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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소외:
우리는 왜 월요일을 싫어할까?

월요일이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주말 동안의 휴식에서 벗어나, 출근하기 싫은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일하러 나간다. 사람들은 왜 월요일을 싫어할까?

방송 광고에서는 “당신의 힘으로는 세상의 전쟁을 끝낼 수도 없고, 지구 온난화를 끝낼 수도 없고, 인류의 가난을 끝낼 수도 없습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첨단 과학 기술과 역사상 전례 없는 풍요를 탄생시키고도 왜 전쟁·기아·환경 파괴 같은 비합리적인 일을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됐을까?

자본주의에서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은 노동자·서민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중요한 것도 결정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소외’라는 개념을 통해 어떻게 노동자들이 자신이 만든 세계에 대한 통제를 잃어가는지,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시키는지 설명했다.

헤겔이나 포이어바흐와 같은 마르크스 이전의 철학자들에게 소외는 그저 세계를 어떤 잘못된 방법으로 봄으로써 나타나는 지적 현상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소외를 외롭거나 따돌림당하는 심리 상태 등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소외가 개인의 심리 상태에 바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소외를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으로 파악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무엇보다 노동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은 자연을 상대로 노동하면서 자연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은 사회적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이처럼 사회적 노동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활력소가 돼야 할 노동이 자본주의에서는 우리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된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사회의 다수가 모든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적 접근이 박탈당한 체제다.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들은 오로지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두고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차를 ‘내 차’라고 말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장의 이윤이 증가하는 것만큼 자신의 월급이 오르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인간이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소외는 생산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을 통제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서 생산한다.

마르크스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노동자는 그의 노동 속에서 …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고행으로 그의 육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그의 정신을 파멸시킨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자신과 함께 있다고 느끼며, 노동 속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떠나 있다고 느낀다.”

노동의 소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여겨지기 이전에 회사의 부속품으로 취급된다. 무슨 회사에서, 무슨 직책으로, 얼마의 연봉을 받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한다.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결과물을 구입할 뿐, 정작 그 물건을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하는지는 모른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녀들이 만들어 내는 내비게이션을 쓰면서도 그녀들이 야근을 밥 먹듯 해 봐야 1백만 원도 안 되는 월급만 받고 일하다가 결국 해고당한 사실을 몰랐다.

소외는 단지 노동 과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적·국제적 차원에서의 정책 결정, 법률 제정 등 공장과 사무실 바깥의 모든 중요한 영역에서도 언제나 자본가의 이윤이 우선이다. 노동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노동자들은 소외돼 있다. 그 결과는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재앙적이다.

위험천만한 제국주의적 군사 경쟁에 천문학적인 돈이 낭비되고, 환경 파괴로 인류 전체가 위험에 처해 있고, 무계획적인 자본 축적 때문에 경제 위기가 닥친 지금, 다른 어떤 때보다 소외를 낳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빛을 발한다.

촛불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나아가 사회의 우선순위를 통제하는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노동의 소외는 평상시에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안겨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파업이나 작업장 점거와 같은 집단적 힘을 발휘해 이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바로 이렇게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소외 없는 세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이 사회 전체를 운영할 권한이 있다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생산할지, 그것을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할지 집단적으로 토론하면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세계에 대한 능동적 태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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