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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 이명박과 경쟁 교육의 물결:
“미친 교육, 너나 실컷 하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교육계가 아수라장이다.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인사들은 입만 열면 ‘경쟁, 경쟁’이다. 모든 국민이 ‘경쟁 상대’를 적어도 하나 이상은 가져야 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 한 명이 둔재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뜬금없는 말이 유행이다. ‘국가경쟁력’이란 말은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교육에서도 ‘경쟁’이 단연 으뜸 화두다. 시·군·구마다 특목고를 하나씩 만들겠다는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그렇고, 요즘 논란이 일고 있는 ‘국제중’과 ‘일제고사’도 그렇다. 심지어 얼마 전 서울시교육감에 재선한 공정택 씨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초등학생부터 경쟁시켜야 한다”고 엉뚱한 소신을 밝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어떤 OECD 국가보다도 많다. 그런데도 성에 안 차서 더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경쟁 중독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서 잠깐 ‘경쟁’이란 말에 대해 생각 좀 해 보자. 원래 ‘경쟁’은 생물학 용어다. 원래 뜻은 ‘한 군집 내에서 살고 있는 다른 종이나 같은 종 사이에서 자원이 부족할 때, 개체들이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을 뜻한다. 경쟁 이데올로기는 이것을 그대로 인간사회에 도입한 것이다.

‘살고 싶으면 타인을 거꾸러뜨려서라도 네 몫을 챙겨라’ 하는 말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공정한 룰에 대한 존중은 애당초 없다. 약육강식·승자독식의 정글의 법칙이다.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무한경쟁은 강자에게는 천국이지만 약자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 없다. 공정한 룰? 그딴 건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 중인 국제중을 보자. 일 년 교육비가 1천만 원에 육박한다. 한 달에 80만 원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일 년을 모아야 하는 돈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제중은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할 계획이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능력이 없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 조기유학을 다녀오거나, 아빠 따라 외국에서 장기 체류했거나, 유치원부터 영어몰입교육을 받아야만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국제중은 강남 부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기름통이 가득 찬 벤츠와 기름이 떨어진 마티즈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주를 한다고 치자. 누가 이길까? 묻는 사람이 바보다. 당근 벤츠가 이긴다.

사교육의 막강한 지원사격을 받는 부잣집 아이들이 명문고와 명문대학을 싹쓸이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요즘 SKY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약 80퍼센트를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나 사업가, 고급공무원의 자식들이 차지하고 있다. 없는 집 자식들은 겨우겨우 입학은 했지만, 등록금 대느라 휴학을 밥 먹듯 할 수밖에 없다.

정글의 법칙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마라톤 경주를 하는데 누구는 반만 뛴다. 아빠는 경제력으로 엄마는 정보력으로 대신 뛰어 준다. 없는 집 자식들은 혼자서 이 악물고 뛰어도 이길 수가 없다. 입시는 이제 더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간간이 들렸지만, 요즘 개천에는 용은커녕 이무기도 없고 지렁이만 바글바글하다.

이렇게 게임의 룰이 무너져 버렸는데 경쟁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그것은 이미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 무법천지에 가깝다. 그런데도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탈락한 다수의 패배를 ‘네 탓’으로 돌리려는 꼼수요, 불공정한 방법으로 승리를 거머쥔 부자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경쟁은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약자에게 가혹하게 불리한 규칙이다. 이제 지겹고 위선으로 가득 찬 ‘경쟁 놀이’를 끝낼 때가 왔다.

우리 나라 교육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교육’이다. 있는 집 자식이든 없는 집 자식이든,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다. 그런데 왜 국민의 세금으로 부자들만을 위한 잔치판을 벌이는가? 대다수 서민의 자녀를 찜통더위와 콩나물교실에 방치해둔 채 5퍼센트를 위한 귀족교육에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짓이다.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갈수록 많아지는데, 효과도 의심스러운 ‘영어몰입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못해 비인간적이다. 절망한 아이들은 벼랑 끝에서 죽음을 생각하는데, 전국의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강요해 성적순으로 줄 세우겠다는 것은 인권유린이자 가혹행위다.

뒤에서 밀어닥치는 기차에 쫓겨 숨이 턱에 닿게 달려도 살아날 길은 없다.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철길에서 내려오면 된다. 누구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쥬만지 게임, 모두 함께 판을 접어 버리면 끝이다. ‘우리는 더 이상 경쟁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면 된다. “미친 교육, 너나 실컷 하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