하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과학 활동에 대한 기업의 지배와 그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역동성과 그 나름의 상대적인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과학자들 대부분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단체로 조직돼야 한다. 특히 이것은 정부가 부추긴 시장주의로부터 대학 연구를 지켜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부의 대응
그렇다면 광우병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보수당과 노동당 정부는 자신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보고서도 “영국 정부가 광우병에 관해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농림부 장관 존 검머가 자기 자식에게 쇠고기 햄버거를 먹이던 장면을 기억하는 수많은 영국인들에게, 또 그 말을 믿고 영국 쇠고기를 수입한 나라 사람들에게 이것은 황당한 결론이다.
맥도날드 같은 기업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쇠고기의 원산지가 어디고 그것이 어떻게 가공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쇠고기를 입수하는 과정은 일반 수퍼마켓과 다르지 않다. 맥도날드는 얼어서 도착하는 쇠고기 덩어리의 원산지가 어디인지 모른다.
1990년과 1995년 사이 광우병에 대한 통제가 시작되기 전에 엄청난 양의 오염된 [가공] 쇠고기가 냉동 창고에 보관돼 있었고, 이것들은 쇠고기 햄버거 같은 분쇄육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돼 신선한 쇠고기들과 섞여서 시장에 조금씩 반입됐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방치했다.
최악의 사례는 영국 식용고기 산업이 광우병 관련 물질들을 의도적으로 빈국들에 수출한 것이다. 예컨대 프로스퍼 데 뮬더사(社)는 광우병이 발생한 뒤로 유럽과 그 밖의 다른 나라들, 주로 인도네시아·태국·스리랑카로 식용 고기·뼈를 수출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최근 광우병 발병이 증가한 것은 영국 소와 광우병 감염 사료가 수출된 결과다.
인간 건강에 광우병이 끼칠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다. 그러나 식품안전청은 아직도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1억 5천만 파운드(약 3천억 원)의 예산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보수당 정부는 검사관 수를 엄청 줄였고 권한도 축소했다. 노동당 정부도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
정부는 또 분쇄육 생산 과정에 훨씬 강력한 통제를 가할 수 있다. 정부는 쇠고기가 광우병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쇠고기 구입을 금지해야 한다. 만일 1989년 보수당 정부가 구제역이나 돼지 콜레라를 다룰 때처럼 광우병을 다뤘다면, 가축 도축 정책만으로도 인간의 먹이 사슬에서 비롯한 병들을 근절했을 것이다.
만일 당시 정부가 관련 법규를 제대로 적용해 광우병 감염 동물들을 완전히 폐기하고 사료로 이용되는 것을 즉각 금지했다면, 광우병이 인간 건강에 끼칠 효과는 최소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광우병 감염 소가 일 년에 45마리씩 발견되고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효과적인 식품 정책이라면, 식품 생산의 모든 측면을 계획하고 통제해야 한다. 이 계획은 공중보건 정책과 발을 맞춰야 하고 무엇보다 식품 생산에서 소비자와 노동자의 요구가 우선돼야 한다.
과학은 이 과정에서 제기된 물음들에 성실하게 답변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책임감도 없고 선출되지도 않은 고위 공무원들의 위원회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중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