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라틴아메리카 격동의 역사는 예술 영역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은 이런 관점에서 매우 반가운 전시회다. 라틴아메리카의 저항과 혁명의 역사를 1백20여 점이나 되는 작품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정말이지 놓치지 않기 바란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라틴아메리카 전역은 지배자들을 향한 반란으로 들끓었다. 멕시코 농민들은 독재자 디아스를 내쫓고 1914년 멕시코시티를 점령했다.
이후 새 정부는 신생 국가에 대한 선전을 목적으로 벽화 제작을 시작하는데 바로 이것이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가 주도한 멕시코 벽화 운동의 출발점이다. 벽화 운동은 애초 정부의 목적을 훨씬 뛰어 넘어 새로운 미술사를 창조했다.
리베라는 식민지 시절 폄하되고 무시당한 원주민의 전통과 정신을 되살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1923년 〈테완테펙의 목욕하는 사람〉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멕시코를 발표한다. 검게 그을린 인디오 여성의 가슴은 젊고 풍만하며, 작품엔 육체와 자연이 에너제틱하게 어우러져 넘실댄다.
아나키즘에 공감한 작가 오로스코의 1946년 작 〈선동정치가〉는 유머러스하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정권을 비판하는 시리즈 중 하나다. 화면 중앙에서 양손에 해골을 들고 기괴한 표정으로 선동하고 있는 인물을 우스꽝스럽고 비대한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시케이로스의 1952년 작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행진과 그것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역동적이고 위압적으로 표현한다. 붉은 깃발을 든 노동자 대열 기수는 근육과 표정은 경직돼 있으나 권총을 들이댄 군인 앞에서 좀처럼 쓰러지지 않고 있다.
이 작품들은 유럽 살롱풍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에 익숙해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으며 예술작품이면서도 ‘신비’롭지 않다.
‘예술’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적나라한 현실을 붓 삼아 쥔 이들의 손에서 20세기 미술사가 극찬해 마지않는 가장 위대한 걸작 여러 편이 완성됐다.
(멕시코 혁명과 미술을 다룬 책으로 《벽을 그린 남자 ─ 디에고 리베라》(책갈피)를 추천한다.)
11월 9일까지 덕수궁 미술관. 청소년 8천 원, 성인 1만 원 (http://www.laar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