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패퇴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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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패퇴시킬 수 있을까?
케빈 오벤던 - 영국 좌파 저널리스트
지금 세계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 기구를 마주하고 있다. 그 기구는 자신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자에겐 누구에게나 공격을 퍼붓는다. 미국의 군사 공격과 오만한 태도를 보면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달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 조지프 바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전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쁜 소식도 우리가 전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입니다.”
1991년 이라크 전쟁, 1999년 발칸 반도 폭격, 2001년 아프가니스탄 학살을 지지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거인의 발걸음을 당장 멈추게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문제는 이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 규모와 백악관에 있는 전쟁광들의 무자비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부시의 아버지는 유엔을 이용해 걸프전을 은폐했다. 그의 후임자인 빌 클린턴은 미국 주도의 나토 동맹군을 소집했다. 부시 2세는 그의 충실한 짐꾼인 토니 블레어 정부를 끌어들여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그것은 미국의 승리주의와 진정한 군사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조차 미국의 전쟁몰이에 참여하기를 꺼린다는 점 역시 보여 준다.
부시 일당은 다른 국가들이 지지하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부시는 온갖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2001년 초에 동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그가 벌이려는 전쟁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다녔다. 미국 부통령 딕 체니는 모든 아랍 국가의 수도를 돌아다니면서 회유·협박·감언이설을 통해 사실상 부시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 다른 국가들의 지지 아니면 적어도 우호적인 중립이 필요하다.
미국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무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무기들의 배치는 파키스탄 영공의 3분의 1과 터키·우즈베키스탄·기타 중앙아시아 나라들에 있는 미군 기지들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중동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이 국가 기구들이 자국민의 대중적인 반제국주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은 미국의 종속국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그런 국가의 지배자들이 부시와 거리를 두게 만들 수 있다.
미국과 영국 군대는 전쟁몰이의 일환으로 중동에 있는 기지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 군사 기지들은 거대한 분노를 일으킨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한 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미국에 반대하게 됐다.
이라크 전쟁은 중동 전역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분노를 심화시킬 것이다. 그런 반감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은 25년 전에 베트남에서 겪은 패배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지배자들이 몰아가는 전쟁몰이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은 1945년 이후 미국의 첫번째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은 1950년대 초 한국 전쟁에 군대를 대거 투입했다. 1968년까지 미국은 베트남 민족해방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깊숙이 개입했다.
당시 미국의 경제력은 단연 세계 최대였다. 미국이 세계 생산에서 차지한 몫은 오늘날보다 훨씬 컸다. 모든 주요 통화들은 달러에 연동돼 있었다. 군비 지출도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최고 수준이었다. 절대 규모도 그랬고 경제 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그랬다. 미국은 무장이 형편없던 베트남 군대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부시가 그러하듯 당시에도 미국 지배자들은 패배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했다. 전환점은 베트남 게릴라들이 1968년 1월에 감행한 “구정 공세”였다. 그것은 군사적으로는 패배했다. 그러나 “안전”하다고 여긴 수도 사이공에서 미군 병사들이 공격받는 모습은 미국의 무적 신화를 산산조각내 버렸다. 그것은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반전 운동의 불을 당겼다.
그래도 미국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군대를 더 많이 보냈고 폭탄과 화학 무기들을 더 많이 투하했다. 베트남인들은 2백만 명 넘게 죽었음에도 저항했다. 그들은 싸울 만한 동기가 있다고 느꼈다. 그 뒤에도 전쟁은 7년 동안 질질 끌다가 1975년에 미군은 철수해야만 했다.
베트남은 미국의 권력에 강력한 타격이었다. 베트남의 사례는 미국이 후원하는 정권들에 반대하는 다른 투쟁들을 고무했다. 미국은 1980년대 초에 군비를 단계적으로 증강했다. 미국은 자국 군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베트남 증후군”). 그 대신 미국은 대리 세력 ― 중앙 아메리카의 우익 암살단이나 이란과 싸운 사담 후세인 군대 같은 ― 에 의존했다.
