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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성형수술 권하는 사회

얼마 전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TV를 켰다가 ‘퀵 성형’이라며 주사 바늘을 리포터 얼굴에 찔러 넣는 장면에 잠이 확 깨 버린 적이 있다. 즐거운 이벤트에 참가하는 듯 내내 생글거리는 리포터를 보고 매우 의아했지만 그것이 유난스러운 사례는 아니었다.

성형·피부 관리 등으로 여성을 “신데렐라”로 변신시켜 주는 국내 케이블 프로그램은 일곱 번째 시즌을 방영중이고, 공영방송 건강 프로그램도 한 시간 내내 가슴 성형과 지방흡입을 홍보하고 있었다. 이제 성형수술도 ‘자신감 있고 당당한 나’를 만드는 전략이 된 것이다.

서점 아동도서 코너에 가면 “도톰하고 사랑스러운 입술 만들기”나 “완벽 보디라인 만들기”를 가르치는 책들이 깔려 있고, 여자의 모든 인생이 20대에 결정된다고 선언하는 처세서도 “미모는 인생의 마스터키”라고 못박는다.

외모지상주의는 실질적인 차별로 나타난다. 2006년 대통령 자문 차별시정위원회의 조사를 보면 기업 인사담당자 10명 중 8명이 ‘여성의 용모를 중시하는 고용 관행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취업을 앞둔 실업계 여고생들에게는 교사가 성형을 권하기도 한다. 최근 한 20대 여성잡지가 연 ‘직업별 맞춤 성형’ 이벤트는, 아나운서나 스튜어디스 같은 전문직 여성에게도 능력뿐 아니라 정형화된 미모를 요구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수십 년간 한국 여성들의 삶에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자는 ‘일단 예뻐야’ 하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여성 차별, 자본주의

여성이 눈요깃거리로 여겨지는 것은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와 관련 있다. 인류 탄생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지만 계급이 분화하고 재산 세습을 위한 가족이 발전하면서 여성은 분만도구나 향락도구로 전락했다.(이에 관해선 본지 웹사이트에서 〈맞불〉 74호 ‘엥겔스와 여성 억압의 기원’과 95호 ‘여성 차별에 대한 가부장제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보시오) ‘장식품’이 된 여성에게 외모를 가꾸는 일은 중요했다.

그러나 그 양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상류층 여성들에게만 당대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단과 여유가 있었다. 뼈 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고 기본적인 청결도 못 챙겼던 피지배계급 여성에게 몸단장은 사치였다. 밭일을 하면서 화려한 치마를 끌거나 무거운 가발을 쓸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정형화된 미를 추구하는 게 모든 여성의 지상 명제가 된 것은 자본주의 들어서 생산력이 발달하고 대중매체가 자리잡으면서부터다. 자본주의 들어서 여성의 지위는 변화를 겪었고, 예전에 없던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에게 외모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새롭게 강화됐다. 이 과정을 매개한 것이 ‘상품화’였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변화시킨 자본주의는 여성의 얼굴과 몸도 상품으로 변화시켰다. 여성의 이미지는 하나의 인격체와 분리돼 사고 팔리는 물건처럼 규격화됐고, 시장에서 대량으로 거래됐다. 대중매체와 상품 판매망을 따라 외모지상주의가 보편화한 것이다.

대중문화가 공급하는 이미지를 동시에 접하고 스타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오늘날 패턴의 기초는 ‘황금의 20년대’라고 일컬어진 1920년대 미국에서 살펴볼 수 있다. 라디오, 영화관 등이 널리 보급됐고, 소비재의 대량 생산으로 시작된 대규모 광고는 소비와 쾌락을 부추겼다.

당시 광고는 주로 여성을 겨냥했고(가정에서 필요한 물건의 80퍼센트 이상을 여성이 구매했다) 남편을 잡아두기 위한 관능미를 가꾸라고 재촉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금욕적 도덕이 약화하고 성적 만족이 결혼생활에서 점점 중요해지면서, 가정의 유지를 위한 여성의 의무에는 성적 매혹 능력이 추가됐고 기업은 이것을 활용했다. 당시 잡지 광고를 보면 여성들이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청소기나 세탁기 광고도 주부의 젊음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게 줄거리였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된 TV는 정형화된 미녀 이미지를 일상 깊숙이 전파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피임약 보급으로 여성의 경제적·성적 통제권이 확대되고 사회 전반에 개방적 성 풍조가 확산됐지만, 기업과 언론은 이런 긍정적 변화를 왜곡했다. 그들은 섹시한 외모로 남자를 유혹하는 게 여성 우위를 증명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외모가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전제는 변함없는 것이다. 이렇게 기업들은 1960~70년대의 여성해방 염원과 성적 급진주의마저 상품화 해 여성들의 외모 강박을 부추겼고 이런 공세는 이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많은 대중매체가 솔직한 성 표현을 빙자해 ‘포르노화’했고, 여성의 나체를 상업적으로 전시한다. 패션 업계가 동원하는 모델들은, 갈수록 기아 상태에 가까운 몸 ─ 반면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한 ─ 을 선보인다.

기업과 성형외과 병원들은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불안을 자극해 잇속을 차린다. 미모에 대한 정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수록 빽빽해지고, 이를 위한 ‘관리’에 드는 수고는 모두 소비해야 할 상품 목록이 된다. 성형, 화장품, 다이어트 등 국내 미용산업 규모는 적게 잡아도 연간 10조 원이다. 언론도 어마어마한 광고 수입을 올리며 이를 부추긴다.

이런 현실은 우리의 감정과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여자는 예쁘고 잘 빠져야 한다’는 주문이 마치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요구인 듯 여겨졌다. 여성들은 외부의 비현실적인 틀에 맞추려고 자신을 다그치는 데 익숙해졌다.

의연하게 ‘내면의 아름다움’만 쌓다간 도태될 것 같은 사회에서, 나름의 ‘대처’로 수술대에 오르고 비싼 화장품을 구입하는 여성들을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자신감?

그러나 강박적인 외모 관리가 ‘자신감’을 드높이는 수단이 되기는 어렵다. 바비인형 같은 완벽한 미모는 수백 광년쯤 떨어진 저 먼 곳에 있어서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이 도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얼굴과 몸매를 무시하고 화보 속 모델을 경쟁상대 삼다 보면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그러니 연예인들도 줄곧 수술칼에 얼굴을 맡기는 게 아닌가. 이것은 자신감의 표현과 거리가 멀다.

거식증의 90퍼센트가 12~25세 여성에게 발생하고, 2002년 미국에서만 거식증 환자가 1천5백만 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이 낳은 극단적인 결과를 보여 준다. 한국에서도 거식증을 동경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개설되고, 거식증 걸리는 법을 알려달라는 소름끼치는 질문들이 네이버에 올라온다.

‘착한’ 얼굴과 몸매가 우리 인격을 대신하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그것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던 오랜 차별의 일부일 뿐이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편견에 몸을 맞춰야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다.

그래서 1960~70년대 서구에서 여성 해방을 위해 싸웠던 활동가들은 미스아메리카 대회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외모지상주의에 저항하는 행동을 조직해 전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여성민우회 등이 여성에게 용모단정을 요구하는 기업 채용 관행에 항의해 남녀고용평등법에 용모제한 금지 조항이 신설됐고,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는 오랜 항의 끝에 2002년부터 공중파 방송에서 사라졌다.

나아가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악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체제에 맞선 거대한 도전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뭐든지 상품화하는 이윤 중심 사회와 여성차별을 없앨 때, 여성은 외모로 차등 대우받는 장식품이 아니라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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