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자본이 금융화한다는 사실은 ‘자본의 과잉’, 또는 ‘가치증식의 실패’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대처하려고 소수의 자본은 출구를 찾게 되는데 그 요긴한 출구가 바로 금융 부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비대해진 자본은 이윤량을 늘리려고 금융 부문을 적극 활용합니다. 그래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더 심해집니다.
그러나 이윤량의 증대는 결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보상이 되지 못하고 자본축적률이 하락하면서 투자 수요가 점진적으로 하락하며, 소수 자본은 점점 금융화하고 과잉 실업 때문에 상품 수요조차 줄어들면서 위기가 첨예해집니다.
이윤량의 증대가 초기에 순탄하게 이뤄질 때는 금융 자본이 활발해지지만, 곧이어 투자가 정체되는 시기가 오면 금융 부문에 자본이 더욱 몰리게 되는 반면 투자처는 줄어들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금융 자본은 투기적 성향을 띠게 됩니다.
즉, 금융 자본은 고위험 부문에도 투자를 서슴치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마 금융 공황일 겁니다.
따라서 금융 공황의 원인을 이윤율의 저하 경향으로 설명하는 정성진 교수의 설명은 타당합니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대는 항상 왜곡된 형태의 케인스주의로 보충돼 왔는데 아마 미국은 이번에도 그 술수를 동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에서 케인스주의로 선회할 것이라는 세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항상 자본가에 대해서는 협조적 케인스주의로, 노동자에 대해서는 공세적 통화주의로 대응해 왔던 것입니다.
금융은 가치 증식의 정체 상태에 놓인 자본의 출구 구실을 하고 이윤율의 하락을 상쇄하는 구실도 하기 때문에, 금융을 규제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금융 자본은 그 자체로 제국주의를 지탱하기 때문에 미제국주의는 곧 금융제국주의로 이해해도 무방할 겁니다. 따라서 미국의 사회 성격이 급변하지 않는 한, 금융에 대대적 규제가 이뤄지길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금융에 대한 질적인 규제는 오직 자본의 대립인 프롤레타리아만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행기 강령’입니다.
구체적인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그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기구를 몰수하고 사회를 변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