미국의 막대한 국방 예산 때문에 소련은 미국의 미사일에 미사일로 대항해야 했고 그러다가 “일찍 자기 무덤을 파게 됐다.” 그러나 군비 경쟁은 미국 경제를 서방 경쟁 열강보다 상대적으로 침체시킨 요인이기도 했다. 1980년대 말에 많은 사람들은 일본 경제가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믿었다. 미국과 경쟁하던 초강대국 소련은 1990년대 초에 무너졌다. 미국 지배 계급의 핵심은 그들이 겪은 군사적·경제적 후퇴를 만회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미국 다국적 기업에 세계 시장이 개방되고 지난 10년 동안 미국 주도의 전쟁이 점차 잦아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미국의 권력은 얼마나 회복됐는가? 지금 미국은 세계 경제 산출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것은 10년 전보다는 높지만, 그 수치가 50퍼센트에 이르던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절정기보다는 낮은 수치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에 회복된 반면, 주요 경제 경쟁국 일본은 정체했다. 그러나 미국의 호황은 결코 1960년대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이제 끝나 버렸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옹호해 온 바로 그 세계화 때문에 미국이 다른 지역의 경제 위기에 영향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차단되고 있다.
베트남의 유산을 극복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복잡한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승리는 대중에게 별로 인기 없는 정권들을 집중 폭격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노회한 현지 세력들을 무장시켜 허깨비 같은 국가와 지상전을 벌이는 것과 집중 폭격을 결합시켰다. 미군 특수 부대는 주로 탈레반이 무너진 뒤에 진입했다. 미군 보병을 전면전에 투입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꺼림칙한 일이다.
한때 소말리아가 다음 표적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지난 1994년 40명 넘는 미군이 살해당한 뒤 미국 군대가 소말리아를 떠나야만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이 후원하는 콜롬비아 정부는 지난 주 좌익 게릴라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대개 환호했지만, 일부는 미군이 결국 정글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질까 봐 두려워했다.
가장 호전적인 미국 지도자들은 지상군 파병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새로운 이라크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상군 파병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라크의 반정부 세력이나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민병대를 이용해 지상전을 벌이고 싶어한다. 이것은 터키에게 골치 아픈 문제들을 안겨 준다.
터키의 지원은 미국의 이라크 폭격에 꼭 필요하지만, 터키는 쿠르드족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 반란이 이라크에서 터키로 확산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미국의 군사 행동은 안정된 제국이 아니라 더 심각한 정치 위기를 낳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전 세계의 국가들을 일렬로 줄세우는 깡패 같은 선임하사나 다름없다. 그러나 미국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 미국의 최고위층에서는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독자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동맹국들로부터 고립될 위험을 어느 정도까지 감수해야 하는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는 미국과 비슷하지만, 유럽연합은 단일 국가와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앞으로 20년 안에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전략적 경쟁자”가 중국이라고 본다.
중국보다 더 약한 국가들도 미국이 강요하는 줄에서 벗어나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해 세계 석유 공급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위협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미국이 관장하는 세계는 점차 어지러워지고 있다. 그 세계에서 미국은 지역적 충돌에 말려들거나 미국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은 또 다른 상황, 즉 대중적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대륙에서 한 세대 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 정책, 부패한 지배자들, 다국적 기업,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분노에 바탕을 둔 진정 세계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이 존재한다.
반자본주의는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들의 성장을 도왔다. 그 운동들은 자국 지배자들이나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노동자 대중과 빈민들을 모두 연결시킬 수 있다. 언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전 활동가들도 모르지만 부시도 알지 못한다. 4년 간의 고통스런 경기 침체 뒤에 아르헨티나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 이란 국가와 가공할 보안 기구가 봉기에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79년에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국왕의 친미 정권이 무너졌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운동들이 이미 지배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저항이 크면 클수록 우리 지배자들은 더 많은 압력을 받을 것이고 그들에 대항하는 대중 항쟁은 더 신속하고 더 심각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