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어디로? ─ 중간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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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하다
촛불은 1987년 이후 가장 크고 중요한 운동이다. 이토록 크고 이토록 오래 지속된 운동은 지난 20년 동안 없었다. 젊은 세대들은 난생 처음 1백만 시위를 경험했다.
촛불 운동의 등장은 한국 사회가 보수화했다는 17대 대선 전후의 지배적 해석에 대한 통쾌한 반증이었다. 그래서 더 감격적이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10년 동안 권력에 굶주린 우파는 이전 정권 같았으면 은밀하게 물타기도 하고 연막도 쳐가며 추진했을 시장
부패해도 능력은 있는 줄 알았는데, 촛불이 밝힌 환한 세상에 밝히 드러난 그의 모습은 거짓과 무능 그 자체였다. 이명박은 그 전 어떤 대통령도 겪어보지 못했을 조롱의 대상이 됐다.
혹자는 우리가 얻어낸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촛불 운동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시장 지상주의 제단에 봉헌할 태세가 돼 있었던 이명박 불도저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를 냈다. 그는 정책을 밀어붙이기에 가장 좋다는 취임 초 6개월을 까먹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이명박 불도저를 완전히 정지시키지는 못한 탓에, 그는 다시 공기업 민영화와 교육개혁 등을 앞세운
촛불 운동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분출한,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대한 규모로 분출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촛불 운동이 거대 담론을 다룬 과거 사회운동과 달리 광우병 쇠고기 문제나 0교시 등 작은 일상사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단지 밥상 안전 걱정에서 시작했던 사람들도 축산 다국적기업의 이윤과 동물성 사료 문제, 규제 완화, 한미FTA를 위해 기꺼이 국민 건강과 안전을 희생시키는 이윤 논리라는 문제에 다다랐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운동이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의제들도 마찬가지였다 ─ 건설 자본을 위해 환경을 해치는 운하, 경쟁 교육, 의료와 물
그런데 이처럼 정책 전반에 대한 일반화된 반대는 논리상 정권 자체에 대한 반대로 나타나야 한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시장주의 정책이다. 이런 점에 대해 〈조선일보〉 김대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
이번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이명박이 역사의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리려 한다는 데만 머문 문제제기
〈경향신문〉이 메릴랜드대학교
따지고 보면, 이런 문제는 소위
이것은 이명박 시대에 민주주의의 전망을 열우당의 후신인 민주당에서 찾을 수 없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김대중의 지론을 따라 왔는데, 지금 우리는 시장 자본주의의 논리 자체가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종된 고리 ─ 노동자 투쟁
이처럼 촛불 운동은 큰 의의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몇몇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 촛불 운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줬다. 모두 그 운동의 규모와 활기에 도취됐다. 운동이 자체 동력만으로도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거리 행진을 둘러싼 잠시의 위기를 극복하고 결속을 유지한 촛불 운동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순식간에 수십만 명 규모로 커져 갔다.
기로
그러나 운동은 곧 그 성패에 영향을 미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첫 번째 정점이었던 6월 10일 1백만 시위 즈음, 촛불 운동은
결국 퇴진 운동 경고 시한인 6월 20일이 지났는데도 대책회의는 퇴진 운동을 선언하지 못했고, 그 뒤 정부는 추가협상 결과 발표와 관보 게재 강행이라는
거리의 전투적인 사람들은 막힌 국면을 돌파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경 버스 당기기, 차벽 오르기
노동자들의 힘
이 막힌 듯한 국면을 뚫을 수 있는 힘, 그러나 실종된 고리는 바로 노동자 투쟁이었다. 노동자들은 거리 시위대가 도저히 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윤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물론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정치 파업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상징적이었다. 이 점에서 박노자 씨의 지적은 타당하다.
운동은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힘을 동원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을 더 깊숙이, 더 실질적으로 참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포함하는 의제 확대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제는 여전히 촛불 운동에게 남겨져 있다.
자발성주의와 정치
촛불 운동은 강력한 자발성 예찬을 불러일으켰다. 솔선수범, 풍부한 상상력, 창의력, 기지, 해학, 용기 등은 정말이지 이 운동의 가장 인상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다. 사실, 새로운 대중 운동들은 출현할 때마다 이런 면을 보여 줬다. 그래서 이제는 낡은 조직 형태와 이데올로기적 방향 문제를 초월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촛불 운동이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논란
한편에서는 거리시위를 중단 또는 축소하고 광우병 쇠고기 불매운동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 노동부장관 남재희 씨는 한 토론회를 다녀온 뒤
그런데 촛불의 앞날이 달린 이런 기로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분산적인 방식은 우리의 힘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못 된다. 분산적 운동의 예찬자인 나오미 클라인조차 이런 약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세계은행과 IMF에 반대하는 워싱턴 시위에서 시위대가 교차로를 계속 봉쇄할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를 의논한 뒤 각자 알아서 하자고 정했던 사례를 든다.
2001년 말 아르헨티나의 경험도 정치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자발적 반란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은 운동의 역동성을 예찬하며 정치 조직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운동은 자발성과 지역 중심성을 강조하며 중앙집중적인 전략을 발전시키지 않았고, 취업 노동자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운동이 위기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정부는 운동 내 일부 세력들을 매수하고 다른 일부는 탄압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분열시켰고, 결국 정치적 안정을 회복했다.
정치단체
젊은 자발성주의자들 가운데는 운동이 앞으로 전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에 일관된 방향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단체가 필요하다. 이것은 자발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한층 밀고 나아가기 위해 자발성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이들의 정치 불신은 이해할 만하다. 그것은 기성 정당이 운동을 통제하거나 이용하려는 데 대한 반발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진정한 정치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정치 배제로 나아간다면 결국 운동을 통제하거나 이용하려는 세력들에게만 이로울 뿐이다. 사실, 이런 목적으로 자발성주의를 예찬하는 세력도 있다.
책 《아고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물론 사회변혁 운동가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허세로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인다면 촛불의 새 세대에게 거부감을 줄 것이다. 운동 속에서 서로 경험을 나누고 서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촛불은 놀라운 끈기로 1백 일까지 이어졌다. 이제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벌써
그러나
의제 확장
촛불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전망을 책임 있게 제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운동은 단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인가? 이미 촛불 운동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반대로 발전했다. 거리에서는 이미 의제가 확장돼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시민사회 진영은 운동의 이러한 발전 추세를 수용하고 이명박의 민생 파탄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민생 파탄과 민주주의 파괴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그런데 최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일각에서 1백 회 촛불집회를 맞아 거리집회 중심의 촛불을
게다가 이런 전환 기도는 거리의 촛불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만이 아니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미 투쟁의 성격이 이명박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로 사실상 전환한 마당에 대응을 광우병 문제로 한정하는 것은 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효과를 낼 것이다.
촛불 운동의 전진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촛불이 계속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촛불 운동에 일관된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조직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필자는 다함께가 주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